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부산여행3(해동용궁사,평산책방,통도사)

 

1. 대변항

벌써 여행 마지막날이다. 아침 일정에 여유가 있어 아내와 대변항 방파제 등대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제 제법 눈에 익은 해변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수평선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후에 비예보가 있고 하늘에 구름이 많아 일출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평선과 구름 사이에 틈이 있었는지 잠깐 떠올랐다. 밝음은 이렇게 조그마한 틈이 있어도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게 기분 좋게, 약간은 가슴 벅차게 대변항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해안을 따라 항구를 40여 분 걸었는데도 방파제 등대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항구의 만입이 커 생각보다 멀리 돌았고 동해어업관리단 뒤편은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라 인도도 마땅치 않아 방파제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아쉬운 마음에 지도로 거리를 재보니 숙소에서 등대까지 3.5km 정도 했다. 또 로드뷰로 확인해 보니 방파제 입구 출입문이 평소에는 잠겨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적다 보니 '신포도'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대변항에는 이른 아침부터 부두에서 미역 작업으로 분주했다. 비닐하우스처럼 만들어진 공간이 여럿 있었다. 그제 미포에서 송정정거장으로 가던 길에 보았던 양식장들이 모두 미역양식장이었다. 부두의 길가엔 오징어나 명태, 가오리를 말려 놓은 좌판이 많았다. 건어물 가게도 많았고. 그런데 큰 항구인데도 마트나 과일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부터 과일을 찾았으나 과일 가게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침에 항구를 빠져나가는 과일 행상(트럭)을 만났다. 눈에 띄는 과일 가게는 없는 것 같은데...

 

죽도에서 바라 본 대변항방파제 등대(사진의 오른쪽 등대). 가보려고 떠났다가 중간에 돌아왔다
대변항. 사진 가운데가 용암초(옛 대변초)
미역 작업을 마친 밧줄 뭉치
대변항 주변 상가에서 명태와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대변항에서 인상적인 것은 '용암초등학교'다. 용암초는 대변초의 새로운 이름이다. 담벼락에 아이들의 목소리로 대변항의 유래, 이름을 바꾼 이유, 이름의 바꾸어도 학교의 전통은 이어진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부착돼 있었다. 조선시대 때 이곳에 국가의 대동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대동고 주변의 항구, 즉 대동고변항[포]으로 불리다 대변항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겠다 싶은데, 학교 이름을 개명하고 싶다는 학생회장의 바람을 학교 구성원들이 적극 호응해 이루어진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했던 학교에서도 학생회장의 공약에 설득력이 있으면 수용하기 위해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반영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 마음이 동네에서 가장 아늑한 곳에 학교를 자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바다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는 건 정말 부럽다^^.

 

용암초 풍경. 오랫동안 대변초로 불리다 2018년부터 용암초로 개명됐다. '용암'은 옛 지명이라고 한다

 


2. 해동용궁사

아침을 간단히 먹고 숙소를 정리한 뒤 10시에 해동용궁사로 출발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 숙소 근처 해광사(오랑대공원)에서 해동용궁사까지 '오시리아해안산책로'로 조성돼 있다는 글을 여러 편 보았다. 일행들과 용궁사까지 함께 걷고, 차를 가져와도 좋겠다는 계획은 세웠는데, 셋째 날 일정이 많아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평일 10시인데도 택시와 관광버스로 절 입구가 혼잡했다. 
해동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이후 여러 이름으로 명명되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용궁사'로 불렸다고 한다. 절을 소개한 표지판을 보니 전각의 위치가 절을 감싸고 있는 용의 모습이었다. 시랑산 기슭의 바다와 인접해 '용궁사'란 이름이 잘 어울렸다. 절 입구의 '관음성지'라는 표석은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사와 더불어 용궁사가 3대 관음성지라는 것을 나타낸다. 불교를 잘 모르지만 안내문에 따르면 관세음보살님은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시다 용을 타고 나타나신다고 한다.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것인데 작년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하루에 우박, 햇빛, 천둥소리, 폭풍우, 쌍무지개 등을 해변에서 경험하면서 바닷가에서는 '평안'이 더욱 간절했고 그만큼 신실했을 것 같다.
 
주차장에서 상가를 따라 걸어가면 12지신상이 나타나고 곧 '교통안전기념탑'과 '해동용궁사'라고 쓰인 일주문, '관음성지'라는 비석이 나타난다.(시랑대를 가고 싶으면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가야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용문석굴'이라는 굴이 나타난다. 글자 아래에 '보살상'이 있었다는 글을 보았는데 지금은 비어 있다.

내 고향 강진 병영에는 '배진강'이라는 저수지 입구에 홍교(무지개다리)가 있는데 다리 한가운데에 용머리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떻게 다리 한가운데에 용머리를 올렸을까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사라지고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홍교 입구의 망부석도 사라졌다. 홍교나 망부석 모두 전설이 서려 있었는데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속절없이 도굴당했던 것이다. 용궁사의 보살상도 그런 화를 당하지는 않았나 우려스럽다.

 

석굴을 지나면 갑자기 공간이 열리며 해안가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용궁사가 나타난다. 고전소설에서 이상향을 발견할 때 묘사되는 장면과 비슷했다.

 

용궁사 입구. '교통안전기념탑'이 인상적이다. 왼쪽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용문석굴'을 만난다. 
108계단
아난티 해안산책로에서 용궁사와 연결된 길. 국가지질공원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해 해양돌개구멍, 절리군, 타포니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왼쪽) 같은 장소. 사진 오른편에 지장보살상이 있다. 작은 돌탑도 많다.(오른쪽)
지장보살상이 있는 바위에서 바라본 용궁사.
용궁사 다리를 건너다 보이는 '행운의 동전 점'
용궁사 대웅보전
해수관음대불 앞에서 바라본 용궁사 풍경
해수관음대불
안내도를 보니 왜 용궁사인지 알겠다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시랑산 사이의 해안을 잘 활용해 또는 어우러져 자리 잡고 있었다. 불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사찰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함 때문인지 황금색 소원지가 난간에 가득 걸려 있고, 여기저기에 동전이 던져져 있으며, 공양미를 올리고 기와불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소원성취하시길^^ 
 
해동용궁사를 갈 때 '시랑대'도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용궁사에서는 갈 수 없다, 용궁사 입구 '교통안전기원탑' 있는 곳에서 오솔길로 가야 했다. 안내가 아쉬웠다. 결국 여기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시리아'라는 지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숙소가 있는 연화리에서 이곳까지 기장읍 남부를 '오시리아 관광특구'라고 불른다. '오시리아 관광단지', '오시리아역', '오시리아 해안산책로' 등. 왜 '오시리아'일까. 해외의 다른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그 지역의 이름을 따오는 경우(서울의 테헤란로, 광주의 센다이로-지금은 없어졌지만)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역 관광지 '시랑대'와 '오랑대'의 첫 글자에 지역을 뜻하는 접미사 '-리아(예를 들어 롯데리아 같은)'를 합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일면 수긍이 되면서도, 이 관광단지에 롯데월드 및 롯데 관련 업체들이 많았는데 설마 '롯데리아'를 염두에 두고 '오시리아'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여하튼 지명이 어색하다. 요새 '고려거란전쟁'을 보는데 관리들을 '~시랑'이라고 부른다. 오랑대나 시랑대의 전설대 '시랑'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랑지구' 정도로 이야기해도 좋지 않을까.

 

 

3. 평산책방

여정을 짤 때 일행 중 한 명이 '평산책방'을 가고 싶다고 제안했다. 나도 가보고 싶었다. 동선을 고려해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기로 했다. 가는 김에 통도사도 함께.
해동용궁사에서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양산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계속 조성되고 있었다.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시대에 이렇게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계속 지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통도사 휴게소를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경상도의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휴게소와 나들목이 같이 만들어진 곳이 많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 게다가 여기는 카드로만 통행료가 계산된다.
 
통도사 나들목에서 평산마을은 멀지 않았다. 가는 동안 문대통령님을 뵐 수 있을까 기대하며 가고 있는데 마을로 가는 길목에 거칠고 혐오가 가득한 현수막이 꽤 많이 걸려 있었다. 심지어 마을 입구에도 대통령을 간첩이라며 구속해야 한다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또 길 양 옆으로 태극기도 게양돼 있었다. 성조기도 조금 (사진을 찍었지만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그곳에 방송 장비를 설치해 놓고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이 살벌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처럼 총기가 허용됐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다들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평산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행히 우리를 반겨주는 마을주민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차분히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먼저 평산책방으로 갔다.
 
간간이 격양된 목소리의 방송도 들렸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이 우리의 귀와 마음을 보호해 주었다. 평산책방은 차분했다. 서점은 구역별로 작가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 작은 책방들이 추천하는 책, 문대통령께서 쓰셨거나 추천하시는 책, 그리고 대통령께서 기증하신 책들로 작은 도서관을 꾸며졌다. 책방 밖, 처마 아래에 앉아 서점 옆 카페의 커피와 빵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든든한 뒷산(영축산), 따뜻한 햇볕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높이의 앞산이 있어 포근했다. 
 

평산마을회관에서 평산책방 쪽으로 바라본 풍경
평산책방 입구. 오른쪽
평산책방 앞마당. 왼쪽은 카페, 오른쪽이 책방.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조병영 교수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의 독후감이다.
책방 입구에서 오른쪽. 내가 좋아하는 방 쌤과 아내 김 쌤.
작은책방에서 책에 대해 소개한 내용들이 붙어 있다
문대통령께서 기증한 책으로 운영되는 '평산 작은 도서관'

 
다시 마을회관 오른쪽 길을 따라 사저로 걸어갔다. 사실 가는 길이 살풍경이었다. 도로 주변 산기슭 쪽은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가을이 끝난 무논도 분위기를 더 했다. 사저 입구에 경호원이 한 분 있었는데 경호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궁금했던 걸 물어보니 차분히 대답해 주셨다. 사저를 바라보기 좋은 위치도 알려주어서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길, 사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봉하마을 갔을 때보다는 마음이 더 편안했다.

 

문대통령님 사저


4. 통도사

평산마을에서 나와 통도사 인근 '황금보리밥'이라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 별점을 보고 갔는데 비빔밥과 가오리무침을 주문했는데 맛있었다. 인테리어도 개성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음식 맛이 좋았다.
 
식당에서 통도사는 바로 앞이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사찰이라고 한다. 통도사가 위치한 영축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불법을 펼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고 해 통도사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로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통도사 안내문)
통도사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소나무가 울창했다. 사천 다솔사에서도 느꼈지만 울창한 숲이 속세와 거리감을 느끼게 해 주는 듯싶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계곡을 건너 주요 전각들을 살펴보고 성보박물관까지 들렀다. 역사가 오래된 절이라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는 유물들이 상당했다. 
통도사는 20여 년 전,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한창 유홍준 교수님의 문화유산답사 책을 따라 여행하다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주차를 걱정할 정도로 큰 절이라 생각했지만 오늘은 평일에 비 예보 때문인지 참배객이 많지 않아 고적함을 주었다.(해동용궁사가 관광지로서 사람들이 북적였던 것과 다르게)

 

주차장에서 만난 느티나무와 벤치. 자연과 잘 어울린다.
돌다리 사이로 보이는 일주문
영축산 통도사. 한자를 보니 '도'가 道가 아닌 度였다!!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가는 길의 연등
대웅전 가는 길
금강계단과 대웅전 두 건물을 하나로 합친 건축물이다.
대웅전. 오른쪽 담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있고, 여기서 수계의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웅전 반야용선 벽호와 홍매화
성보박물관과 고목. 영양제가 여러 개 꽂혀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일행 중 한 분이 지역 특산물 뽕잎엿을 나눠 주었다. 

우리 일행은 3시가 조금 넘어 통도사를 출발했다. 통도사 나들목을 거쳐 부산 쪽으로 갔다가 남해고속도로 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창평에 들러 저녁을 먹고 동광주로 돌아왔다. 광주에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나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3일간 해운대를 중심으로 부산을 여행했다. 부산도 걷기 좋은 곳이 참 많았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나름의 사연과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부산은 한국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형성된 문화도 있고, 동해와 남해의 중간 지역으로서의 특징도 있었다. 어디든 하나를 보고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계절, 운이 좋아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여유 있게 잘 충전하고 돌아왔다. 좋은 경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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