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과 "청소년을 위한 SF단편소설 쓰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모임에서 읽기로 해 재미있게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이야기는 내 생각과 토론 내용이 겹쳐져 있다.


이 책을 고등학교에서 '비경쟁토론 도서'로 많이 추천하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각 단편마다 토론 주제를 정할 거리가 많았다. SF소설답게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심리와 갈등을 더욱 선명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중학교  3학년은 돼야 책 내용을 이해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일곱 편의 단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야기의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이 말은 소감을 적을 때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시와 노래가 있으며 모두가 행복한 마치 천국과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의 성년식에, 시초지로 순례를 떠난 이들 중 절반만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아 나선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보다 저승이 낫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소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정리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눌 줄 안다'는 시 구절도 떠오른다. 

2. 스펙트럼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영화 "컨텍트"가 떠올랐다.
소설을 은유로 해석하면 살아가면서 우리는 개인이나 사회 차원의 다양한 우주를 만난다. 색다른 우주를 만났을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무리인'에 대한 이야기를 외계인이 아닌 지구의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만나면 그들도 선함을 이해할 것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세계가 만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3. 공생 가설

대체로 7살 이전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살을 붙인 이야기이다. 상상력이 대단하다. 
공생 가설. 사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과 그에 기반한 정신 역시 우주에서 온 것이다. 실체하지 않지만 우주적 기운이 우리의 몸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도는 모습은 2d가 아닌 3d로 구현한 시뮬레이션이 기억난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서인지 지구의 자연물에 그런 모양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 요샌 장내 미생물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몸도, 우리와 지구도, 우리와 우주도 공생하고 있다.
한편 우주적인 본성을 타고난 아이들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사고하며 '인간'이 되는 사회화 과정이 이 소설에서는 참 역설적이다. 적어도 지구적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단편이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정해질 정도면 작가의 애착이 느껴진다. 그런데 제목으로 보면 참 고민스러운 문장이다. 모임에서도 '제목'에 대한 토론이 길었다.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사회(국가나 자본)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 정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이 안타까웠다.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적 은유가 더욱 크다.
갑작스럽게 그어진 38선, 한국전쟁 과정에서 생긴 휴전선으로 한순간에 이별하고 참고 견디며 버텼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정부나 자본의 이익 속에 개인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떠올랐다. 결국 이 소설은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느껴졌다.
그런데 제목이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이 아닌 "~없다면"이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설에서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있거나 없거나 결국 주인공 안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결국 '빛'의 이미지와 연결해 어려움 속에 빛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설사 갈 수 '없더라도'
그러나 SF소설인 '빛'의 속성에 주목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인 '빛의 속도'. 지구를 넘어선,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돌로 갈 수 없다면은 우리가 인간다움을 또는 존재로서 유지할 수 없다면.. 이런 느낌도 든다.

(181)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5. 감정의 물성

'감정의 물성'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의식이 먼저냐, 의식을 이끄는 자극이 먼저냐와 같은 더 본질적인 논란을 제기하는 제목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렇다. 우울한 일들을 통해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런 우울감을 유지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거나, 즐거움을 주는 약물을 찾는 모습들. 또는 그런 영화를 찾거나.
그런데 요새는 유튜브로 감정의 물성르 강화하는 것  같다.

6. 관내분실 : 도서관 내에서 분실

시대가 바뀌면서 죽은 사람들의 마인드를 도서관에 저장해 놓는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엄마의 색인이 삭제되었고 여러 사람들의 마인드 속에서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이 대단했다. (우리가 포맷할 때의 과정을 소설에 그대로 활용했다.)
읽으면서 이 소설이 우리 사회 여성의 경력단절을 문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사회에서도 여인은 육아로 인해 자산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의 마인드와 대화하게 되었을 때,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엄마를 이해해요" 한 마디로 상황이 정리됐다. 서정주의 '신부'를 보는 것 같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가 오랜 부재를 통해서 진심에 접근하고 그것이 '한'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될까. 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상황을 경계하겠지만 결국 답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저어 된다.

(266)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가.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류를 위해 나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관심에 더 주목할 것인가. 가윤에게 롤모델이었던 이모 재경의 선택과 가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선택의 순간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선택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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