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인 원탁토론, 광주교육을 설계하다”에 진행자로 참여하고 나서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다.

시교육청에서 주최한 500인 원탁토론의 토론진행자로 참여했던 경험도 벌써 5일이 지나면서 현장감과 생동감도 모두 잃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과 댓글을 보며 그날을 경험을 더듬어보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거칠게 정리해 놓지 않으면 다른 많은 경험들처럼 막연함만 남을 것 같다.

 

토론진행자로 참여하게 된 것은 관심보다는 의무가 더 컸다.

혁신학교와 예비혁신학교에 일정 인원이 배당되기도 했지만 ‘500인 원탁토론이 주는 놀라움 같은 게 끌렸다. 퇴근 후 두 번 시교육청 대회의실에 모여 간단한 워크숍과 함께 토론진행을 경험했던 일도 재미있었다. 교사 아닌 학부모, 시민들과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광주교육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토론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변수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다 보니 세 시간 연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원탁 토론은 하나의 의제에 대해 “9명 각자 입론500명의 입론 결과 공유9명 상호토론500명 전체 투표의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한다. 토론진행자는 토론자들의 입론을 그들의 언어로 정리하여 입론분석팀(테마팀)에 제출하거나 개별적인 의견 중 공유할만한 내용을 따로 메모하여 테마팀에 전달한다. 이후 테마팀에서는 입론을 카테고리별로 묶어 500인의 생각을 1차 통계자료로 제시하여 우선 순위별로 보여주며, 테이블 별로 상호토론 과정(보론, 질문, 설득 등)을 거쳐 투표를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결과를 확인한 후에는 자유발언 시간을 통해 소수 의견도 다시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의제는 두 가지였다.

새롭고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문화의 문제점, 어떻게 해결할까?

학생들의 미래핵심역량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전체 50개 테이블 중 1번 테이블은 우리 모둠은 광주 사립여고 2학년, 공립여고 3학년, 자사고를 자퇴한 대구에서 온 학생과 병설유치원, 초등학교, 사립고 교사 3명과 공립중학교 교장 1, 학부모 1, 새날학교 외국인 학부모 1명 이렇게 9명이 모였다. 처지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을까 재미있겠다 싶으면서도 토론진행자로서 경청 분위기를 조성하고 토론자의 마음을 열어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했다.

 

토론자들의 입론을 정리에 동의를 받아 테마팀에 보내는데 집중하느라 토론 내용들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메모해 보면 학교문화 혁신과 관련해서는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거나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한 나머지 고3 교실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성적만 강조하다보니 인성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원평가 등으로 교사가 소신껏 지도하기 어렵다,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를 줄여야 한다, 수준별 이동수업에 따른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이후 상호토론 시간에는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의견이 모였다.

미래핵심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진로교육을 강화하거나, 체험활동 강화, 소통이 있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호토론 시간에는 자사고 자퇴 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구에서 온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있는 이유의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진로교육이 제대로 진행돼야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500인 원탁토론 결과는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듯,

새롭고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학교문화 혁신방안에 대해서는

-소통 문화 혁신

-인성교육과 시민의식 강화,

-교원역량 강화를 위한 동기 부여,

-합리적인 수평적 소통구조 필요 순.

 

학생들의 미래핵심역량을 기르기에 대해서는

-진로교육 및 예체능 활동 강화

-인성교육강화 및 학교폭력 방지 노력,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인문교육 및 학부모 참여 학습 개발 순.

 

500명이 원탁이라는 취지에 맞게 동등한 자격으로 3시간 넘게 같은 의제를 가지고 의견을 주고받고 수렴하는 과정 자체가 분명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시교육청에 마련된 토론 후기를 보니 대부분 큰 만족을 보였다.

 

토론 진행 소감을 정리하면서 고민되는 것도 몇 가지 있다.

먼저 의제와 관련해 주고받는 용어들에 대한 고민이다. 특히 두 번째 의제의 경우 토론자들이 사용하는 진로교육의 개념이 불분명해 협의의 진로교육부터 인성교육, 체험교육, 인문교육 등까지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순간 더 토론할 것이 없었다. 이번 토론과 같이 정책 결정을 위한 토론에서는 교육 활동 중 무엇을 우선에 두는가가 초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첫 번째 의제도 입론의 범위가 겹쳐 보이는 항목이 여럿 있다.

그래서 토론 진행을 위한 자원봉사자만 뽑을 것이 아니라, 연수 과정에서 논의될 의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토론할 기회가 주어지면, 토론 진행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잘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코리아스픽스 쪽에서 토론 진행자의 역할로 토론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토론이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므로 주어진 여건 안에서 토론자들이 의견을 최대한 나눌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자는 말이 그런 의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원탁토론을 준비하는 내내 이 방식을 우리 학교나 수업에 적용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방식은 이른바 모서리 토론에 브레인라이팅 기법을 겹친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정 의제에 대해 브레인라이팅을 통해 포스트잇 같은 것으로 비슷한 생각들끼리 묶은 후 모서리 토론을 통해 비슷한 입장을 모아 토론을 거친 뒤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500인 정도의 대규모 인원으로 확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문화혁신 과제로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크게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또 미래핵심역량을 기르기 위해 진로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혁신학교 2년차를 돌아보고 3~4년차를 고민하는 방법과 방향에 어느 정도 시사점을 만들게 된 것 같아 돌아보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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