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동안 한 편씩 야금야금 읽었다. 첫 작품으로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을 만난 것이 그렇게 좋은 시작이 아니어서 한동안 묵혀두었다가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한 편 씩 읽어나가는데,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고 묵직한 작품들을 만나면서 18세기, 19세기의 미국 단편 소설들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았다.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이라 여겨지지만 이 위대한 작품들을 내 짧은 지식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미 수천, 수만 편의 논문들이 나와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읽었다는 증거라도 남기기 위해 각 단편들에 대한 짤막한 감상 메모를 남겨 본다. *젊은 굿맨 브라운(너새니얼 호손) ✎ 너무 몽환적이어서, ‘이게 무슨 의미지?’하고 물음표만 남겼던 작품이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왜 굿..
오랜만에 600쪽이 넘는 책을 손에 쥐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보고 아동용 문고본으로 몇 번이나 읽은 적이 있는 그 허클베리의 이야기였기에 소설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지만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소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디언 조와 얽힌 동굴의 황금을 얻은 후()에 펼쳐지는 허클베리 핀과 짐의 로드 스토리(무비)? 언뜻 떠오르는 ‘그린북’이나 ‘맨 인 블랙’(요건 좀 아닌가?)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혹은 어릴 적 감명 깊게 봤던 드라마 외팔이 범인을 쫓는 ‘도망자’ 시리즈 느낌도 나고.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둘 다 각자의 사연을 숨기고, 도망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뚜렷한 줄거리는 없지만 그곳에서 ..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검은 고양이’나 ‘어셔가의 몰락’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기억에 남는 선명한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이 연상되는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라든가, 흡혈귀 관련 영화나 소설과 연관 있어 보이는 ‘리지아’, 요즘 공포영화(와 같은)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윌리엄 윌슨’,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게 하는 ‘구덩이의 추’,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연상하게 하는 ‘붉은 죽음의 가면극’, 또한 홈즈 이전 추리의 시조새같은 캐릭터 ‘오거스트 뒤팽’의 등장까지! 마치 버라어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독서였다. 솔직히 지금 오락영화, 특히 공포나 괴기 영화의 영감의 원천은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들이 아니었을까? -인상 깊은 구절- **인상 깊..
-끝까지 읽고 첫장을 다시 펼쳐 읽으니 무슨 말인지 알게 된 책. -어린이 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사회풍자 문학이었다는 것(단어, 사건 하나하나 마치 작가가 마련해 놓은 보물찾기 마냥 독자들의 정독을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소인국, 거인국까지는 예상한 바와 같았으나 라퓨타를 다룬 3부부터는 충격 그 자체. 지금의 시각으로도 엄청난 SF적 상상에 날카로운 풍자까지. 특히 불로하지 않는 불사의 스트럴드부러그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아집과 편견으로 늙어가는 인간에 대한 가장 끔찍하고 무자비한 저주 혹은 비판이 아닐까? -제4부 후이늠 종족과 야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을 떠올린 것이 나만은 아니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의 인간들보다 책 속의 야후는 끔찍하..
동료들에게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담양공공도서관과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찾았지만 모두 대출 중이었다. 일단 예약을 해 두고 기다렸는데 다행히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금요일 점심 때 빌릴 수 있었다.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피카레스크식 구성 속에 편의점 always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삶이 힘들고 외롭고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이지만,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독고 시의 사람에 대한 접대와 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관계를 회복할 용기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에서 독고씨 역시 술로써 회피하려 했던 자신의 과거와 대면할 힘을 얻고. 이야기 진행에 무리가 없고, 적절하게 유쾌한 부분도 있어 좋다. 생각해 보니..
책을 읽는 도중 영화를 봤다. 이미 책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거기에 작가의 목소리가 끼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괴물이 창조되고 창조된 괴물은 모습은 지극히 모순되고 비과학적이었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 소외와 고독,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비극과 디스토피아적인 상상 등 너무너무 다양한 생각들을 열어준 진정한 고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이야기는 인상깊은 구절에 풀어놓았다. -인상 깊은 구절- (19)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데는 역시 흔들리지 않는 목표만한 것이 없나봅니다. 영혼이 하나의 초점에 지성의 눈길을 고정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 원정은 제 어린 시절에 품었던 가장 소중한 꿈의 실현입니다. 저는 극점을 에웠싼 바다를 지나 북태평양에 도달하고자 했던 여러 원정 기록..
다양한 식물과 실험 도구들, 그 사이 자그마한 온실이 뚜렷하게 강조되는 표지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더스트 시대 ‘프림 빌리지’의 레이첼의 온실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뿌연 미세먼지와 같은 더스트 속에서 울창한 숲을 가꾸고 지켰던 ‘프림 빌리지’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지에 잘 담았다. 책 제목 “지구 끝의 온실”도 인상적이다. 보통 시작과 끝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구 끝’이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감추어진 이야기를 제목에도 잘 담았다. 기후 위기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가 증식 나노봇을 개발했으나 오히려 그것이 지구 생명체를 멸절시키는 쪽으로 폭발한다. 더스트를 피해 사람들은 크고 작은 ‘돔 시티’를 만들지만 한정된 자원 안에..
모임에서 8월에 이야기 나누기로 한 책이다.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책을 받아보니 제법 두툼하다. 둘째 아들이 책을 보더니 “코스모스”와 비슷하다며 나란히 꽂아둔다. 느낌이 왔나? 책갈피 용으로 ‘타우세티’까지 가는 편도용 우주선 티켓 2장이 들어 있었다. 편도라. 아예 돌아올 수 없는 멀리까지 가야 하는 일인가 보구나. 책의 마지막 쪽을 확인할 때까지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웠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결말이 궁금했다. 이틀을 태양계에서, 타우세티로, 40에리다니까지 광속으로 달렸다. 이런 책들은 후유증이 제법 길다. 한동안 유튜브로 태양 근처의 항성들을 살펴보았다. 2014년판 “코스모스” 다큐도 다시 보았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이 광..
모임에서 6월에 읽고 나누기로 한 책인데, 업무로 시간을 낼 수 없었고, 두께에 부담을 느껴 펼치지 못했다. 마음의 방학 숙제로 이제야 읽어보니, 이야기의 상황을 짐작하는 재미에, 인간이란, 또 클라라, 조시, 릭 등 인물들의 미래가 궁금해 재미있게 읽었다. 먼저 표지가 눈에 띈다. 양장본의 겉표지는 빨간색 바탕에 샘물체 계통의 각진 폰트가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제목과 이야기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 준다.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양장 표지는 제목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강조되고 있어 작가의 지명도가 느껴진다. 표지를 넘기면 창문으로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이 슬라이드처럼 펼쳐져 있다. 시작과 끝을 나타내듯. 이야기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AF(artificial friend)인 ‘클라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