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이 1,2(조정래)

 

2024년 첫 번째 독서모임에서는 "황금종이"와 "함께 걷는 소설"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황금종이"는 작가 님의 필력을 기대하며 선택한 책이고, "함께 걷는 소설"은 "눈부신 안부"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백수린 작가 님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어 선택했다.

 

"황금종이"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황금만능,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표지 그림을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난 붉은색 형상 속에서 돈에 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렇지만 사람들 내면에 깊이 있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찾아내자는 생각으로 보이기도 했다. 

두 권짜리 소설이라 돈과 관련된 깊이 있는 갈등이 그려질 줄 알았으나 일종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이태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간부인 친구들의 돈과 관련된 가족사, 이태하 변호사가 변호하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돈 때문에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학생운동의 순수함을 가지고 자본의 비정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한지섭, 이태하의 모습은 황금만능의 사회를 지탱해 주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로 심란했다. 잘 믿기지 않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작가님의 전작  "허수아비춤"이 떠올랐다. 삼성의 불법 승계를 통한 재산형성 과정과 경제 정의, 무엇보다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딴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 책 "황금종이"는 그러한 의식이 중산층과 서민층까지 일반화되었음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확인해 주고 있었다. 

작가님은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는 말처럼 문제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을 뿐 해결과정은 독자가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마침 총선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세상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지역별로 드러나게 될 텐데 그 결과 사뭇 궁금하다. 

 

<인상적인 구절>

(17) "다른 중독들은 남을 해치는 일 없이 스스로 허물어지고 망가지는데, 돈 중독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마구 죽여대니까."

중독에 대한 정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금연이나 절주처럼 돈 중독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있는가, 오히려 돈에 더 집착하고 중독되게 하는 각종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72) "부모가 남긴 돈 앞에서 모든 자식들은 다 쌈박질하게 돼 있어. 그게 돈 욕심이 시키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다만 큰 돈 앞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작은 돈 앞에서는 작은 싸움이 벌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큰돈 앞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작은 앞에서는 작은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은 결국 돈으로 인한 갈등이 모두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서도 돈의 규모와 상관없이 돈에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줄곧 나타난다.

 

(89)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치지 말고 성실히 합시다.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고, 진정으로 행복한 자족적 삶이 아니겠소. 그 길을 향해 우리 함께 지팡이가 됩시다.

변호사 이태하가 돈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한기섭에게 이야기하지 한기섭이 한 말이다. 직업인으로서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씩 이뤄 가자는 격려의 말인데,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의사 증원에 대한 파업을 바라보면서 이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121) '돈…, 돈… 돈은 무엇인가…'
이태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보다 훨씬 자주 회의에 빠지는 물음을 곱씹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물음이 그렇듯 돈에 대한 물음에도 선명한 답이 없었다. 아니, 이런저런 답이 많았지만 결정적인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정치와 종교가 인간 세상의 2 필요악이라는데, 돈을 더해서 3대 필요악이 아닐까…

'돈'이 3대 필요악이라는 말이 소설에서 여러 번 나온다. 요새 인간의 정치를 원숭이 사회의 정치로 해석하는 이야기도 듣는다. 여하튼 정치나 종교, 돈은 인간만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과 같은 재물 욕심을 가진 동물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만들었다면 사람이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166) "그때부터 아첨배들에 의해 전라도 사람들을 '하와이'라는 별명으로 불러대며 '인간성이 나쁘다, 배신을 잘한다. 거짓말을 잘한다, 의리가 없다' 등등 온갖 나쁜 누명은 다 씌어가며 이승만 독재 12년 동안 여론조작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고 뒤따라 이어진 박정희 독재 18년 동안 경상도 최우선의 지방 차별을 자행하면서 '하와이' 매도를 확대 재생산해서 전라도는 모든 국민이 무조건 경원하고 경계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두환 때 '광주 사태'를 하필 전라도 땅 광주에서 일으킨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전라도 하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박용만에게 밀리다, 광복 귀국해서 김구에게 밀리며, 김구를 열렬히 호응한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지역차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승만의 '과'가 하나 더 드러났다.

 

(282)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312) 인간 사회를 지배해 개의 권력은 정치와 종교다. 그런데 가지를 지배하는 권력이 있다. 그것이 돈이다."
"자본주의는 돈의 위력과 만능성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어 올린 주의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돈의 노예화를 선언한 것이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죽었고, 생살여탈권을 가진 돈만이 오로지 살아 있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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