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던 저녁_창비 세계문학 단편(중국)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_창비 세계문학 단편(중국)
(이옥연 엮고 옮김, 창비)

 

미국,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 아메리카 포함 스페인어권을 돌아 아시아 중국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단편들과 다르게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중국어권 작품들은 눈에 익은 듯이 잘 읽혔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어둡고 우울하고(고향, 타락, 노예의 마음, 린 씨네 가게, 초승달), 역사 혹은 현실 속에 타락해 간 인물들(아큐, 타락, 초승달)이 등장한다는 것! 아시아의 근대사는 침략과 수탈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에 재기 발랄한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억지 같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뚤어 보기라도 하듯이 ‘해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94) 중국 근대문학은 발랄하기보다 무겁고 어둡다. 그 무거움과 어둠은 근대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고난에서 기원한 것으로 고난의 현실이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을 가져다준 것이다. ~ 전통과 근대에 대한 이중의 박투는 분명 중국 근대문학이 짊어진 무거운 짐이었지만, 그 짐이 바로 중국 근대문학의 개성과 빛나는 성취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그 무거운 짐을 자기 운명의 천형처럼 짊어지고서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을 모색한 작가들이 이룬 성취가 바로 중국 근대문학이다.


‘빛나는 성취’라... 앞뒤 문학의 흐름을 좀더 살펴봐야겠지만, 마음에 잘 와닿지는 않는다. 물론 무척이나 마음에 든 작품들도 있다. <아큐정전>, <린씨네 가게>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가는 소설의 전개과정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제목으로 실린 대표 소설답게 다른 소설과 다른 색채로 다가와 신선했다. <초승달>은 인물들이 정말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의문이 남지만, 초반 쓸쓸하고 가련한 두 모녀의 장례식 장면은 서럽도록 아름 다게 느껴졌다.

비록 몇 작품 본 것이 전부가 아니겠지만, 비슷한 시절을 배경으로 한 한국 단편 문학들을 비교하며 떠올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이상의 <날개>, 김유정 <동백꽃>, <봄봄>, 이효석 <메밀 꽃 필 무렵> 등. 무겁지만 어둡지 않고, 가볍지만 깊이 있는 여운을 남기는 우리 소설들. 내가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너무 편협한가? ㅎㅎㅎㅎ

- 인상 깊은 구절 -
루쉰 <아큐정전>

(20~21) 하지만 그는 바로 그것을 승리로 바꾸었다.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연속해서 두 대 갈겼는데, 얼얼하게 조금 아팠다. 때리고 나자 마음이 편해지고 때린 사람은 자기이고 맞은 사람은 또다른 자기인 것처럼 느껴지더니,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이 되어 자리에 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

(50) 웨이장의 민심은 갈수록 안정을 찾아갔다.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혁명당이 성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무슨 큰 변화는 없었다고 했다. 지사나리는 여전히 그 사람이고 관직명만 달라졌다고 했다. ~다만 한가지 끔찍한 일은 몇몇 질나쁜 혁명당들이 끼어서 난동을 부리는 것인데 성에 들어온 이튿날부터 변발을 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6) “나는 반역에 끼지 못하게 하고서 저희들만 반역을 해? 개 같은 가짜 양놈 새끼--- 내가 기어이 고발해서 성에 끌려가 목이 날아가는 꼴을 보고 말 거야. 집안 모두 목을 벨 것이다. 싹둑! 싹둑!”

(61) 그런데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것은 내 목을 날리러 가는 것 아닌가? 그는 다급해져 눈앞이 깜깜하고 귀에 천둥이 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혼절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지다가도 다시 태연해지곤 했다. 인생 살다 보면 원래 목이 날아갈 때도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쉰 <고향>

(71) “아아! 룬투 형, ----왔어요?……” ~
그가 멈추어섰다. 얼굴에는 기쁨과 처량함이 교차해 있었다. 입술을 꿈쩍였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침내 그의 태도가 공손해지더니 또렷하게 외쳤다. “나리!……”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 사이에 이미 슬프게도 두꺼운 장벽이 놓여 있다는 것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75) 몽롱한 내 눈앞에 해변의 파란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 푸른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위따푸 <타락>

(87) 나는 무엇 때문에 일본에 왔고, 나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는가. 일본에 온 이상 저들 일본인들에게 멸시를 받는 것은 자연 어쩔 수 없다. 중국이여, 중국이여! 너는 왜 부강하지 못한가.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인생 백년, 하지만 젊은 날은 불과 칠판년이다. 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칠팔년을 나는 이 무정한 섬나라에서 허무하게 보내야 하다니, 불쌍하게도 나는 벌써 스물한살이다. 고목의 스물한살!


빠진 <노예의 마음>

(160) “자기 행복을 모두 버려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고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노예의 마음이야. 그 마음을 우리 조상들은 할아버지에게 전해주었고,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전해주었고, 아버지는 다시 나에게 전해준 거야.” 그는 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그의 가슴에서 붉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보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가슴을 보았다. 프랑스제 실로 만든 내 멋진 상의가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마오뚠 <린 씨네 가게>

(173) 자기가 장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시골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서 구십전 하는 우산 하나 살 형편이 못된다는 것을.

(192) 이제는 정말 무너지고 말겠구나. 그러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었다. 국민당 나리가 돈을 듣어가지 사채업자가 압박을 하지 동업자가 중상을 하지. 게다가 외상까지 떼이게 되었으니 이렇게 겹겹이 밀려오는 시련을 누구라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왜 그가 이렇게 벌을 받아야 하는가?

(215) 정 씨 과부는 경황중에 신발이 하나 벗겨져 얼쩡거리다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졌다. 사람들 발길에 밟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뒹굴다가 겨우 일어나 몇발짝 걸음을 떼다보니, 그제야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옷자락을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스저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가는 바람이 불어 그녀의 옷깃이 뒤로 날렸다. 그녀가 얼굴을 돌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했다. 감은 눈이 예뻤다. 무척이나 시적인 매력을 풍기는 모습이었다. 일본화가 스즈끼 하루노부의 그림 「비 내리는 밤에 궁궐에 들어가는 미인도」를 떠올렸다. 등불을 들고 비바람에 해진 우산을 들고서 밤에 신사 앞을 걷는데, 옷과 등불이 바람에 날리자 고개를 돌려 비와 바람의 위세를 피하는 모습이 무척 탈속적인 느낌이었다. 눈여겨보니 그녀에게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 눈에는 그녀의 남편이나 애인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내 역할을 이렇게 비유하는 것에 스스로 우쭐해했다. 

리오셔 <초승달>

(239) 아버지 장례를 치르던 날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와 단둘이, 그것도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그러했기에, 적막한 상태로 황톳길을 걷노라니 한없이 멀기만 했다. 겨울 해는 짧았다. 무덤이라고 해봤자 고작 조그만 흙 한더미였다. 멀리 황토 언덕 위로 해가 기울었다. 

(254) 나는 일을 찾으러 다녔다. 어머니를 찾지도 않았고 다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나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했다. 꼬박 이틀 동안 희망을 안고 나갔다가 먼지와 눈물을 안고 돌아왔다. 내 차지로 돌아올 일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진정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고, 진정으로 어머니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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