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구병모)

올 초 청소년 소설 읽기 모임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이 책 아가미가 포함되었다.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씩 이 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은 더 세상을 알게 되었을 텐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세상의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

 

그동안 만났던 작풍과 아가미라는 소재를 연결해 보니, 밝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 인간의 이야기에 아가미가 등장할 정도라면 진화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상황이거나, ‘아가미는 돌연변이이므로 평범하기 살기 어려운 상황을 그리지 않을까 싶었다.

 

추측만큼 이야기는 무거웠다.

이야기의 배경인 호수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크기만큼이나 부유물도 많은 큰 강에 빠지는 이유도 생을 마감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될만큼 삶은 어렵다. 갑자기 내린 폭우는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도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든다.

 

이야기는 살려고 아등바등했으나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던 가장에게 11개월째 급여를 주지 않으면서 정 힘들면 어린 자식에게 앵벌이라도 시키라는 사장을 해친 뒤, 어린 아들과 함께 물어 뛰어든 아버지와 아들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을텐데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공감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이 짐작은 된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아가미가 있어 다행히 살아남았고, 아이를 구해 준 강하 가족과 살게 된다.

하지만 강하는 불안하다. 아이()가 남들과 다른 점 때문에 남들 눈에 띄고 남들의 나쁜 의도대로 살아갈까 걱정도 되는 한편,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가졌기에 억압한다.

 

어렸을 때 강하를 버리고 떠난 엄마 이녕은 몸과 마음을 다친 채로 가족에게 찾아온다. 하지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외롭게 살아가는 곤이에게는 자신의 허물을 아름답게 봐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녕에게 곤 역시 강하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의도치 않는 사건으로 이녕은 죽고, 강하는 곤이를 걱정하며 사태를 수습한다. 곤은 남들의 눈을 피해 떠돌아 다닌다.

 

강하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며 산다. 그러다 실수로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 대해 쓴 이야기를 읽고 임을 직감하며 여자(해류)와 만난다. 비슷한 처지에 공통점도 있어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만, 하필 밤새 내린 비에 큰물이 지고, 물에 잠긴 외할아버지를 구하러 간 강하까지 물에서 나오지 못한다.

 

여자는 곤이를 찾아 나서고 강하의 마음을 곤에게 전달한다. 곤은 아무에게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타나며 살아간다.

 

나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 속에 삶을 마감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상황과 표현은 거칠지만 그래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연대의 마음도 있고, 바닥없이 침전하더라도 살아가겠다는 해류의 다짐에 힘이 실린다. 아가미 덕에 물에서 자유로운 곤은 보면서, 우리도 남들과 '다른 무엇' 때문에 이상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덕에 더 많은 자유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의 명명이 대부분, 소설의 제목인 아가미, 물과 관련이 깊다.

먼저 은 책에도 나와 있든 장자에 나오는 상상의 물고기이다. 이야기에서 곤은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을 구해주고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 강하는 강과 하천의 의미로 세상과 연결돼 있기도 하고, 그자체로 하강의 의미도 있는데 이야기에도 그렇게 나타난다. 강하의 어머니 이녕은 늪과 같이 질퍽한 곳이라는 의미인데 역시 그러한 삶 속에서 이내촌으로 돌아온다. 곤에게 큰 도움을 받은 해류역시 흐르는 바닷물의 의미로 담담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성인 까지 더하며 곤과 강하를 연결해 준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배경인 이내’호, '이내'천의 '이내'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의 의미가 있는데, 항상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알 수 없는 그런 배경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런 작명은 작가의 다른 소설 피그말리온 아이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갑소녀전'도.

 

작가의 어휘 사용도 인상적이다.

만귀잠잠하다(29), 주두라지(29), 푼거리질(31), 도린곁(32), 도사리(33), 징청하다(70), 시난고난(132), 더치다(139), 보유스름하다(146), 청완하다(151), 결곡하다(175) 등 익숙하지 않는 어휘들을 사용해 낯선 느낌을 더한다.

 

<인상적인 구절>

(22) 저는 그것이 사람이었든 물고기였든 혹은 네시였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가 저한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 재개약에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에요.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 해류는 죽을 생각이 없었기에 살아남은 것을 크게 다행스러워하고 있다. 물에 빠졌을 때 인어 공주나 왕자 같은 행운을 만날 일은 없겠지만 살다보면 '운이 좋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으니까 살아야하고 현실은 바닥 없는 물일 수도 있지만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바다는 육지 결국 땅 위에 있을 뿐이다.

  

(185)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 곤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강하에게 자신의 존재를 오롯이 인정받는 말이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 “그래서 없어졌으면 좋겠어.” 정말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표현들을 온라인에서 많이 보게 된다.

 

아가미
국내도서
저자 : 구병모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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