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소설(백수린 외)

 

"눈부신 안부"의 백수린 작가의 작품을 찾다 이 책까지 오게 되었다. "함께 걷는 소설"은 창비의 청소년을 위한 시리즈 도서로 '벗과 함께하는 일의 소중함' 또는 '진정한 우정'을 다루는 소설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이 청소년에게 맞을까 싶다. 흔히 정의하는 '청소년 문학"의 범주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어덜트 소설처럼 성장이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크게 보아 '성장 소설'로 보지만 중학생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약간 주저된다. 기억할 겸 단편의 내용을 짧게 메모한다.

 

1. 고요한 사건(백수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요한 사건'이란 제목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요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이지 않을까. 따라서 자신의 삶이 이른바 고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한 장면)에 대한 성찰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성장의 결정적 순간의 머뭇거림 같은 것.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떤 면에서 "함께 걷는 소설"에 포함되었는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41)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 보면 그것이 내 인새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새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2. 치즈 달과 비스코티(이유리)

망상장애를 가진 서술자는 23살 때 조면암 친구 '스콧'을 만났다. 그러다 글쓰기 교실에서 '쿠커'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내와 짝이 되었고, 잘 맞지 않지만 여러 사건을 거치며 '사람과' 친구가 된다.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함께 걷는 소설"이라는 주제에 잘 맞는 재미 있는 이야기다. 

 

3.우따(강석희)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때 '똘레랑스'란 단어로 프랑스 사회를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로 염려스럽다.(독후감을 쓰지는 않았지만 "복종"이란 소설도) 프랑스 사회의 인종차별, 그리고 무엇보다 우따의 아빠처럼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의 출생(신분)을 부정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선 우정이 인상적이다.

 

(98) 나에게 파리와 서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겁함이 영리함이고 침묵이 성숙이라는 것은 8,960킬로미터를 날아와도 변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우따와의 만남이 후회스러웠다. 그날들에서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우따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탁트인 길을, 누군가가 그런 길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는 길을, 빠르게 달릴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4. 드라이브(김지연)

서울에서 평범하고 소극적으로 생활하던 서술자는 삼촌이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고향(느낌상 거제도)으로 내려 온다. 그곳에서 여고시절 자신을 일방적으로 싫어 했던 반장을 만났고  반장이 사과하며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둘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5. 그림자놀이(천선란)

미래 사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수술을 받은 간호사 주인공은 20년 전 우주로 떠났다 돌아온 친구를 돌본다. 사람에게 있어 '공감 능력'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요소일까.

 

(145) 전쟁은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극대화되어 초래한 비극이라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칼을 쥐고 있지 않아도 행해지는 수많은 전쟁과 살인들이 결국 '공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수술은 그 거울을 깨뜨린다. 거울 뉴런계를 차단함으로써 타 개체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모방하지 않아, 거울을 통해 개체의 마음을 공갈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의 감정을 혼란스럽거나 통제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완벽한 인간(새로운 인간) 만들기 위해 감정을 제거한다는 설정의 이야기가 많다. 기억전달자도… 불완전하고 통제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모습이 우리 인간의 가장 힘이라는 것에 모든 인간의 삶에 전제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서이라는 감정을 없애는 시술을 받았지만 몸이 감정을 기억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결국 감정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러한 기능은 어느정도 회복되지 않을까. 인간이기에. 한편 인간을 닮을 로봇에게 계속 감정을 부여하는 시도는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 미래 완벽한 인간의 모습에 감정 역시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6.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김사과)

이건 예술가와 보헤미안의 차이를 전제로 읽어야할 같다. 맥락으로 보면, 보헤미안과 예술가는 비슷하지만, 보헤미안이 좀더 자유롭게 세련돼 보이지만, 예술가는 격식 있고 답답한 사람인가?

 

7. 축복을 비는 마음(김혜진)

청소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대가를 떠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 전후 과정을 보면 이용 당하는 느낌이 들고,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이 속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드러내지 못했을 뿐, 일하는 만큼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이다. 사용자는 그것을 불평이 많다고 치부하지만.

 

(224) 그것이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 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을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네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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