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제주 자전거 여행3(성산일출봉~제주시내)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숙소 옥상에서 바라 본 성산일출봉 인증센터 방향

 

일찍 자서인지 일찍 일어났다. 아침 7시 무렵에 일어나서 숙소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성산일출봉 쪽으로 해가 나오려고 했다. 좀 괜찮아지려나.

짐정리를 했다. 어제 산 옷을 입고, 세탁한 옷은 저녁에 비행기를 탈 때 갈아입기 위해 비닐봉지 안에 잘 넣어두었다. 짐이 많아져 사진 가방은 메고 가기로 했다. 자전거 짐받이에 잘 싣고 숙소 열쇠를 반납하고 근처 식당에서 오분자기해물탕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런데 어제 산 옷이 생각보다 얇았다. 또 신발은 덜 마른 걸 신었더니 발이 시렸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비라도 맞게 된다면 더 추울 것 같았다. 얼른 숙소로 갔다. 다행히 반납한 열쇠가 그대로 있어 얼른 올라가서 다시 짐을 풀고 옷과 신발을 바꿔 신었다. 1층에서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있는데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정말 순식간에 엄청난 얼음이 떨어지고 비도 왔다. 다행히 10여 분 지나지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르니 비옷을 입고 9시에 출발했다. 여기서 '김녕성세기해변 인증센터'까지는 29km 한다.

 

흰 점들이 우박이다. 이런 우박을 마지막으로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성산일출봉 인증센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모습. 해가 이렇게 반가울 수야.

 

'성산일출봉 인증센터'에서 짐을 풀고 다시 정리했다. 관광객들이 나를 보고 심란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여행도 인생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일단 김녕까지 최대한 달리겠다고 생각했으나 눈길을 끄는 곳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훨씬 세졌다. 오늘 자전거 거리가 60km이고 PAS 3~4단을 주로 활용하면 3~4시간 뒤에는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눈이 가는 곳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었다. 시간도 많으니까.

 

멀리 보이는 오름은 '지미봉'. 지미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김녕으로 간다.
올레길 1코스 구간. 뒷모습만으로도 반가웠다.
구좌읍 종달리 해변. 멀리보이는 섬이 우도다.
6년 전에도 사진 찍는 곳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겼다. 오른쪽 끝 모래사장 있는 곳이 종달 해수욕장.
하도해수욕장. 오른쪽 섬은 '우도'
섬이 예뻐 부두를 따라 들어왔다. 오른쪽 섬에 문주란이 피면 토끼처럼 보인다고 해서 '토끼섬'이라고 한다.
하도의 별방진. 왜구를 대비하기 위한 성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가드레일이나 분리대를 무지개로 단장한 곳이 많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발견
세화 해변의 포토존. 사진 속 시커먼 곳에서 쉴새 없이 천둥소리가 들렸다.
세화 해변 근처. 사진 가운데와 오른쪽에 돌담을 쌓은 곳은 용천수가 흘러 나오는 곳인듯.
세화 해변의 무지개. 우박만큼 보기 어려운 무지개, 그것도 쌍무지개를 본다. 이래서 제주에 무지갯빛 도로가 많은가.
평대 해변. 풍력 발전기가 있는 곳이 월정리다. 3일을 함께한 트위터 전기자전거(와 나)
제주를 일주하면서 가끔 갈매기가 떼로 모여 있는 곳을 보았다. 여기 와서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양식장에서 물이 나오는 곳이다. "숭어 홀치기 금지. 한동어촌계"라고 여러 군데 적혀 있다.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우도(왼쪽), 지미봉(가운데), 성산일출봉(오른쪽) 이제 구분이 된다.
오저여에서 바라본 월정리.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나타나는 표준어이다. 물에 잠길만한 파도다.
월정 해수욕장. 6년 전에 가족여행을 할 때 이곳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
월정리 카약. 6년 전 여기서 가족들과 카약을 탔다. 카약 바닥으로 보였던 물속 세상이 참 투명했다.
김녕성세기해변 인증센터와 김녕해수욕장.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덮어 놓았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제주도는 모래가 검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흰모래가 있는 까닭은 조개껍질 등이 태풍이나 해풍에 밀려온 것이라고 한다. 세월의 힘이다.

 

오전 11시 30분 '김녕성세기해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셌다. 초속 10km가 넘는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바람보다는 담고 싶은 풍경이 많아 자주 멈추면서 약 30km를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셈이다. 중간에 올레길을 걷는 사람과 나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았다. 상황이 안 좋으니 비만 안 와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 마음으로 달렸다.

인증센터의 이름이 '김녕성세기'인데 그 뜻이 궁금해 찾아 보았다. '김녕'이란 지명은 고려 때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마을의 산세와 지세가 '쇠 금'자 모양의 평평한 곳(평평할 평)'이라고 해 그런 의미를 갖는 '편안할 녕'자를 붙인 것 같다. '성세기'라는 지명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 있어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곳까지도 환해장성이 있었던 것 같다. 지명이 남아 있어 이곳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함덕서우봉 인증센터'까지는 11km,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길을 잘못 들어 일주도로의 자전거도로를 타고 있었다. 11시 40분경, 톰앤톰스에서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먹었다

 

제주 풍경 못지 않게 인상적인 장면이다. 시골에 살면서 보니 '이장 선거'를 둘러싸고 잡음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엄청난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하다. 그래서 이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톰앤톰스. 카페 안에서 수족관이 보인다 싶었는데 씨워크, 다이빙 모두 가능한 곳이었다.

 

행정구역이 조천읍 북촌리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현기영 님의 '순이삼촌'이 떠오를 때쯤, '너븐숭이 4.3 유적지'에 닿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애기무덤'과 '위령탑'에서는 묵념을 할 수밖에 없다. 제주 4.3의 아픔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너븐숭이 기념관(위)과 위령비(왼쪽), 그리고 애기무덤(오른쪽)
함덕서우봉으로 들어가기 전 도로

 

6년 전 경험으로 볼 때 함덕서우봉 근처까지 왔다. 한동안 바다가 있는 오른쪽만 둘러보다 왼쪽 방향을 살펴보았다. 오름이 참 많았다.

 

12시 30분, '함덕서우봉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협재해수욕장과 함께 에메랄드 물색깔이 인상적이다. 실은 '에메랄드'를 본 적이 없어, 함덕서우봉 해변을 보면서 에메랄드 빛깔을 유추할 뿐이다. 점심을 먹을까 했으나 간식을 먹은 지 얼마 안돼 계속 페달을 밟았다.

 

함덕서우봉해변 인증센터
함덕서우봉 해변. 역시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덮어 놓았다.
함덕서우봉 해변을 지나치며.

 

그래도 함덕서우봉 해변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날씨는 괜찮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조금 더 달리니 '신흥리 바다낚시 공원'을 지났다. 추석 때 제주에 왔을 때 여기서 낚시를 해 볼까 검색했던 적이 있어 눈에 익었다.

 

신흥 바다 낚시 공원
신흥리에서 제주항쪽 풍경. 멀리서 봐도 비가 내리고 있는 게 보인다.

 

신흥 바다낚시공원을 돌아 제주항 쪽을 바라보니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구름만 봐도 제주시내 쪽으로 하늘에서 지상까지 비구름이 연결돼 보였다. 아니다 다를까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파도가 해변 도로를 덮치기 시작했다. 마침 낮은 구릉지가 있어 그 아래에서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상태로 몸을 웅크리며 시간을 보냈다. 경험으로 볼 때 비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될 것 같았는데 20여 분이 지나도 날씨는 계속 험했다. 설상가상으로 천둥과 번개도 쳤다. 지나가던 차들도 양쪽 비상등을 켜고 운행하는 상황이니 자전거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해안 도로를 지나가야하는데 비바람이 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 더 있으니 비바람이 살짝 가라앉았다. 얼른 해변만 피하자는 생각에 자전거를 탔는데 또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서 일단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밥때'라는 식당이었다. 경황없이 들어가서 음식 값을 지불하고 밥과 반찬을 조금씩 떴다. 사장님 내외 분이 김치도 직접 담갔으니 꼭 먹어보라고 권하셨지만 정신이 없었다. 밖에 세워 둔 자전거가 언제 쓰러질지 몰랐다. 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셨다. 유리창으로 보니 쓰러진 자전거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셨다. 그래서 마음 편히 밥을 먹었다. 어제오늘 뜻하지 않게 점심을 먹고 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맛과 가격이 훌륭했다. 밥을 먹고 커피 믹스까지 한 잔 마시면서 날씨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2 무렵, 비바람이 위세가 살짝 누그러진 것 같았다. 바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자전거 반납을 목적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삼양해수욕장으로 통하는 자전거도로 표지가 나왔으나 바로 사라봉으로 넘어가려고 도로를 따라갔다. 그런데 살짝 도는 것 같아 승강장에서 비를 피하며 살펴보니 삼양해수욕장 가는 길에서 직진을 해야 했다. 조금 돌아 제주국립박물관 4거리까지 갔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박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른 사라봉체육관으로 들어서 쉼터에 자전거를 세웠다. 순식간에 우박이 쏟아졌다. 굵기가 엄청났다. 내린 양도.

 

사라봉체육관 쉼터에 내린 우박. 그 뒤로 비바람이 세게 불어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그리고 비바람이 또 쎄게 불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바람이 들어와, 체육관 안으로 옮겨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상당히 기다렸는데도 잦아들지 않았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시내를 관통해 3km 정도에 자전거를 반납할 '제이바이씨클'이 있었다. 15 정도 이동하면 되고.  다행히 추석 때 제주국립박물관에서 숙소가 있었던 제주사대부고까지 걸었던 적이 있어 위치가 대략 그려졌다. 그래서 출발했다. 

제주 남초와 동문시장, 관덕정 번화가를 지났다. 비가 계속 내리고 기온도 낮아져 손이 너무 시렸다. 그래도 예상한 경로대로 움직여 자전거를 잘 반납할 수 있다.

 

제이바이시클. 이곳에서 시작해 이곳에서 마무리 한다.

 

3 30분에 자전거를 반납했다. 사장님에게 제주 날씨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본인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했다. 몸도 데우고 옷도 갈아입어야 해서 근처 목욕탕을 수소문했다. 낮시각이라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마음 편히 씻고 젖은 옷과 마른 옷을 잘 가려 짐 정리를 했다.

씻고 나오니 4시 40분. 비도 그쳐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제주공항 방향으로는 햇빛이 강렬한데 택시 뒤편은 비가 내리고 제주항 쪽 방향으로 무지개, 그것도 쌍무지개가 보이는 이상한 날씨였다. 기사님께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고 했더니 보기 드문 날씨라고 하셨다. 여행 스토리에 가중치가 더 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들로 북적했다. 제주공항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들이 제대로 이착륙을 못하고 있었다. 광주공항으로 마중 온다는 아내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비행기 이륙이 확정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비행기 대부분이 '지연'되고 있었고 심지어 '결항'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광주로 가는 비행기는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거라 바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티웨이항공의 서울행, 대구행 비행기들이 연착되는 상황에서. 운이 좋았다. 제시간에 비행기를 탔고, 광주공항에서 아내와 막내를 만났다. 이제 좀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편했다.

 

여행이 그렇듯 3일간의 일정이 꿈만 같았다. 돌아보니  이번 여행 3 내내 운이 좋았.

먼저 날씨도 예보대로라면 계속 비를 맞아야 했지만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절반은 되었고, 숙소도  평일이라 비교적 저렴하게 잡았으며, 날씨 때문에 갑작스럽게 만난 식당도 맛집이었다. 갈아입을 옷과 신발을 있었고, 어제의 경우 열쇠를 반납한 숙소에서 다시 옷을 갈아입은 것도 운이 좋았다. 그래서 끝이 좋다.

 

그래도 앞으로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지 않으려고 한다. 무용담도 짝이 있어야 할 이야기가 있고, 홀로 여행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내와 함께하고 나서부터는 출장을 제외하고는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어서다. 그래서 내년 봄에는 전기자전거를 두 대 구입할까 한다. 자전거 타며 보았던 아름다운 곳들을 아내와 함께 다니고 싶다. 이번 제주 여행은 그런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제주 환상자전거 여행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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