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리(창비세계문학 단편선_일본)


단 몇 작품으로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창비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과 극강의 가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대비, 그리고 가난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어서 한 작품 씩 읽어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큼 아찔했다. 


<대나무 쪽문>에 등장하는 가난한 정원사 부부(부부가 내외로 석탄을 훔침)와 하녀를 비롯한 북적이는 대가족 집안의 대비, <오오쯔 준끼치>의 철없는 도련님 오오쯔와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주인들의 변덕으로 삶의 운명이 흔들리는 하녀 찌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이 단편에서는 ‘젠바까’라고 불리는 광인가 소작농 진스께 집안의 형제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고통받다 어머니의 사랑 한 줌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자살한 신 상까지, 순진한 주인공의 눈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슬프고 화나고 고통스러웠다. 


<이단자의 슬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또 어떤가? 순수한 이상을 지니고 가난한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 하고자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의 주인공과는 태생도, 성격도, 하는 일마저도 180도 다른 쇼오자부로오는 아마 일본 문학 내에서도 손꼽히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산다화>와 <모닥불>에서도 전쟁 전후의 가난한 삶들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모닥불>의 주인공은 이전에 읽었던 중국 단편 중 <초승달>의 주인공과 닮은 듯 달랐다. 자신이 끊어내지 못한 힘든 삶을,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어린 아이를 죽여서 끊어내고자 하는 그런 모습은, 구차하지만 가늘게라도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초승달>의 모녀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나쯔메 소세끼의 <이상한 소리>와 카와바따 야스나리의 <망원경과 전화>는 다른 단편들과 조금은 다른 결을 보여주는데, 관음증을 좀 고급스럽게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단편들을 모두 읽고 나니 근대의 일본에서는 ‘가난’을 대상화하고, 운명적인 것, 헤어나올 수 없는 것, 노력해서 이겨내지 못하면 극단적인 자살로 끝내야 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일본 문학은 아직도 멀다는 느낌이다.

-인상 깊은 구절- 

쿠니까다 돗뽀 <대나무 쪽문>

(24) “조용히, 조용히, 그렇게 큰소리를 냈다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나도 거기를 열어두는 것은 싫지만 이미 열어둔 것을 이제 와서 갑자기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지금 거길 막아버리면 이웃간에 뜨악해져. 정원사네도 언제까지나 저런 헛간 같은 데서 살 순 없을 테니 이사를 하든지 어떻게 하겠지...”

(31) 집 안이 너무나 조용해서 “오겐 상, 오겐 상” 하고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어 머뭇머뭇 장지문을 열어보니 오겐은 탄자루를 발받침으로 삼은 듯 토방 한가운데 대들보에 허리띠로 목을 매 죽어 있었다. 
이틀이 지나 대나무 쪽문은 치워졌다. 그리고 전처럼 산울타리가 쳐졌다.
그리고 나서 두달쯤 지나 이소끼찌는 오겐과 비슷한 연배의 여자를 마누라 삼아 시부야 촌에 살고 있었지만 역시 돼지우리 같은 집이었다.


나쯔메 소오세끼 <이상한 소리>

(40) 나는 묵묵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이 가는 소리로 남을 짜증스럽게 하며 죽은 남자와 숫돌 소리로 남을 부럽게 만들며 병이 나은 사람의 차이를 마음속에서 생각했다.

 

시가 나오야 <오오쯔 준끼찌>

(56) 그런데 아버지는 나에 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뚤어진데다 교만하고 신경질적이며 울보에다 독립심이라곤 없고 게으름뱅이에 설상가상으로 아무래도 빨갱이 같아.”
그러면서 내게는 곧잘 이렇게 말한다.
“너는 대학을 나오면 반드시 자립해다오. 이건 너를 한사람의 신사로 보고 굳게 약속을 해두는 거니까.”

(92) (할아버지 사후에는 거의 나 하나만을 위해 살고 있는 듯한 할머니—성격이 강한 할머니는 오랫동안, 하나뿐인 손자인 나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기 생각대로 하려 들고,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할머니를 내 맘대로 하려 든다. 두 사람의 이런 격렬한 싸움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내 소년시절 이래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할머니라는 적에게 언제나 사람을 받으며 또 사랑하면서 한편에서는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4) 사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비정상적으로 발육한 어린애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즐 젊은 우리가 하는 말들이 언제까지나 가치 없는 공상이고, 그것이 실제 인생에서는 끝까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 심하게 자아도취적인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에 대한 그 열렬한 야심과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자신감에는 어딘가 불균형한 데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때 당시에는 어느정도나마 자신을 가질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우리가 우쭐하면서도 여유 없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새된 목소리였다. 더구나 이런 끼익끼익 하는 잘난 체는 사실 우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었다. 내가 치정에 미친 얼간이인 것처럼 우리 패거리 이외의 남에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미친 얼간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미야모또 유리꼬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200)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대부분의 일들은, 다른 이를 돌본다는 것에 굶주렸던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동정했다.
하나 그런 것들이 그들의 평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내가 정말로 커다란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고 깊은 동정으로 끌어올리려 했단 신 상을 죽게 하지 않았으리라!

(201) 그러나 부디 미워하지 말아주기를. 나는 분명히 조만간 무언가를 붙잡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리라. 부디 그때까지 기다려주기를. 건강하게 일해줘! 나의 슬픈 친우여!


타니자끼 준이찌로오 <이단자의 슬픔>

(219) 몇백명이나 되는 주민이 있는 이 하쪼오보리 마을 안에 베르그쏭의 철학 같은 것을 알고 있는 놈은 나 말고는 없다. 만약 인간의 사상이라는 것이 행위와 마찬가지로 밖에서 보이는 것이라면 이 근처 인간들은 내 머릿속의 학문에 얼마나 놀랄까?

(241) 후회라고 하면 언제나 개전이 동반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를 비판하긴 하면서도 그것을 고치려는 결심에는 이르지 못했다. 고치고 싶어한들 도저히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만약 다시 한번 지난번의 일 같은 경우를 만난다 해도 자기는 분명히 마찬가지로 이요몬 모임을 주장하거나 스즈끼의 돈을 우려내거나 했을 게 틀림없다.

(259) 그와 친구들 관계는 결국 ‘술친구’ 정도에 머물렀다. 어쩌다가 쇼오자부로오의 인격을 과대평가하여 저쪽에서 친교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오히려 쇼오자부로오는 마땅치 않았다. 그가 친구들에게 원하는 것을 노골적인 대답으로 표백해버리자면 ‘어차피 나는 이기주의적이고 더없이 믿을 수 없는 성격이니 그게 싫다면 차라리 사귀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흐리멍텅‘한 대신 말을 잘하고 상당히 귀여운 데도 있으니 그게 재미있다면 신용 없다는 것을 용인하고 사귀면 된다.’-- 이런 이야기로 귀착되었다.

(265) 남편은 아내를 다스릴 힘이 없고 아내는 남편을 격려할 마음이 없으니 서로가 현재의 처지에서 빠져나갈 궁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마다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면서 추악한 삶을 이어갈 뿐, 분발하려고도 자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268)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해일처럼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살 수 있는 만큼은 살고 싶었다. 설령 그의 처지가 애처롭다 한들 그가 태어난 세상에는 악마가 가르쳐주는 갖가지 환락이 넘쳐나는 듯이 보였다. 그는 부디 살아남아 언젠가 한번쯤은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관능을 그 환락의 독주의 바닷속에 담가보고 싶었다.

 

시마자끼 토오손 <클 준비>

(289) “아,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주변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유우꼬는 왠지 모르게 슬픔이 북받쳤다. 그 슬픔은 어린 시절과의 결별을 고하는 슬픔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눈으로 주변 어린아이들을 바라볼 수도 없게 되었다.


카와바따 야스나리 <산다화>

(309)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임신을 부추겼던 것이다.
평화를 이것만큼 현실로 보여준 예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패전도 오늘날의 생활고도 장래의 인구난도 개의치 않는, 무엇보다 개인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막혔던 샘물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말랐던 풀이 다시 싹을 틔운 듯했다.

(314) 전쟁 때문에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아이들이 불현듯 불쌍한 생각이 들고, 전쟁중에 흘러가버린 나의 삶 또는 서글퍼지면서, 그런 것들이 무엇인가로 다시 살아돌아오는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오오까 쇼오헤이 <모닥불>

(331) 잔인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봤자 그런 아버지가 옆에 있어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너무나 잘 아는 일입니다. 이에꼬는 결국 집을 나와서 저와 같은 길을 걷게 되겠지요. 그것보다는 여기서 죽어버리는 편이 더 낫습니다. 저도 그 공습 때 죽어버렸다면 더 좋았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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