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나온 수필(글모음들은 작가님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대부분이고, 80년대, 90년대 쓰신 글도 다수임)이고, 작가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2018년 작고하심)인데, 아직도 울림이 큰 책이다. 아, 황현산 작가님께서 더 살아계셨다면, 혼란한 이 시대에 큰어른으로 호통을 치셨을텐데. 이제서야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것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나와 동향이라는 점, 1945년에 태어나셨고(친아버지도 해방둥이시다), 돌아가신 날이 8월8일(둘째 생일)이라는 것 등 뭔가 묘하게 작가님과 통하는 것이 많았는데... 좋은 책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구절들을 여기에 옮겨본다. 타이핑을 하다 보니 어쩌면 오늘날에 필요한 말씀들인지!! 슬프고 안타깝다. *소금과 죽음 (19) 내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
하고 많은 유럽 나라들 중에서 ‘폴란드’라니! 축산업이 발달해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수입산의 대부분이 폴란드인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의 나라인데... 어쨌든 폴란드가 과연 러시아, 프랑스, 영국처럼 우리가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 많은 나라인가? 혹은 스페인어처럼 언어와 문화가 방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아닌데, ‘폴란드’라니! 심지어 400쪽이 넘는 분량이라니! 그런데 첫 작품 를 읽고 단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느껴서라기 보다는(솔직히 그걸 가늠할 수 있는 안목도 없지만), 폴란드라는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공감대와 정서를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알퐁스 도데의 을 읽고 느꼈던 그 간질간질한 감동과 비슷한? 스카빈스키에 반영된 폴란드 사람들의..
단 몇 작품으로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창비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과 극강의 가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대비, 그리고 가난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어서 한 작품 씩 읽어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큼 아찔했다. 에 등장하는 가난한 정원사 부부(부부가 내외로 석탄을 훔침)와 하녀를 비롯한 북적이는 대가족 집안의 대비, 의 철없는 도련님 오오쯔와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주인들의 변덕으로 삶의 운명이 흔들리는 하녀 찌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 이 단편에서는 ‘젠바까’라고 불리는 광인가 소작농 진스께 집안의 형제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고통받다 어머니의 사랑 한 줌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자살한..
책을 다 읽고 아주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년 박소형 선생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선생님의 극찬이 담긴 리뷰를 보고 일단 책부터 구입했다. 책꽂이에서 우선순위에 밀리다 5월 어느 날 시작한 독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게 삶 앞에 당당한 모모, 모모가 사랑한 죽음을 앞둔 유태인 로자 아줌마, 코란과 빅토르 위고의 책을 같은 반열에 올린 하밀 할아버지(나중에는 레미제라블만 들고 다니심), 가장 불완전한 신체(전직 복서 남성이면서도 여성이 되고자 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충만한 영혼을 가진 세네갈 롤라 아줌마, 그리고 의사 카츠 선생님(자신의 직무에 너무도 성실한)을 비롯하여 왈룸바씨 일행(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삶의 순간에 ..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_창비 세계문학 단편(중국) (이옥연 엮고 옮김, 창비) 미국,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 아메리카 포함 스페인어권을 돌아 아시아 중국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단편들과 다르게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중국어권 작품들은 눈에 익은 듯이 잘 읽혔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어둡고 우울하고(고향, 타락, 노예의 마음, 린 씨네 가게, 초승달), 역사 혹은 현실 속에 타락해 간 인물들(아큐, 타락, 초승달)이 등장한다는 것! 아시아의 근대사는 침략과 수탈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에 재기 발랄한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억지 같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뚤어 보기라도 하듯이 ‘해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94) 중국 근대문학은 발랄하기보다 무겁고 어둡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스페인‧라틴아메리카_김현균 엮고 옮김_창비) 요즘 ‘서진이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우리에겐 꽤 낯선 멕시코의 바깔라르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관광지에서 한국 거리 음식을 파는 포맷으로 진행하고 있다. 관광지여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무척이나 매력적인데, 특히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있다. 그건 바로 어느 가게, 거리에서나 느긋하게 잠을 자는 개들의 모습이다. 목줄도 없고, 낯선 이를 향해 짓지도 않고, 어떤 가게든 개의치 않고 주인인 양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눈을 감고 몇 시간이고 잠을 자고, 푹 잔 뒤에는 여유 있게 사라지는 개들의 모습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너그러운 성정과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스페인어권, 남아메리카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
아내가 이 책을 추천받아 읽었다며 나에게도 추천했다. 추천했던 선생님의 모임에서 작가초청 북콘서트도 준비했다고 해 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제목을 보고 지난봄에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렸다. 초록색의 표지도 농촌 생활 이야기인가 싶은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들여다보니 집에 걸린 깃발과 아버지 자전거에 걸린 깃발이 빨간색이었다.) 책은 마을 샘들과 떠난 제주 여행에서 읽었다. 마침 폭설로 비행기가 연착돼 읽을 시간을 충분했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일정은 4·3 답사였는데 폭설로 4·3평화공원만 방문할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 이야기를 듣고 읽으며 당시 지리산과 백아산 일대 민중들의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책의 내용이 좀 더 사실적으로 들렸다. “아버..
올해부터 새로 시작한 청소년 소설 읽는 모임에서 SF 단편집으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모임 날짜에 맞춰 급하게 읽기 시작해서인지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모임 샘들도 책이 잘 안 읽혀 끝까지 읽은 샘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각 단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소재도 참신하고 반전 있는 작품들도 많았다. 새삼 책이 달리 보이며 다시 읽어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샘들의 소감을 더해 정리해 본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알골(장강명)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초능력자들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지구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난다. 그래서 화성 근처 위성에 세 초능력자가 서로 통제하며 결계를 치고 살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들을 알골이라 부른다...
이번에는 영국이다. 지난번 미국 단편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영국 단편들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약간은 싱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그라든 팔’, ‘유품’, ‘차표주세요’, ‘가든파티’, ‘지붕 위의 여자’는 미국 단편들과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고 할까? 여성작가들도 미국 단편에 비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이 주는 인상이 남다르면서도 생생했다. 1. 신호수(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소설 작품은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 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 작가, 입담 좋은 이야기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신호수는 끝까지 읽으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정말 유령이 있는 것인지, 고독한 업무 속에서 우연히 본 일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