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책(이민항)

최초의 책.

최초가 주는 이미지에 끌려 책을 들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의 최초의 책일까.

1,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하던 주인공 고윤수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학교도서관과 지역도서관을 겸하고 있는 시골의 풀잎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고전 강좌도 들으며 나름 도서관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사서 선생님을 돕기도 하면서 자기 효능감도 커진다. 그런데 도서관이 미군 기지 건설부지로 결정되면서 도서관은 폐관되고 책들은 읍내 도서관으로 옮기게 된다.

여든 살의 권혜영 사서 선생님을 도와 장서를 정리하다 선생님이 쓴 위대한 도서관과 사라진 책을 존재를 목록에서 발견하고, 책더미 속에서 찾는데 이 책이 최초의 책이다.

 

최초의 책은 책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독자를 골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며 마음에 들면 계속 읽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영혼을 삼켜 버린다. 또 겉모습을 스스로 바꿀 수도 있는 신비한 책인데 신비롭기에 많은 이들이 찾아다니며, 이 책의 위험성 때문에 이 책을 찾아 읽지 못하도록 하려는 사서 조직도 있다. 책은 윤수를 선택했으며, 윤수는 해가 지기 전 모습을 바꾼 최초의 책을 찾아야 하며, 책 속 주인공에 개입할 수 있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야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이 책 최초의 책도 책 속 핵심 소재인 최초의 책과 구성이 같다. 여러 챕터를 거친 끝에 윤수는 책을 끝까지 읽고 현재로 돌아오며 사서라는 자신의 꿈을 찾게 된다.

 

줄거리를 길게 적었는데 이 줄거리를 통해, “최초의 책이 독서의 과정에 빗대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는 어떤 계기로 책과 만난다. 그런데 의미 있는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책과 독자가 서로 호응해야(독자가 주인공에 개입하고, 그러다 동일시되기도 하는) 일단 끝까지 읽을 수 있고, 의미도 재해석, 재발견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삶이나 감정, 태도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의 성장이야기나 경험이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책은 주인공 윤수, 권혜영 선생님은 물론, 나 또는 우리의 성장에서 최초의 책일 수 있을 것 같다.

 

또 책을 통해 책의 특성, 읽기의 특성,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준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이름과 작가의 독서지식에서 나온 여러 장치들, 또 시간여행과 현재로 돌아오며 일어나는 시간 중첩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면서도, , 이 책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최초의 책은 책을 펼쳐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만 읽을 수 있다고 했으니.

 

판타지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아참, 읽을 때 챕터별로 인물과 사건을 메모해 가며 읽으면 좀더 재미 있을 것 같다.

 

*인상적인 구절

(149) 그래, 너희 말이 맞아.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너희가 말하는 것만이 내가 맞이할 미래는 아닐 거야.
난 지금에 살고 있으니까, 미래는 지금 무엇을 함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
그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과율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일단 가 볼 생각이야.
너희가 시궁창에 처박혀 입만 나불대는 동안,
너희가 말하는 그런 정해진 미래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미래로.

✎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현실이.. 네 주제에.. 등을 이유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거나 기성 세대의 말을 들으라는 경우가 많다. 위의 말이 익숙한 것이 결국 이것이 어렵지만 답이기 때문이다.

 

(221)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 데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그냥 가까우니까, 친구가 가니까, 용병 타자가 2루타를 쳤으니까에서 출발하면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영혜가 사서를 결심하기에 환상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탄이 날아오는데 갑자기 사서가 되고 싶었다.’ 원래 이렇게 인과관계가 뚝뚝 끊긴 계기가 더 멋있게 보이는 법이다.

✎ 20년 전, 특별한 계기 없이 10여 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아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금연했는지 물었다. 사실 손가락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싫어 하루 참았더니 참을만 해서 참았는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이 부분이 최초의 책느낌에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조짐이나 계기로 어떤 관계나 만남, 일이 시작될 수도 있지만 그냥 훅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 가는 것 아닐까.

 

최초의 책
국내도서
저자 : 이민항
출판 : (주)자음과모음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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