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Tree] 작은 것들과의 눈맞춤(작은 것, 먼 곳 1)

지난 7월 저녁에 문산온마을학교 김 대표님께서 '북구문화의 집'에서 추진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링크트리' 사업을 추천해 주셨다. 학교 주변에 연계할 교육공동체가 없는 상황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일단 신청서를 제출했다.(7월 20일까지 선착순 모집이라고 돼 있어 내부 토론 없이 먼저 신청했다)

 

사업은 크게 '삶의 그릇', '작은 것, 먼 곳', '쓸모' 세 가지 영역에서 공모를 했고, 우리 학교 상황 및 관심 분야를 고려해 '작은 것, 먼 곳'이란 주제로 신청했다. 운 좋게 선정이 되었고, 여름방학 동안 담당교사 워크숍, 매개자와 협의, 또 전문가 협의를 거쳐 최종 프로그램과 일정을 조율했다.

*북구문화의 집에서는 이 과정을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개학 후 학년교육과정 협의 시간에 2번 정도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공유하고 함께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학년 주제통합교육과정으로 운영할 상황은 안되었고 교과에서 생태체험수업을 함께 진행할 시간을 내어주는 것으로 정리했다.

국어과 성취기준에서는 생태체험을 하며 알게 된 내용을 매체로 제작하여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연계할 수 있어, 이를 2학기 수업 계획에 반영해 편성했다.

 

개학 즈음부터 틈나는 대로 생태체험을 할만한 장소를 살펴보았다. 우리 학교에서 가까운 두암 제1근린공원, 두암 제2근린공원, 율곡공원, 두암동체육공원, 광주교대 숲까지 답사를 했다. 돌아보니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협의를 통해 학교 근처 근린공원(두암 제1근린공원)과 교정, 학교 바로 앞 아파트단지에서 1주일 간격으로 2시간씩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계방향으로 두암 제2근린공원, 율곡공원, 두암동체육공원 입구, 두암 제1근린공원 안내판

 

2학기 1차 지필고사가 끝나고, 삶의 곳곳에서 가을이 느껴질 때 즈음인 10월 23일, 두암 제1근린공원에서 첫 번째 생태 수업이 진행되었다.

두암 제1근린공원은 군왕산의 자락으로 제2순환도로가 생기면서 섬처럼 남겨진 곳이다. 공원 좌우로 '두암주공 3차', '두암모아미래도아파트' 단지가 바로 이어 있고, 쉼터 2곳, 헬스기구 및 게이트볼장이 조성돼 있으며 곳곳에 벤치가 있어 찾는 분들이 많았다.  

 

(왼쪽) 두암 제1근린공원 입구. 멀리보이는 아파트는 두암주공2단지  (오른쪽) 공원 오른쪽 두암동모아미래도아파트
(왼쪽) 두암주공3단지에서 바라본 두암 제1근린공원  (오른쪽) 두암 제1근린공원

 

탐방은 두 반씩 진행했는데, 각 반마다 주강사 1분, 보조강사 1분과 담당교사가 함께 이동했다.

숲해설가 샘(이하 숲샘)은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숲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근린공원으로 이동하며 가로수로 만났던 느티나무 이파리는 초록빛의 까칠까칠했지만 낙엽이 된 느티나무 이파리는 민질민질했다. 느티나무 낙엽을 보면 제법 잎이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가 있는데 큰 것은 광합성 즉 성장을 위한 잎이고 작은 것은 열매를 맺는 번식을 위한 이파리였다. 또한 열매 옆에는 벌레로 인해 생긴 '충영'이 있는 것도 있었다. 작은 느티나무 잎을 하늘 높이 던지면 단풍나무 잎처럼 프로펠러가 돌며 퍼져 나간다. 설명을 듣고 직접 만지고 잎을 날리며 아이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나 역시^^ 나는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 4시간씩 농업을 배웠으나 거의 이론 시간으로 채워져 사실 아는 게 없다. 나이 쉰이 되어서야 수업 주제처럼 '작은 것들과 눈 맞춤' 하게 되었다. 만나는 식물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을마다 느티나무는 팽나무와 함께 마을의 당산나무로 존재했다. 숲샘은 느티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전달한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하셨다. 일리 있는 말씀이다.

 

(왼쪽) 하늘을 드리운 느티나무  (오른쪽) 느티나무 잎자루의 열매

 

숲을 좀더 오르자 익숙한 솔방울이 보였다. 한국전쟁 이후 녹화사업을 위해 북미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의 솔방울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육송과 구별하는 시간이었다. 육송은 솔잎이 2개, 리기다소나무는 3개, 육송의 솔방울은 방울 끝이 민질민질하지만 리기다소나무의 솔방울은 가시가 있었다. 또 리기다소나무 줄기에는 '잠아'가 있어 언제든 줄기를 뻗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장이 빨랐나 보다. 

광주에서 살다 여러 가지로 이유로 정착했던 담양의 민토마을에도 산기슭에 리기다소나무가 많았다. 10년을 같이 살다 보니 주변 나무에 비해 뚜렷하게 성장이 빠르지만 뿌리가 얕아 태풍에 쓰러질까 걱정돼 베었다. 이후 산주인이 리기다소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편백나무와 산목련을 심었다. 현재 산 곳곳을 푸르게 만들었던 리기다소나무는 대부분 편백나무로 대체되고 있다. 

 

(왼쪽) 가시가 있는 솔방울이 리기다소나무, 왼쪽 위에 있는 민질한 솔방울이 육송  (오른쪽) 리기다소나무의 잠아

 

느티나무처럼 당산나무로 크기도 하는 어린 팽나무잎에는 보호색으로 자신을 잘 감춘 '흑백알락나비애벌레'가 있었다.

숲샘이 먼저 애벌레를 보여주시고 찾아보도록 했는데 찾지 못하다 한두 명의 아이들이 찾고 그걸 보고 여러 아이들이 애벌레를 발견했다. 이제 눈에 들어온 것이다. 숲샘이 한 명의 아이만 애벌레는 만질 수 있게 하셨다. 우리의 체온이 애벌레에겐 뜨거울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부분을 인상 깊게 본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흑백알락나비애벌레는 팽나무 잎에 붙어 겨울을 난다고 한다. 팽나무 잎이 갈색으로 변하면 자신의 피부도 갈색으로 변하고, 낙엽이 되려고 하면 팽나무잎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팽나무잎과 함께 먼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흑백알락나비애벌레에겐 팽나무가 삶의 전부인 것이다. (삼일 뒤, 다른 반과 한번 더 숲체험을 갔을 때에는 팽나무잎에 '홍점알락나비애벌레'도 있어 둘을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팽나무가 세상의 전부인 흑백알락나비 애벌레(왼쪽)와 홍점알락나비 애벌레(오른쪽). 등의 돌기가 3쌍이면 흑백~, 4쌍이면 홍점~

 

이어 목련나무의 열매를 만났다.

갈색 이파리 속에 빨간 열매를 잡아 당기자 실이 나오며 제법 열매가 눈에 도드라졌다. 목련나무는 이런 방식으로 새들의 눈에 띄어 번식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서로 누가 더 길게 씨앗을 잡아당기는지 시합을 하며 흥미를 보였다. (삼일 뒤, 다른 반과 이 체험을 했을 때에는 이 열매를 먹는 직박구리를 보기도 했다.)

 

목련나무의 열매. 빨강 씨앗이 아래로 늘어나면 직박구리와 같은 새들이 열매를 먹으며 퍼뜨린다고 한다.

 

공원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주름조개풀'을 만났다. 풀을 만지면 끈적끈적한 물질에 씨앗이 묻어 나오는데,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동물의 털이나 사람의 옷에 붙었다 시간이 지난 떨어지면 번식을 한다고 한다. 공원에서 내려와 현관에서 옷을 털던 아이들이 옷에 붙어 있는 주름조개풀을 보며 이들의 번식 전략에 감탄했다. 모두들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자벌레가 갉아먹어 여린 이파리에 잎맥만 남아 있는 마무를 만났다. 아이들은 보고 만지며 생김새와 촉감이 모시 한복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낯설어 하며 징그럽다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왼쪽) 주름조개풀을 만지자 손에 묻는 모양  (오른쪽) 자벌레가 잎을 갉아먹어 잎맥만 남은 나뭇잎

 

공원 정상에는 벤치가 여러 개 있었다. 바로 옆에는 2순환도로를 오가는 차들의 소리가 제법 컸다. 이곳에서 숲샘은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소개해 주셨다. 예전에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앞뜰에 소나무를 심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뒤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무로 결혼할 때 가구를 만들거나 죽었을 때 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땐 지금보다 훨씬 깊게 숲과 사람이 연관돼 있었나 보다.

또한 이곳 오솔길에는 감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다. 숲샘은 이 감나무가 '숲정이'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단어도 낯선 숲정이는 마을 가까운 수풀을 이야기하는데, 이곳이 산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돌아다니며 심었거나 먹다 버린 씨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숲에는 이유 없는 수목은 없다.

 

(왼쪽) 먼저 물든 감나무  (오른쪽) 소나무 사이로 오동나무의 구멍

 

숲샘은 칡잎을 따서 몇 겹 접은 뒤 이파리 중간을 적절하게 떼어 내게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폈더니 다양한 모양이 나왔다. 칡잎이 하트 모양과 비슷해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모두 다르니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고 하셨다. 다른 숲샘은 손을 오므린 뒤 칡잎을 덮어 세게 내리치며 빵 터지는 소리로 '폭죽놀이'를 하시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솔잎으로 씨름 놀이도 알려주셨다. 놀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숲이 놀이터였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도 소년과 소녀의 첫 데이트가 산이었으니..

 

칡잎을 꺾어 여러 번 접어 일정 부분을 잘라낸 뒤 그 모양을 살펴보았다. 마음의 구멍(갈등)은 다 다르니 서로의 처지에서 이해해야할 수밖에. 칡잎이 마음(하트)을 상징할 줄은...

 

내려오는 길에는 흔히 '참나무'로 통칭하는 6종의 나무를 소개하는 자료를 살펴보며, 이곳에 어떤 참나무가 있는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상수리나무가 많았다. 언뜻 보기엔 굴참나무와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뒷면이 달랐다.

 

참나무 6종을 근린공원에서 구할 수 있는 참나무의 종류를 맞히는 활동. 두암제1근린공원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다.

 

그렇게 숲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데크길로 왔다. 난간 주변에 칡만큼 익숙한 '환삼덩굴'이 우거져 있었다. 숲샘은 대표적이 생태계 교란종으로 제거 대상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얼마 전 환삼덩굴을 고압세척기로 제거하는 영상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 '흑백알락나비애벌레'처럼 '네발나비 애벌레'는 환삼덩굴에서만 산다고 한다. 인간에게 환삼덩굴은 생태교란종이지만 네발나비는 아니다. 먹이사슬은 서로 연결돼 있고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이를 일정 부분 '신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만큼 신비스럽고 복잡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환산덩굴. 칡 못지 않게 생명력이 왕성하다.

 

*관련 기사: 환삼덩굴, 지나치다 싶더니 결국(은평시민신문, 2019.12.10.)

 

동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숲샘께서 작은소리로 쌍살벌 벌집이 있으니 조용히 지나가자고 하셨다.

소나무 줄기에 '뱀허물 쌍살벌' 집이 있었다. 여왕 벌과 젊은 벌들이 다 떠나 올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 산책로 옆에 있어 신고해야 하나 싶었는데 30cm 정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말벌도 그렇고 쌍살벌도 벌집에서 일 년 정도 살고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탄성이 들렸다.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해 살고 마무리하는 것이 숲에서는 일상이다.

왜 태어났는지 묻기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거룩한 숙명 같다.

 

(왼쪽) 뱀허물쌍살벌집  (오른쪽) 바닥에 떨어진 말벌집

 

숲샘과 아이들은 정자 옆 공터에서 '줄넘기 게임'을 했다. 이때 줄넘기는 '로드킬'을 상징했다. 어미 동물이 먹이를 찾아 이동했다 다시 돌아오는 상황인데, 아이들은 줄넘기에 곧잘 걸렸다. 도로를 횡단하는 야생동물들의 처지를 잘 빗댄 의미 있는 놀이였다. 시골에 살기에 지방도든 국도든, 고속도로든 도로에서 죽은 동물을 적잖게 본다. 차가 지나간 다음에 달려오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덩치 큰 물체가 위협적으로 달려오면 살기 위해 피하려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지 않을까, 인류의 발달 속도가 동물의 진화 속도보다 빨라 생기는 일이다 싶다. 방법은 차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다. 물론 도로를 낼 때 산을 절개하기보다는 터널 형태를 만들어 야생 동물들의 이동권까지 고려하면 더욱 좋겠다.

 

숲샘은 2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숲과 아이들의 연결점을 찾아 주려 하셨고, 아이들도 숲에서 만난 여러 식물 가운데 한두 개에 눈을 맞추며 의미를 찾은 것 같다. 다음 날 10여 분 정도 짧은 소감문을 쓰며 활동을 정리했는데, 그런 느낌이 잘 담겼다.  

-근린공원 옆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와서 본 것을 알려주겠다

-로드킬 생태놀이가 인상 깊다. 줄넘기를 하며 먹이를 찾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의 낯섦이 잘 느껴졌다.

-흑백알락나비애벌레를 만져보고 싶었는데, 사람의 체온과 애벌레의 체온이 달라 애벌에게는 아주 뜨거운 느낌이라는 말씀이 놀라웠다.

-주름조개풀을 만지며 '끈적끈적하구나'라고 생각만 했는데, 학교로 다시 돌아와서 보니 친구들과 내 바지에 붙어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공원에서 볼만한 게 있을까 싶었는데, 나무와 풀의 번식 방법만 들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들의 소감문을 읽으니 첫 출발이 좋다^^ 나 역시도 배우는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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