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제주 자전거 여행1(용두암~모슬포항)

2017년 5월 어린이날 연휴 때 가족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집에서 타던 자전거를 여수 EXPO항을 거쳐 제주항까지 운항하는 배를 이용해 옮겨, 우도 일주를 포함하여 표선해수욕장에서 용두암까지 여유 있게 달렸다. 제주 자전거길은 이름처럼 '환상'적이었다. 그 영향으로 그해 여름 산하와 낙동강 종주를 마쳤다. 무려 400km를. 그리고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선유도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그리고 올해, 지난 추석 연휴를 맞아 용두암에서 협재를 목표로 가족들과 자전거 여행을 했다. 하지만 오전에 '거문오름' 트래킹을 해서인지, 초4 둘째에게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애월 곽지해수욕장을 지날 때 즈음 힘들다고 했다. 쉬러 온 여행에서 '극기'를 외칠 수는 없어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왔다. 아쉬웠다. 언제든 시간이 나면 혼자 제주를 일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시간이 생겼다. 수능과 재량휴업일이 겹쳐 틈이 생겼다. 망설이지 않고 여행을 바로 추진했다. 평일이라 비행기표 구입, 자전거 예약이 쉬웠다. 그리고 다시 일상에 집중했다. 여행 날이 다가왔다. 계획한 3일의 일정 중 절반 동안 비 예보가 있었다. 비옷과 배낭의 방수커버 등을 챙겨 짐을 꾸렸다. 짐이 '짐'이 될까 봐 필요하면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으로 아주 간단하게 꾸렸다.
 
하지만 여행 첫날은 여행 기분이 날만큼 날씨가 좋았다. 하늘도 맑아 비행기 창가에서 목포, 해남, 진도, 보길도까지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 가운데 뚜렷히 보이는 산줄기가 달마산. 그 주위 둘레길을 '달마고도'라고 부른다. 비행기 날깨 끝은 진도다.가운데 하얀점이 쏠비치.

 
제주공항에 도착해 1번 출구에서 자전거를 대여한 '제이바이시클'에 전화를 했더니 금방 데리러 오셨다. 승합차 지붕에 자전거가 실려 있어 픽업 차량을 찾기가 쉬웠다^^. 제주공항에서 자전거 업체까지 가는 길이 제법 눈에 익었다. 달포 전에 가족들과 여러 번 걸어 다녔던 길이다.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일반 자전거를 대여했다가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전기 자전거로 바꾸었다. 11월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고, 무엇보다 해풍이 매우 세다는 정보에 신경이 쓰였다. 또 3일 동안 제주를 한 바퀴 일주하면서 사진 찍느라 자주 멈출 텐데 사실 그렇게 소비되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조금은 편하게 제주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마주한 전기자전거를 자전거 대여소에서 용연계곡을 지나 용두암 인증센터로 이동하면서 적응하게 되었다. 그 때가 11시 정도 되었다. 
 

용두암 인증센터. 용두암 공용주자창의 관광안내소 근처에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용두암으로 가는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이다. 여기서부터 애월까지는 10월 초 가족여행 때 달렸던 곳이다. 아름다운 풍경와 눈길을 끄는 유적이 많지만 이미 자전거를 멈추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던 곳이라 빨리 지나가려고 했지만 11월 중순의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 있어 자주 자전거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첫째 날 용두암~모슬포항(80km), 둘째 날 모슬포항~성산일출봉(100km), 셋째 날 성산일출봉~용두암(60km)으로 일정을 짰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비 예보가 있어 가능하면 첫째 날 산방산이나 중문까지 100km 정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어차피 맞을 비, 다 눈에 담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자꾸 자전거를 세웠다.
 
확실히 전기자전거가 편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추고 다시 달리고 하는 시간이 길고 피곤함이 더해지기 마련인데 PAS 1단을 기본으로 2~3단을 활용했더니 일반자전거를 탈 때보다 평균 속도를 5~10km 정도 올릴 수 있었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벌 수 있었다.
 

용담해안도로의 용천수. 이 지역에서는 '섯물'이라고 부른다.
역시 용담해안도로의 용천수. 이 지역에서는 '엉물'이라고 부른다.
도두동 무지개 해안도로. 아름다운 바다와 무지개빛 난간, 조형물로 관광객이 많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공용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이호태우 해변의 상징 '등대'. 멀리서 보면 두 마리 말이 나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구엄포구 인근의 자전거 도로. 안전봉도 무지개빛이다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콜라비도 잘 자라고 있다. 여기서 '다락쉼터 인증센터'까지 5km 남았다
구엄리 돌염전. 용암이 식으면서 생긴 자연 칸막이를 활용해 소금을 생산했다.
용두암에서 약 20km 떨어진 다락쉼터 인증센터
인증센서 옆에서 바라본 애월항
다락쉼터 인증센터 주변의 공원, 이곳은 고려말 항몽 유적지이기도 하다.

 
12시 30분 '다락쉼터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멀리 파란 바다가 감싸고 있는 애월읍이 보인다. 평일이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음악을 들으며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 나타나면 사진에 담았다.
1시를 넘기자 배가 고팠다.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다 돌솥밥은 혼밥이 가능할 것 같아 애월한담공원 주변에 있는 '온기 식당'에 들어갔다. 혼밥인을 위한 1인세트가 있었는데 '전복'을 선택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가게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음식만큼 좋았다.
 
밥을 먹고 한림항을 향해 일주도로와 해안도로를 달렸다. 자전거도로 표지가 잘 돼 있었다.  한림항에는 비양도로 가는 여객선터미널이 있다. 몇 년 전 가족들과 왔던 여름 비서 때 비양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여름인데도 바닷바람이 시원했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은 평지에 가까워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도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한림항에서 바로 보이는 줄 알았는데 오늘 지나가면서 보니 한림항보다 협재해수욕장에 더 가깝게 있었다. 
 

한림항 근처의 귀덕리에도 용천수 유적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굼들레기물'이라고 부른다.
한림항 가는 길에서 바라본 비양도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협재해수욕장은 산책로가 잘 형성돼 있다. 협재해수욕장 건너편에는 '한림공원'이 있다.
금릉해수욕장 가는 길의 마을 텃밭에는 선인장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선인장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다락쉼터 인증센터'에서 '해거름마을 인증센터'까지는 약 21km. 오후 3시 무렵에 도착했다. '해거름마을 인증센터'는 안내 표지가 있긴 했지만 표지보다 더 가야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적한 곳에 있어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인도 보도블럭까지 수풀이 우거졌고 전망대도 낡았다. 이름처럼 '낙조'를 바라보기 좋은 위치에 있었으나 내가 도착한 시각이 낙조를 보기에는 일러 한 바퀴 돌고 '송악산 인증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해거름마을 인증센터와 해거름 전망대

 
이곳부터는 바다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소음이 크다고 하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관광버스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 있어 궁금해 가 봤더니 '제주바다목장'이었다. 지형을 활용해 낚시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놀이 공원을 만들고 있었다.
 

제주바다목장에서 바라본 풍차와 돌탑. 풍차는 바람이 쎄야하고, 돌탑의 바람은 간절해야 하고..
신창 풍차해안
왼쪽부터 수월봉, 와도, 차귀도

 
신창풍차해안을 거쳐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멀리 '차귀도'가 보인다. 고산리 근처, 수월봉까지 왔다. 그런데 용수리에 이르자 '성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나타났다. 설명글을 읽으니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하던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한 뒤 첫 미사를 봉헌한 곳이라고 한다. 확실히 '바다'는 외래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은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연결된 곳이 많으니.
 

성 김대건 신부 동상
이 길의 끝에 성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다.
용수항의 방사탑. 마을에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는 걸 막기 위한 탑이며, 탑 위에는 새 모양이나 돌하르방 모양의 돌을 올렸다고 한다.
용수마을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올레길은 해안을 따라 자구내 포구까지 연결돼 있고, 자전거도로는 왼쪽 산(당산봉)을 돌아 자구내포구로 연결돼 있다.

 
자전거길은 차귀도와 와도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자구내 포구에서 수월봉까지 지질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수월봉 엉알길'을 지나 해안도로를 타고 모슬포항을 향해 계속 이동했다.
 
오후 5시가 되자 하늘빛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도로명도 '노을해안길'이다. 그런데 신도포구를 지나자 넓은 공원에 '뿔소라'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보였다. 그리고 세 마리 돌고래가 파도를 헤엄치는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왜 이런 조형물이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 모슬포항까지 이동하면서 보니 '이상한 변호가 우영우가 고래를 보던 땅 매매'라는 플래카드를 보니 이곳이 촬영지인가 싶었다. 숙소에서 찾아보니 맞았다.
 

뿔소라 공원. 뿔소라 왼편 전망대 옆 작은 파란색 구조물이 파도를 타는 3마리 돌고래 상이다. 풍경과 잘 안 어울려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 '뿔소라 공원' 바로 옆에 '하멜일행 난파희생자위령비'와 함께 방사탑이 건립돼 있었다. 위령비 옆에는 '하멜 표착지에 대한 고찰'이라는 내용으로 하멜이 이곳 신도리에 표착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하멜표류기의 삽화와 이곳 신도리 해변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비슷하다는 사진 증거를 보니 사실이겠다 싶다. 당시 표류 및 표착 과정에서 27 사람이 희생되었고 그들의 영혼을 기리는 위령비라고 한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 하멜은 여기서 제주목사를 거쳐 전라도 병영이 있었던 내 고향 강진 병영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 및 노역을 하다 오랜 흉년으로 분산 배치되면서 여수로 이동한다. 그리고 거기서 네덜란드로 탈출했다.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쓴 "하멜표류기"에 우리나라를 곱게 묘사할 수 없었다. 아참 병영에는 한골목이라는 긴 골목이 있는데 흙돌담의 돌 모양이 우리나라 방식이 아닌 유럽의 방식이라고 한다. 노역했던 하멜 일행의 솜씨라고. 하멜 덕분에, 내 고향 병영에 기념관이, 여수 거북선대교 아래에 하멜등대가 있다.
 

방사탑과 위령비, 이곳이 하멜표착지임을 알리는 설명문.
하멜표착지 신도 해안의 모습

 
여기서 '송악산 인증센터'까지는 16km, 약 1시간은 이동해야 하는데 밤이고 숙소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모슬포항에서 1박하기로 마음먹고 여유 있게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의 배터리 5칸 중 4칸이 남았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
저녁놀을 배경으로 해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바삐 귀항하는 작은 고깃배도 아름다움을 이루는 좋은 풍경이 되었다.
 

 
오후 6시, 숙소 앱을 활용해 모슬포항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모슬포항 야경을 보며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숙소로 걸어오다 와인집이 있어 한 잔 했다.
홀로 여행을 왔는데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 낯설다. 비 예보로 조금이라도 멀리 가야 한다는 조급함과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곳을 담고 싶은 상반된 마음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번갈아 가며 규칙적으로 떠올랐다. 여행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가, 내가 그런 사람인 걸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모슬포항 야경

 

트랭글 어플에 기록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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