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김이환 외)

 

제목에서도, 표지에서도 언어폭력의 날카로움을 잘 느껴진다. 단편소설 5편 모두 재미있게 읽으며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되새겨 볼 수 있다.

1. 하늘과 바람과 벌과 복수(조영주)

계속된 따돌림이 트라우마가 되었고 자신의 상처를 소설을 읽고 쓰며 극복해 간다. 따돌림을 주도했던 아이도 다른 집단에서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할 줄은 모른다. 해환은 희선이 자신의 잘못을 알아챌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오히려 희선이 덕분에 천재 작가가 되었다며 통쾌해하며.

제목이나 주인공 이름 ‘해환’에서 윤동주 시인이 떠오른다. ‘서시’에 나타난 시인의 삶의 자세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최근 학교폭력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더 글로리”가 겹쳐진다. 해환이의 복수도 일종의 사적 복수는 아닐까, 해환이 자신의 아픔을 희선이에게 말하지 않아 희선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피해자의 상처 치유가 먼저다. 

2. 리플(정해연)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개, 돼지 취급하던 재혁이는 자신의 인스타에 패드립을 적은 범인을 찾으려 애쓴다. 여러 단서를 통해 범인을 특정하지만 성급한 판단과 행동으로 큰 곤경에 처한다.
반전 때문에 더 자세히 줄거리를 쓸 수 없지만, 이야기를 듣고 등장인물 중 ‘누가 더 나쁜가’ 토론할 만하다. ‘막말’도 나쁘고 ‘악플’도 나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며, 친구를 놀리면서 재미있어했던 때를 모두 반성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업이 쌓인다.

(75) “나도 황당하다. 나만 그랬냐? 다들 놀렸잖아. 그리고 그때 우린 어렸어. 어린애가 뭘 알겠냐.”

(82) 그런데 모지리의 행동을 보자 눈이 뒤집혔다. 약한 모습을 보니, 강하게 나가게 됐다. 도망을 가니 매서운 얼굴로 쫓아가게 된다. 그것이 모지리가 유치원 때 괴롭힘을 당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떤 짓을 해도 반항하지 못하는 녀석은, 그런 짓을 당해도 좋은 놈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 짓을 해도 좋다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88) 엄마는 믿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한, 한 번도 재혁을 그렇게 키운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라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3. 말을 먹는 귀신(정명섭)

성혁은 진훈이가 다문화 가정이라고 심하게 놀린다. 그 일로 진훈은 삶을 포기하려 한다. 이 사실이 보도되며 악플이 달리고 아버지는 직장에서, 외삼촌은 새로 차린 식당이 문을 닫게 된다. 
무당 출신의 새할머니는 성혁이에게 말을 먹는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부적이 가득한 방에 홀로 두거나 김언의 묘에서 부적을 태우는 미션을 눈다. 
5·18을 다룬 작가의 소설 “저수지의 아이들”에서도 귀신이 성찰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렇다. 의도는 읽힌다. 충분히 자신의 행동과 말소리까지도 들릴만한 성찰의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성혁이에 대한 대중들의 악플과 그 화가 외삼촌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성혁이에게 잘못의 큰 무게를 주기 위함이지만 과하다. 성혁이의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도 교사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등 비현실적인 요소가 눈에 좀 걸렸다. 그런데 다음 문장은 우리 아이들과 꼭 읽고 싶다.

(131) “말이라는 것은 입안에 든 칼이랑 다를 바가 없지.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타인은 물론 자신도 해치는 법이란다.”
“하지만 저는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세상에 틀린 말은 없단다.”
힘주어 말하며 할머니가 덧붙였다.
“잘못된 말이 있을 뿐이지.”
“뭐가 잘못된 말인데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곧 잘못된 말이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왜요?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말해야 하잖아요.”

(134) “말을 할 때 중요한 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이란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그렇다고 틀린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기준이 누구에게 있는 거지? 말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듣는 사람일까?”


4.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김이환)

에스피 시티와 컨트랙트 시티는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느낌이 난다. 친구에게 솔직히 말한 게 미안해 스스로 말하지 않기로 다짐한 ‘편리’가 컨트랙트 도시를 경험하며 비록 자기 다짐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말을 적당히 하게 되었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극과 극의 언어 문화를 가진 도시를 여행하며 어떤 언어생활이 더 적절한지 생각해 보게 하는 의도가 보인다.

5. 햄릿이 사라진 세상(차무진)

미, 중, 러 대통령의 말로 인한 오해와 오역으로 핵전쟁이 일어난다. 새로 문명을 일군 사회는 인간들은 말이 아닌 마스크를 통한 소리로서 소통하게 한다. 당연히 ‘입말 문화’를 되찾으려는 저항군이 활동하고 ‘럭키’는 저항군을 돕다 곤경에 빠진다.

말의 힘과 기능에 대해 지나치게 설명하는 장면들이 눈에 걸린다. 또 말을 안 쓰고 소리로 소통하는데 어떻게 말을 배우며 그 많은 생각을 소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언어의 특성’이 비춰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된다. 또 시민들에게는 말하지 말라면서 자기만 말하고 역시 그게 소통이 되는 ‘돈스피커’의 말도 아이러니하다. 
물론 작가의 ‘사랑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말이 서로를 미워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핵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에는 크게 공감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유산으로 보는 것 같다.

(259) “마스크는 불편해요. 게다가 비싼 마스크는 효과음이 많아서 뜻이 잘 전달되지만 가난한 사람은 뜻을 말하지 못해 불행해요.”

(265) “그래. 학교에서 말로 친구를 따돌리고 가정에서 말로 자녀를 학대하고 직장에서 말로 동료를 불신하고, 고립시키고, 오해하고, 헐뜯었지. 사람들은 상처받고 공허해졌어. 마음이 텅 비어버린 거야. 그 약해진 마음에 지식인, 정치인, 사업가, 종교인들의 거창한 말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어.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들의 거짓된 말이 인간을 나쁘게 만들었단다.”
“학문, 정치, 경제, 종교, 그리고 사회.”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