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모임에서 6월에 읽고 나누기로 한 책인데, 업무로 시간을 낼 수 없었고, 두께에 부담을 느껴 펼치지 못했다. 마음의 방학 숙제로 이제야 읽어보니, 이야기의 상황을 짐작하는 재미에, 인간이란, 또 클라라, 조시, 릭 등 인물들의 미래가 궁금해 재미있게 읽었다.

 

먼저 표지가 눈에 띈다.

양장본의 겉표지는 빨간색 바탕에 샘물체 계통의 각진 폰트가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제목과 이야기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 준다.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양장 표지는 제목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강조되고 있어 작가의 지명도가 느껴진다. 표지를 넘기면 창문으로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이 슬라이드처럼 펼쳐져 있다. 시작과 끝을 나타내듯.

 

이야기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AF(artificial friend)클라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판매를 위해 매장의 쇼윈도에 진열된 클라라는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태양 보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한다. 그러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구입하러 오겠다는 소녀와 눈을 맞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되지 않았고 세 번째 만남 끝에 조시의 AF가 된다.

 

조시는 자주 아프다. 생사를 넘나들 때도 있어 불안한 상태다. 조시는 태생적인 문제나 후천적인 사고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적 신분을 갖기 위해 신체를 향상시키는 과정의 부작용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조시의 언니 역시 요절했고.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돌보고 친구 역할을 해 주기 위해 선택됐지만, 엄마에게 다른 중요한 목적이 따로 있다.

클라라는 조시를 세심히 관찰하며 조시가 낫기를 바란다. 자신의 경험 속에서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비법을 찾은 클라라는 조시의 쾌유를 태양에게 빌며 자신 역시 그런 태양을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런 클라라의 노력과 희망에, 로봇에 호의적이지 않은 조시의 어릴 적부터 친구이자 미래를 약속했던 릭도 클라라를 선택·구입한 것에 반감을 가지는 조시의 아빠도 돕는다.

 

신체를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몹시 아픈 조시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릭과는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까, 클라라는 계속 조시와 함께 지낼까, 클라라를 선택·구입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의 결말과 관련돼 있어 메모하지는 않는다.

 

글을 읽다 보면 클라라가 로봇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백지상태에서 관찰을 통해 하나씩 배워가는 사람의 모습인데 마치 아몬드윤재같다.

클라라는 관찰력이 뛰어난데 클라라의 시각 시스템은 여러 상자(센서 같은 것일까)로 구성되어 있어 일련의 상황 속에서 차이점에 주목하는 것 같다. 또 비슷한 상황의 이전 이미지와의 차이점도 잘 발견하는 것 같고.

이런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대상의 심리 상태를 생각하고, 자신도 그런 입장이 돼 보도록 노력한다. 즉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 같다. 심지어 긍정과 부정이 함께 뒤섞여 있는 상황까지 점점 이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의 처지를 이해하고 더 좋은 쪽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경험을 적극 활용한다. 조시가 낫기를 바라며 태양에게 소원을 빌고 그 대가를 치르려 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진화 과정과 유사해 클라라를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공감을 이야기하는 뇌과학 관련 책에서 관찰하고 모방하며 그 감정을 느끼고 공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과정이다.

 

문득 인류의 오늘이(진화가) 오랜 시간의 누적된 결과라면 그 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도록 능력이 발달돼 있다면 인류처럼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이 일었다. 우리 생에는 오지 않을 거라는 특이점이 올 것 같은. 물론 이야기에서는 설사 클라라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흉내낼 수 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문제도 충분히 제기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이 참 안타깝다. 저무는 태양과 같이 저무는 클라라의 모습에 많은 것이 중첩된다.

 

이 소설에는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술이 행해지고 그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라진다는 설정, 신분제 사회의 복색처럼 그 사람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설정, 향상이 안된 보통 사람들은 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설정 등 어두운 미래 사회가 그려진다.

 

인간의 진화 이유를 에서 찾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무 위에 살던 유인원이 자신의 상황을 극복할 희망을 찾아 초원으로 내려워 직립하게 되고, 희망을 찾아 떠다니면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급격히 발달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그런데 인류 진화의 원동력인 희망이 사람에게선 사라지고, 오히려 인간 아닌 로봇이 꿈꾸는 모습에 누가 더 인간적인지, 인간으로서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인상 깊은 구절>

(36) 인도 위를 지나가는 사람을 눈으로 좇으면서 이 사람도 그 운전사들처럼 화를 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혹은 저 사람이 화가 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 운전사들이 느꼈을 분노를 느껴 보려고 했다. 나와 로사가 서로 엄청나게 화가 나서, 운전사들처럼 싸우고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상상을 해 보려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택시 운전사들이 그러는 걸 봤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도 그런 감정의 씨앗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내 생각이 우스워서 웃고 말았다.
창문으로 다른 것들도 봤다. 다른 종류의 감정을 보았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내 안에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창문 셔터를 내린 뒤에 천장 조명이 바닥에 던지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클라라는 섬세한 관찰로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고 공감해 보려는 노력한다. 그것이 태양이 아닌 천장 조명에 비쳐진 대상의 그림자 정도라도.

 

(247) “해가 공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요. 공해 때문에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나는지요. 저는 공해를 만들어 내는 기계를 본 적 있어요. 제가 그 기계를 찾아내서 망가뜨린다면요. 공해를 더 만들지 못하게 끝을 낸다면요. 그런다면 그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나요?” (중략) 
해가 그 뒤로 피곤한 듯 이제 흐릿한 빛을 내며 땅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이 밤으로 물드며 별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해가 쉬러 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짓는 걸 느꼈다. 
마음에 고마음과 존경이 솟아서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해의 마지막 빛이 땅 밑으로 사라질 때가지 서 있었다.

 

사람은 계속되는 어려움에 희망을 놔 버리고 대안 대안을 찾는데, 로봇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순수해 보인다.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321)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도 옆길에서 끼어들려고 하는 차에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

 

사람의 마음을 집 안의 에 빗대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다. 열심히 노오력하면 사람의 마음을 다 알아챌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내 마음을 해석할 수 있을까. 그렇게 결정되지 않았기에 사람이지 않을까, 누구 하나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고.

 

(442)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필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특별함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있다는 말인데, 클라라가 조시를 대체하는 역할이 아닌 클라라가 사람들과 동등하게살아간다면 클라라 역시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말로도 읽힌다.

 

*엮어 읽기

손원평, 아몬드, 창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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