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아내가 이 책을 추천받아 읽었다며 나에게도 추천했다. 추천했던 선생님의 모임에서 작가초청 북콘서트도 준비했다고 해 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제목을 보고 지난봄에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렸다. 초록색의 표지도 농촌 생활 이야기인가 싶은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들여다보니 집에 걸린 깃발과 아버지 자전거에 걸린 깃발이 빨간색이었다.) 

책은 마을 샘들과 떠난 제주 여행에서 읽었다. 마침 폭설로 비행기가 연착돼 읽을 시간을 충분했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일정은 4·3 답사였는데 폭설로 4·3평화공원만 방문할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 이야기를 듣고 읽으며 당시 지리산과 백아산 일대 민중들의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책의 내용이 좀 더 사실적으로 들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분단 이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아버지의 실천적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특성상 사실인 듯 아닌 듯 중첩돼서 읽힌다. 이 시대가 사회주의자, 유물론자, 빨치산, 빨갱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운 단어로 만들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이들 단어들은 사회를 전복할 위험한 사상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다른 이름으로 읽힌다. 꿈을 꾼 대가는 혹독했지만 아버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갈등과 아픔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에서 처지가 달랐던 사람들과 공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의 세상은 함께 살아갈 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총체적으로 이해된다.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보내드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장례식의 의의가 느껴졌다. 영화 "학생부군신위"도 장례식의 의의를 생각해 보게 했다.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충분히 애도해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재생되며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런 점에서 이태원 참사의 마무리는 졸속적이며 한으로 남을 가슴 아픈 일이다.

소설을 읽으며 여운을 주었던 단어들로 소감을 정리해 보았다.

*하염없이

(49)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교련선생이 무냐, 교련선생이. 죽은 느그 성이 무덤서 벌떡 일어나겄다.”
속엣말을 감추는 법 없는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쏘아붙였더니 어느 날 박선생이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박선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먹은 소주가 죄 눈물이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생전 처음 취했던 아버지가 비틀비틀, 내 몸에 기대 걸으며 해준 말이다.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의 삶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거대 담론 속에서 우리 민중들의 한은 하염없다.


*오죽하면, *긍게 사람이제

(102) 사회주의자라면서 남의 일은 대충대충 하는 게 사람 본성이라 확신하는 어머니가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138)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 '오죽하면’과 ‘긍게 사람이제’는 비슷한 의미 영역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드러내 주는 단어이지만 ‘오죽하면’ ~ ‘긍께 사람이제’는 공감하기에 벽이 높다. 삶의 연륜도 느껴지는 단어다. 그런데 이왕 방언을 썼으니 글자도 ‘긍께 사램이제’로 쓰면 더 실감 나겠다.


*처연한 마음

(169) 어머니의 옛 시동생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어쩐지 처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들에게 내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형수를 빼앗아간 사람만은 아닐 터였다. 형의 친구이고 동지였으며,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단어(구절)에 오랫동안 눈이 갔다.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한 단어 같았다. 단어의 의미를 찾다 다음 사이트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처연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 *https://brunch.co.kr/@zorbayoun/367


*사무치게

(23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중략)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항꾼에

(263) 셋은 항꾼에 담배를 피웠다. 항꾼에,라는 말이 두고두고 참 좋았다. 담배를 피우다 말고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할배 뻿가루.”
담배를 입에 꼬나문 채 봉지에서 유골 한줌을 집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도 담배를 꼬나문 채 유골을 받았다. 
(중략) 셋 중 누구도 몸 어딘가 내려앉았을 뼛가루를 털지 않았다.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아버지가 여기,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는 우리와 항꾼에.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을 그렸다. 마침 아내가 작가의 북콘서트에서 이 학생(노란머리 다문화 아이)은 가공한 인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 의도를 물었다. 작가님도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며 아버지의 이념이라면 모든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대했을 것이라 아버지의 생각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청소년+다문화+시골아이를 그렸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멀어진 사람에게도 희망이 이어지고 담을 수 있도록.

 

 

작가 콘서트는 2월 10일, 교육대학교 옆 카페에서 있었다. 제법 큰 까페인데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작가는 강의 제목을 보시며 아버지라면 “불화하지 않는 시대가 어디 있는가, 고통스럽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는가, 그 안에서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진짜다”라고 말씀하실 거라고 했다. 그러셨을 것 같다.
담양공공도서관에서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한 번 더 뵐 수 있을 것 같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