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역사의 대부분은 전쟁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여 다양한 형태의 전쟁을 배우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우리 삶과 조금 거리만 있을 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참혹성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런던 폭격이 배경이다.책에 그려진 런던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성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증언하고 있다. 폭격으로 아침 식사 모습 그대로 숨진 아주머니, 역시 폭격으로 공습을 알리다 무전기를 든 상태로 죽은 군인의 모습, 서 있는 상태에서 무너져 내린 시멘트에 묻힌 줄리. 이스라엘의 침탈에 무너져 내린 가자지구의 모습과 겹쳐 전쟁의 참혹성이 섬뜩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속에도 사람들은 살아 있다. 오히려 극한의 어려움으로 서..
왕따나 학교 폭력에 관한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일반화 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왕따나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결국 심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게 되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 가는 그런 줄거리 말이다. 대개의 소설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대체로 가해자는 중심에 없다. 오로지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조금은 상투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스피릿베어는 특별하다. 자칫 지루할 수도, 또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독특함이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완성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특별한 점이 눈에 띄고 그 점을..
대체로 범생이 많은 우리 친척들 중에 좀 특이한 사촌 동생이 하나 있다. 물론 내 기준이겠지만. 동생이 영문과를 진학한 것도, 어느날 '카투사'를 지원해 근무한 것도, 그리고 얼마 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여 잘 지내고 있고 생활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러고 생각해 보니, 기회는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생각에 이르러 동생의 적극성이 참으로 놀라웠다. 외국으로 훌쩍 떠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상황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아이가 아직 어려 여행을 할 수 없어, 책이나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 속에서 자극 받고 나를 돌아보곤 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
교육 10년 차. 아이들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초년 시절의 열정은 오간 데 없고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얼룩진 하루를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남은 교사생활을 떠올린다. 결코 밝지 않은 나의 미래에 이 책은 ‘교육’에 대한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하이타니의 작품들 중 이 책은 가장 직설적인 화법으로 교육의 문제에 정면 대응한다. 이렇게 직설적일 수 있는 까닭은 구즈하라 준이 교사이기도 하지만, 또 교사 아닌 입장에서 교육현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교사인 아내를 두고 있다는 점, 무한숙을 한 때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했던 사람이라는 점 등 교육현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떨어질 수 없기에 교육현장의 가장 미시적인 부분까지 다가갈 수 있었..
개발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지역이 있을까? 무분별한 개발은 한정된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며,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던 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구조는 결국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돼, 힘이 약할 수록 다른 사람에 비해 더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제목으로만 보면 사냥꾼과 시베리아호랑이 사이의 긴장감 있는 추격을 기대할 만도 하다. 특히 가족을 위해 호랑이를 사냥하려했던 아버지를 죽인 시베리아호랑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떠나는 초반부는 그런 느낌을 더해 준다. 하지만 시베리아호랑이가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물론 본능이겠지만 다양한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주인공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호랑이는 원수도 하찮은 동물도 아닌, 동물의 왕으로 ..
폭력에 대해 훨씬 엄격한 서양에서도 가정 학대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다. 가정 학대가 문제인 것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으며 일방적이고 폭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장애가 된다는 점이다. 아내를 잃은 후 좀더 엄격해진 아버지 아래 성장하면서 난독증과 심리적인 위축감으로 말까지 더듬게 된 미카엘은 이웃집 아이 '스테피'의 도움으로 외로움과 주눅에서 벗어날 힘을 얻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던 상황에서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남동생이 물에 빠져 죽자 그 책임 때문에 구박과 폭행을 당했던 유디트의 어머니는 유디트가 죽은 남동생을 닮았다고, 또 이혼녀로서 직장에서 당하는 온갖 스트레스를 딸을 학대하는 것으로 풀어간다. 다른..
이 책의 '화두'는 "중학생"이다. 특히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해 중학교에 첫발을 디디는 햇병아리 중학교 1학년도 아니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중학교 3학년도 아닌, 관심의 사각지대 놓여있으면서도 뭔가 위태위태하고 골치 아픈 그런 아이들……. '충동', '에너지', '뭔가 터져나올 것 같은 폭발 직전의 불안함' 이 불안한 경계에서 길 위의 악마가 돼 버린 다카얀이, 쿨한 척 노력하는 우등생 다모츠가, 착하지만 감정절제가 힘든 츠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지 못하는 에이지가 존재한다. 짧지만 그 빛나던 시절을 살았던 아이들에게 우리 ‘교사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겉도는 도야 선생님이나 요시다 선생님에 가깝지..
3월은 만남, 소개의 달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찬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요시코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달이다.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장애가 있기에 기요시코에게 3월은 두려움, 고통의 달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기요시코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남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 면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요시코의 언어장애가 한 아이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의사소통장애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말주변이 없거나, 어눌한 아니, 첫 낯가림이 심한 아이, 자신에 대해 표현하기를 꺼리는 아이, 또는 정반대로 언어구사능력이 너무도 뛰어나서 친구들을 말로 잘 놀..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파악하느라 무려 1주일이나 헤맸던 것 같다. 다시 새마음으로 끈기 있게 읽다보니 색다르면서도 독특한 내용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설마 이런 소녀가, 이런 가정이 있을까 또는 일본이니까 이렇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뭔가 새로운 희망이 꿈틀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스리는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다. 어머니는 미대 교수이며 한 번의 재혼 경험이 있고, 재혼한 남편에게서 버림받고 또 다시 자식과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중이다. 아버지는 꽤 알려진 판화가이며 새로운 애인과 사귀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 다시 혼자 사는 중이다. 아버지인 만조씨와 어머니인 미네코는 생각의 차이로 헤어졌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스리를 사랑하며, 가스리의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