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탄생(안세화)

 

신간도서 서가의 진한 오렌지색 책등이 눈길을 끈다. 표지의 삽화도 눈을 잡는다. 세상을 나타내는듯한 정육면체에 남녀 청소년이 다부진 표정으로 모여 있고 정육면체는 공전하는 궤도와 연결돼 있다. 정육면체의 각 면은 여러 레이어가 중첩돼 있고 있고 내부의 풍경은 고전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조화가 보인다. 남매가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며 '진정한 남매'로 거듭난다는 이야기일까.  

이야기는 시작부터 바로 문제상황을 드러낸다. 그래서 금방 이야기에 몰입하며 주인공 백유진을 따라가게 된다. 
외동인 백유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친오빠 '백도진'이 등장한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친오빠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백유진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친오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실시한 유전자 검사에서 친남매로 나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계속 시도를 하지만 쉽지 않다.

그즈음 자신과 똑같은 상황의 친구를 만난다. 중학교 동창생 서강일에게도 친누나 '서유일'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이 둘과 각각의 절친, 4명은 백도진과 서유일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매번 오빠에게 들키고 만다.

그렇게 오빠의 정체를 찾다, 중학교 때 경주 불국사 수학여행에서 잠시 낙오된 사이 서강일과 돌탑을 쌓으며 서로 친오빠가 있었으면, 친누나가 있었으면 했던 소원을 떠올린다. 그 돌탑을 무너뜨리자 다시 외동딸이었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곧 친오빠가 다시 등장하며 본색을 드러낸다.

300쪽이 넘는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갑작스러운 친오빠와 친누나의 등장은 미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백도진과 서유일의 계획이었고, 그 덕에 미래의 참사를 막을 수 있게 되면, 사건의 전말도 알게 된다.  

백유진과 아이들만큼 백도진과 서유일의 존재에 대해 추리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미래의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도 추리하며 읽는 재미가 있고,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여러 복선들을 복기하며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삽화)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이야기의 구조도 재밌지만 역시 인상적인 부분은 ‘백유진이란 캐릭터’와 ‘남매의 의미’다.

외동인 백유진에게 오빠의 등장은 엄청 놀라운 일이다. 비록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출생의 비밀이라 살짝 김 빠지는 면이 있지만 생각할수록 엄청난 일이다. 게다가 이 시간은 아무 이유도 없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상황이다. 그 충격의 크기를 넘어 백유진처럼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대응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백유진의 이런 삶의 태도가 미래의 사건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즉 어떤 문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내 삶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확인해 준다.


또한 강한 자극을 위해 '남매 관계'를 설정한 것도 재밌다. 백유진에게 갑자기 친언니가 생겼다면 어땠을까? 만약 백유진이 남자여서 친형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확실히 남매가 주는 설정의 재미가 있다.


세 살 터울의 친누나가 있는 사람으로서 남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피붙이라는 게 가족으로 만드는 큰 힘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경험의 공유를 통해 형성된 든든한 정서적 두께가 가족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홉 살 터울이 나는 우리 집 두 형제가 서로의 시공간의 차이로 데면데면하다, 즉 둘의 직접적인 관계보다 부모를 통한 관계가 더 친밀했다가 코로나로 1학기를 같이 보내더니 지금은, 둘의 직접적인 관계가 더 두터워졌다.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시공간이 합쳐졌고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형제의 탄생"이다.

 

아참, 표지에 청소년 심사위원들 100명이 선정한 ‘틴 스토리킹’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우리 중학생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특히 일본의 어두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인상적인 구절>

(17) 문제는 우리 남매에게는 그런 최소한의 사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의 만남은 기습적이고, 폭력적이고, 무지비하게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나는 오빠가 달갑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오빠를 오빠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라고 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오빠를 인정한다는 건 이제껏 살아온 나의 인생과 믿었던 세상을 등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결코 과장된 소리가 아니다. 나의 오빠는 그만큼 비현실적인 경로로 내 인생에 등장했다. 

✎ 이 상황에 꼭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재결합하는 가정이 많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충격을 짐작할 만하다.

 

(36) ‘어떻게 해야 오빠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물론 별일에도 정도가 있긴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그 일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는 상관없다. 정말 꿈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말이 안 되더라도, 일단 일이 벌어진 순간 모두 매한가지다.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한다.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백유진의 태도가 건강하다.

 

(198) 방금까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형광펜으로 칠하고 있던 지문은 ‘피그말리온’에 관한 내용이었다.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의 마음에 탄복하여, 신이 조각상을 사람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전설. 나는 익히 알고 있는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읽으며 선생님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 간절한 마음을 염원이라고 해. 염원은 기적을 부르는 필수 조건이지.”

✎이 부분을 읽으니 염원이란 ‘최선’의 다른 단어라는 느낌이 든다.

 

(201)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둘 나한테 등 돌릴 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인간. 적어도 그럴 거라고 믿을 수 있는…. 내 편?”

✎ 작가의 '남매'의 의미로 정리한 말인데, 다른 중요한 관계에도 두루 적용될만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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