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코로나가 없었다면 두 형제는 지금처럼 우애가 돈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출근한 사이, 등교하지 못하는 고1과 초1, 이 두 형제는 9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같이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보내며 진한 우애를 다졌다. 엄마, 아빠와 자던 둘째가 형이랑 같이 자겠다며, 베개를 들고 형 방으로 갈 정도로. 다행히 등교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둘째는 기숙사에 들어간 형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듯 심심하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한다. 둘째 아이의 호흡에 맞게 함께 저녁을 먹고, 배드민턴에 야구를 하고, 책을 같이 읽고 얼른 재우고 다시 일어나려고 하지만 함께 자고 만다.그리고 3시 무렵에 깬다. 다시 자기엔 허리가 아프고, 컴퓨터를 켜면 아침까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날이 밝을 것..
올 초 청소년 소설 읽기 모임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이 책 “아가미”가 포함되었다.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씩 이 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은 더 세상을 알게 되었을 텐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세상의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 그동안 만났던 작풍과 ‘아가미’라는 소재를 연결해 보니, 밝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 인간의 이야기에 아가미가 등장할 정도라면 진화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상황이거나, ‘아가미’는 돌연변이이므로 평범하기 살기 어려운 상황을 그리지 않을까 싶었다. 추측만큼 이야기는 무거웠다. 이야기의 배경인 호수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크기만큼이나 부유물도 많은 큰 강에 빠지는 이유도 생을 마감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될..
페이스북에 “청소년 마음 시툰” 서평단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했다가 시툰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4월 초에 책 3권을 받고, 중순에 간단히 설문에 참여하는 것으로 공식적인 활동은 마무리됐다. 지금은 책을 읽고 나서 한 달이 지났으니 좋거나 싫거나 분명한 감정만 남은 셈이 되었다. 그 사이 이 책은 초등교사 2명, 중등교사 1명, 중학생 여학생 1명, 인문계고 여학생 1명, 특성화고 남학생 1명 이렇게 6명과 돌려 읽었다. 평가가 좋았다. 내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웹툰은 중딩의 진로 고민, 친구와의 갈등, 첫사랑의 아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을 잘 담았다. 거기에 천상계 동물 ‘해태’가 문학적인 시험을 통과해야 천상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안내도 해 준다. 나름..
최초의 책. ‘최초’가 주는 이미지에 끌려 책을 들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의 ‘최초의 책’일까. 중1,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하던 주인공 ‘고윤수’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학교도서관과 지역도서관을 겸하고 있는 시골의 ‘풀잎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고전 강좌도 들으며 나름 도서관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사서 선생님을 돕기도 하면서 자기 효능감도 커진다. 그런데 도서관이 미군 기지 건설부지로 결정되면서 도서관은 폐관되고 책들은 읍내 도서관으로 옮기게 된다. 여든 살의 권혜영 사서 선생님을 도와 장서를 정리하다 선생님이 쓴 “위대한 도서관과 사라진 책”을 존재를 목록에서 발견하고, 책더미 속에서 찾는데 이 책이 ‘최초의 책’이다. ‘최초의 책’은 책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독자..
청각 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듣지 못하는 불편함 때문에 답답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이 짠하게 보이지 않을까? (64) 소리를 못듣는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랬으니까.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는 감각 외에 소리라는 감각이 하나 더 있고,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드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은 거라고. (73)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으로 어린이 대상의 글인데, 읽다보면 아이를 순종적인 아이로 기르고자하는 어른들의 욕심을 비판하는 글로 어른들에게도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부모 자식이 함께 읽으며 자율성, 독립성, 자아, 생명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부터 이야기 나눌 만하다. 왜 “열세 번째 아이”일까.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돌인 12를 지난 새롭게 시작되는 아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가장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열세 번째 아이에게서 ‘완벽‘이 아닌 ‘완전’한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완벽’이란 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결국 문제는 어떤 점이 갖춰져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순천까지 온 전국국어교사모임 연수는 역설적으로 올해가 가장 추웠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었다. 강의실도 추운데, 온기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복도에는 출판사 ‘양철북’과 ‘휴머니스트’에서 가판대를 설치하고 교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책이 인연이 돼 가끔 책을 보내주는 양철북에 인사하러 들렀다, 이 책 “디그요정”을 추천받았다. “디그요정” 배구를 하며 자존감을 발견하는 거울을 바탕으로, 농구나 배구에서 작전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동그라미와 가위표가 눈에 띤다. ‘디그’라는 말의 뜻을 모르더라도 배구와 연관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리고 초임 시절까지 친목활동으로 배구를 자주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배구 겨울리그도 재미있게 보았다. 시..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특별하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학생들의 흡연도 많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흡연을 문제 삼는 것은, 중독성이라는 흡연 자체도 문제이지만, 담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돈이 부족하거나 담배를 구할 사람이 많지 않아)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또 중독성이 심해질수록 무단 외출 등으로 인한 근태의 문제, 인근 지역의 민원 발생, 또 교내 흡연으로 인해 근태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도 높다. 결국 담배가 문제이므로 가급적 처벌보다는 금연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금연학교" 제목처럼 흡연에 정조준하는 책이다. 사회적 분위기 상 흡연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금연 결심도 적지 않게 많은 것이다. 그러나 시도를 거듭할수..
사람과 로봇,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문제를 다룬 단편집 "안녕, 베타"와 연관된 책을 찾다 추천받은 책이 "한 스푼의 시간"이다. 제목만으로는 그 의미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희색 바탕에 점점의 흔적들과 파란 물방울 속 세상의 표지가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알았다. 직장에서 명퇴를 당하고, 새로 시작한 세탁소가 자리잡힐 즈음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한 명정은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아들도 이국에서 이국으로 출장가던 중 항공사고로 갑작스럽게 잃고 아들의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홀로 살아내던 중, 아들이 남긴 인공지능로봇을 택배로 받으면서, 둘째를 낳으며 불려주려고 했던 '은결'이라는 이름까지 부여하며 함께 생활하게 된다. (227) 사람이 무너지면 무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