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12의 샘(안세화,이종산, 고비읍, 조우리, 이꽃님, 허진희, 조규미)

자유학기 주제선택 수업으로 ‘SF 소설 쓰기’ 반을 개설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분석할 SF 단편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 학교 도서실에 “B612의 샘”이란 단편집이 여러 권 있었다. 작년에 국어 샘이 이 책으로 연극 수업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검증된 소설이라 편하게 읽었다. 미래 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문제 상황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실제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책이 많지 않아 두 개 모둠은 이 책으로, 세 모둠은 “너만 모르는 엔딩”을 읽혔다. 둘 다 중1도 재미있게 읽었다. 간단한 책 소개. 

 


1. 안세화, 다시 만나는 날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더 멀어질 거라 예상된다. 이야기 속 미래 학교도 여건은 훨씬 좋아지지만 아이들 사이의 따돌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메이트용 로봇이 인간의 친구가 되어 주고 이를 통해 인간 친구를 사귀며 건강하게 성장해 간다. 메이트용 로봇에게 새로운 임부가 부여된다.

반전을 염두해 두었기에 도입 부분에 적응이 잘 안 됐다. 그 영향 때문인지 이야기가 그런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기계 문명이 발달하면 그만큼 인간의 이동과 소통도 더 간편해지지 않을까. 굳이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로봇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이 고민이 뒤의 이야기로도 계속 이어진다.

(21) K와 나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얘기하며 예전에 살던 기숙사 근처를 지났다.
"한때 요 근방에 수맥이 흐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K가 턱으로 C동 기숙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생각나?"
"당연하지. 어마무시한 돈을 들인 학교가 한순간에 문 닫을 뻔했잖아."


✎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이겠지만, 최첨단의 시대에 수맥이 웬 말인가 싶다.

(35) 세상에 인간이 만드는 것치고 완벽한 것은 없었다. 학교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가정과 사회도 완벽하지 않았다. 만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를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만들어 갈 가정과 사회는 더 엉망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똑똑한 어른들은 학교를 없애는 대신 학교 안의 문제들을 제거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과 인력도 기꺼이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을 들이고 또 들여도 문제 없는 학교를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 이 문단은 전반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1차적으로 가정과 사회의 흐름이 원만하며 학교는 그 흐름을 지속하거나 성찰을 통해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배워야할 것들이 학교로 넘어오고 있다. 가정이나 사회의 안전망을 더 두텁게 하는 것이 먼저다. 진정 학교에서 돌봄과 교육을 감당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2. 이종산, B612의 샘
현실의 학교 아닌 메타버스로 학교를 다니는 시대에도 인간은 인간과 친해지고 싶어하며 이성을 좋아하는 것도 본능 그대로다. 하지만 현실과 같이 부딪힐 기회가 많지 않기에 미래 사회에서 친구 관계를 두텁게 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B612는 소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로, 서로에게 진심을 말하라, 만남을 위해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메타버스 학교답게 인간 친구와 AI 친구가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69) "네가 나한테 좋은 A가 아니었다고 했지? 나도 그런 것 같아. A면 내가 다른 애들이랑 친해질 수 있게 도와줬어야지. 너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다고 느끼게 만들면 어떡해. 넌 진짜 무능력한 A야."
"그래, 네 그런 면 때문에 다른 애들이 너한테 다가오기 힘든 거야. 근데 내가 1,110일째 널 지켜봐 온 결과 네 그런 면은 귀엽기도 해. 널 천천히 알아 갈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거야."

 


3. 고비읍, 나에게 물어봐

(86) 어느 순간부터 지노와 대화를 할 때면 버디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화제의 중심이 다 버디였다. 다온은 다른 대화거리를 떠올리려 했지만,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노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대화에도 껴들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서나 버디 얘기뿐이었다.


✎ 사람을 도와주는 버디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에 장애가 생기고 있다. 심지어 버디에 모든 것을 의존해 버려 주체성까지 잃은 사람들이, 버디 사용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사적으로 버디를 구입하지만,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로 이용당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어보니 무한정한 ‘나에게 물어봐’는 폭력적이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인간인데 생각하지 말라니...
버디를 보니 챗gpt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한두 번씩 사용해 보았다 그 결과에 놀라며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챗gtp에게 질문을 하는 직업이 뜨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인공지능의 시대, 의문과 질문이 인간다운 세상을 계속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4. 조우리, 메타버스 학교에 간 스파이
소수 정예 학생을 뽑아 메타버스 학교를 실험하는 이야기이다. 전반적으로 ‘메타버스’에 관한 논의가 교육적 목적이 아닌 선거나 이윤에 바탕을 두고 있어 실패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이야기에서 새삼 학교의 존재 또는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본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정반합의 논리다. 보수와 진보가 안전한 테투리 안에서 충돌하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곳. 꼰대스러운 어른 또는 프로그램에 비해, 메타버스에서도 학교는 학교일뿐이라는 쿨한 대답이 인상적이다.

(117) "그 아바타 학교는 좀 어때? 다닐 만해? 그냥 학교보다 나아?"
"아니.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학교가 학교지 뭐. 별로 다를 거 없더라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는 거랑 머리 안 감아도 되는 거 빼고?"

(119) 메타버스 학교는 가영의 말대로 현실 세계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건물도, 운동장도, 주변에 주택가가 있는 풍경까지 혜윤이 다녔던 중학교와 비슷했다. 그런데 뭐가 특별하다는 거지? 왜 굳이 메타버스 학교를 만든 거야? 혜윤의 의심은 점점 커졌다.



5. 이꽃님, 에이저
인간다움의 통과의례(에이저)를 AI가 판단한다는 것, 그리고 미리 말할 수 없는 반전까지 더해져 이야기가 재미 있다. AI와 함께 사는 시대가 되면, 인간인지 로봇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호접지몽의 세상이 될 것 같다.

(138) 아이들은 아무리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결코 AI의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기술은 끝도 없이 발달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제한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좌절감을 느꼈고, 많은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제 교육부는 기존의 학습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획기적으로 학습에 변화를 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에이저(artificial intelligence agent)였다.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구현된 가상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우정, 협력, 지혜는 물론 위기 대처 능력과 책임감을 배우며 결코 AI가 따라올 수 없는, 오로지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익혔다.


✎ 오롯이 ‘인간적’인 것이 이 글의 화두이다.


6. 허진희, 너에게 맞는 속도
빈부에 따라 튜터(학습보조기구)의 버전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 사회가 되어도 빈부 차이로 인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속될 것 같다. 그런 불평등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능력을 펼쳐나가는 우로빈과 그에 비해 자신들은 이미 좋은 튜터를 가졌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질투하는 모습이 현실적이다. 
제목 ‘너에게 맞는 속도’는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을 인정, 존중하는 단어로 들린다. 

 


7. 조규미, A가 오는 중
주인공들은 시간을 건너뛴 체험활동을 한다. 1999년의 학교와 2099년의 학교를 비교하는 이야기인데 과거가 과거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가 잘 그려졌다. 모든 것을 간접체험하며 직접적인 접촉은 최소화하는 미래와 삶의 공유하는 요즘 시대의 비교가 인상적이다. 코로나는 우리를 강제로 1999년과 2099년 사이에서 2099로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어디서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곳이 나에게는 인상적인 곳이다. 자존감이 100% 충전되면 그다음은 훨씬 자유로워진다.

(208) "교육 현장의 종적 탐구 및 체험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과거의 교실을 체험함으로써 현재의 인간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218) 그가 살던 세계에서 '교실'은 배움의 순간을 나누는 시간적 개념이었다. 어디에 있건 자신이 원하는 수업에 접속하면 되었다. 하지만 1999년의 교실은 철저히 공간적인 개념이었다. 한 공간에 모여 많은 것을 함께하기에 더욱 깊게 서로의 삶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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