소녀와 고양이와 항해사(마틸다 우즈)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었다. 생각만 했을 분인데 페이스북에서는 '아이슬란드로 여행가야 하는 이유'라는 광고가 자주 노출되고 있다. 재작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를 보며 아이슬란드와 후사비크에 대해 검색해 본 적이 있었는데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관심이 생겨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여하튼 오로라와 고래를 보기 위해 가보고 싶은 곳이다. 고래와 같은 지구적이고, 오로라와 같은 우주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그곳, 자연의 힘이  큰 시공간일수록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작가의 이전 작품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표지와 내지의 디자인이나 글꼴 등 스타일이 비슷하고, 두 작품 모두 지금보다는 자연의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이 크게 작용하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북극해 가까운, 난파선 천 척으로 세워진 마을 노르들로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고래를 잘 잡는 브리트 선장은 점쟁이로부터 아들을 낳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노르들로르에서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것은 남자의 일이었기에, 딸만 여섯이었던  브리트 선장은 비싼 값에 점괘를 산다.

그러나 낳아 보니 딸이었다. '우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가족으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소망, 북해 바다에 대한 호기심과 과 항해하고 싶은 모험심으로 남자 아이에게만 허용되는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 천장에 숨어서 공부하는 등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또한 생일 때마다 우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는 이름모를 조력자의 격려를 받으며 이겨나간다.

 

한편 잘못된 점으로 사람들의 신망을 잃었던 점쟁이는 다른 해보다 혹독한 겨울이 빨리 올 거라는 점괘를 내놓는다. 브리트 선장은 출항을 서두르고 추위를 피하고 결혼을 위해 브리트 부인과 딸들을 남쪽으로 보낸다. 우나는 도전과 모험을 위해 몰래 숨어 아빠의 배에 타지만 곧 발각된다. 하지만 배에서 갖은 역할을  수행하며 항해까지 배워간다. 순탄할 것 같았던 항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난다. 책에서나 보았던 전설적인 동물을 잡기도 하고,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배를 집어 삼킬만한 괴물을 만나 침몰의 위기에까지 빠진다. 한편 브리트 부인과 딸들의 결혼을 위한 남쪽 여행은 여러 가지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예쌍치 못한 결말을 맺는다. 

 

우나와 우나의 자매들은 각자의 삶에 대한 기대를 안고 더 북쪽으로, 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또 그 여행의 결과 개인과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야기 곳곳에서 선택에 대한 다른 책임을 보여준다. 도전와 안주, 타고난 성별과 성향, 어느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할까.

 

오래 전에 보았던 다큐 "인류 오디세이"에서는 현생 인류의 다양한 이동 경로를 보여 준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은 '이동'에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호모 속들만 살아남았고 현생에 이르렀다. 그것이 '굳이' 북극해 근처까지 가서 난파선으로 집을 만들고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신화든, 전설이든, 민담이든.

 

양철북 출판사에서 매번 새 책을 출간할 때마다 소감을 나누자고 책을 보내주신다. 학기말 업무가 많이 바로 소감을 나누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소감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112) "믿을 수가 없어." 그날 밤, 북해를 미끄러져 가는 '용맹한 표범'에서 우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빠가 우나를 남게 했다. 이곳에서 우나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나는 그저 나르두만 찾을 생각이 아니었다. 아빠가 틀렸다고 증명할 작정이었다. 아빠가 얻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아들보다 우나가 멋진 딸이라고 아빠한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아니, 자기가 훨씬 낫다는 사실을 밝히겠다고 생각했다. 우나는 나이 많은 그 아저씨 말대로 밥값을 할 터였다. 돛대를 오르고 물고기를 잡고, 아빠가 시키기만 하면 황금 타륜도 잡을 터였다. 아빠가 처음 보는 위대한 배사람이 될 것이었다.

(136) '왕자 도시'라고 불리는 곳에는 왕자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딸들마다 왕자 하나씩은 차지하겠지. 이번 주가 끝날 무렵에는 여섯 딸이 전부 결혼할 터였다. 왕자들과 결혼한 딸들은 다 공주가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부인은 왕비였다.

(242) 우나는 아빠가 자신을 좋아해 주기를 그렇게 바라 왔으면서도, 어쩌면 자기가 아빠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같은 깨달음 덕분에 우나는 앞에 놓인 선택이 쉬워졌다. 우나가 아빠에게서 돌아서서 마지막 밧줄을 끊었다. 선장 손에 들린 밧줄이 축 늘어졌다.

(262) "우나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트리네가 답을 얻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돈 따위는 잊어! 왕관도 잊어! 결혼하는 것도 잊어버려!" 그러고는 우스꽝스러운 남쪽 신발을 벗어 던지고 자기만의 모험을 찾아 떠났을 터였다.
트리네는 그렇게 할 만틈 대범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게 모험을 시작할 정도로는 대범하고 용감했다. 그리고 트리네는 그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았다.

(264) "모두, 죽는다!" 프레위디스가 이전보다 한층 우렁차게 외쳤다. 프레위디스 목소리가 마을을 관통해 울려펴지며 언덕 너머까지 메이리쳤다. 쥐들이 은신처에서 뛰쳐나와 달아났고 곰들이 겨울나기 동굴에서 몸을 떨었다. 올빼미들은 목탄 색깔 하늘로 날아올랐다. "'용맹한 표범'에 승선한 모두가 물에 빠져 죽고 배는 바다 바닥에 가라앉으리라. 그러할 것이다."프레위디스가 자기 다리 옆에서 훌쩍이는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남자아이의 아빠도 선원이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