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자비에 로랑 쁘띠)


음악을 소재로 한 책이지만 분위기가 어두워 책을 덮는 순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민병대를 통해서 권력을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볼리비아에서, 권력에 저항하며 광부 파업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부랑아 주인공들의 현실이, 쉴새 없이 내리는 장맛비와 민병대 상사의 협박을 통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 학교는 하루 하루 벌어야 생활할 수 있는 부랑 아이들에게 비가 내려 연주할 시간이 생겼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삶의 희망이 되었다.

(87) “트럼펫을 부는 꿈을 꿨어, 내가 엄청 잘 불었더니 찬치토가 깜짝 놀라더라. 그런데 바람이…….”
거센 바람이 문으로 휘몰아쳤다. 문짝이 산산조각 나서 날아갈 것 같았다.
“좀 있으면 비가 오겠네. 잘됐다.”
절뚝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철새 같은 관광객들이 궂은 날씨에 도망가 버리면 밥벌이도 없이 빗속에서 벌벌 떨 게 뻔한데 잘 된 일이라니.
절뚝이가 씩 웃었다.
“음악 학교에 갈 시간이 많아지잖아.”


특히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해, 절뚝거리는 몸 때문에 절뚝이로 불렸던 주인공 친구가 ‘라데츠크 행진곡’을 들으며 자신의 이름을 ‘요한 스트라우스’라고 짓고 음반 제작을 꿈꾸었지만, 폭동에 참가하다 죽어 장례식하는 장면은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 같아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기도 했다.

(166) 장례식 날, 거리에는 단 한 명의 민병대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조문하러 온 사람은 어찌나 많던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나왔나 싶었다. 보통, 거리의 아이 하나 죽었다고 해서 장례식에 오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 눈을 피해 재빨리 기도를 마친 다음 여러 시체들과 한 구덩이에 넣고 흙 한 삽 떠 넣으면 그것을 끝. 하지만 그날은 빗줄기 속에서 수백 명이 말 한마디 없이 질척질척한 땅을 밟으며 걸었다.
장례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물을 펑펑 쏟는 찬치토, 타르타무도, 사카리아스 그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관을 들었다. 관 위에는 커다란 카세트 라디오가 올려져 있었다. 타르타르무도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라데츠크 행진곡’을 들으며 절뚝이를 묘지까지 배웅했다. 행진곡이 끝나면 다시 틀었다. 그렇게 활기찬 곡을 들으며 장례 행렬을 따르는 일을 아무 데서도 찾아보기 힘들겠지. 절뚝이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폭동 이후, 부랑아이들에 대한 민병대의 감시가 심해지자 마에스트로는 아이들을 음악학교에서 먹고 자게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음악을 감상했다는 이유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을 때 음악학교는 화마에 휩싸이게 된다.

(188) 시장에서 자주 마주치던, 키 작은 합죽이 아저씨가 석유통을 들고 나타났다.
“지나갑시다! 지나갑시다!”
합죽이 아저씨는 문짝 더미에 석유를 붓고 횃불을 그 위에 던졌다. 후안이 서둘러 달려갔지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다. 시위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도 함께 고함을 쳤다. 이 미친 사람들이 음악 학교에 불을 지르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uc0…. 후안은 불 옆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여기 없어! 대통령궁으로! 대통령궁으로!”하는 소리가 환호성을 누르고 새롭게 들려왔다. 음악 학교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시위대가 마요르 광장과 대통령 관저를 향해 썰물처럼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마에스트로 개인의 노력으로 시작된 일이기에 음악을 통해 부랑아들의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은 없었지만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음악을 경험하고 알게된 아이들의 삶이 그 이전과 당연히 다를 것이다.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희망을 주었던 음악도 그만두게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얻고 목표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201) 삼 년이 지났다. 기자들이 ‘부랑아들의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인 콘서트를 개최한 직후, 할아버지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졌다.
몇 달 동안은 후안과 아나소피아가 뒤를 이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루시아를 데리고 야야구아로 돌아갔다. 나는 루시아가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도록 무던히 애를 썼다. 그 덕에 야야구아의 유일한 중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루시아를 받아 주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중학교였으니, 엄마는 좋아했을 테고 아빠는 화를 냈을 거다. 나는 광산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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