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정명섭 작가님의 소설이다. "미스 손탁" 앞뒤 표지를 훑어보며 조선말을 다루는 소설임을 예상했다.생각해 보면 조선말의 역사는 진행 중인 역사인데도 아픔이 많아 외면하고 싶은 역사.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하여 일본의 전범 기업의 문제도 그렇고, 소부장 관련 부품 규제도 그렇고, 최근엔 네이버 라인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구한말의 역사는 현재에도 살아 있다. 압도적인 일본의 힘에 눌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는 이른바 '종천순일파(서정주)의 논리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복장 터지는 일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스 손탁"은 불편한 그즈음의 역사다. 그래서 이 소설의 묘미는 소설의 읽다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허구이지만 역사적 고증이 바탕에 깔..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할 때 사무실 건물에 확진지가 발생하면서 며칠 격리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며 유품을 통해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고 메모했던 기억이 난다. 존엄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운이 길었던 책이다.학교에서 학년 프로젝트로 정명섭 작가님을 초대하면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살펴보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선 시대에도 '유품정리사'가 있었을까? 특히 부제 '연꽃 죽음의 비밀'을 보면서 유품을 통해 뭔가를 추리하는 역사소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께가 있어 보였지만 흥미가 생겼다. 일단 조선시대에 '유품정리사'란 직업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상상해 낸 직업인듯 싶다.책을 읽다 보니 유품..
우리 학교는 5.18을 즈음해 '5.18민주화운동기념 체험활동'을 한다. 작년에는 '오월인권길' 걷기, 올해는 "저수지의 아이들" 정명섭 작가님을 초청해 강의를 듣기로 했다. 도덕과에서는 이 책을 활용해 역할극을 하고 국어과에서는 비경쟁토론 및 서평 쓰기, 학년부에서는 5.18다큐 시청, 퀴즈대회 등을 열기로 했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토론동아리에서도 3월에 활동 계획을 세울 때 "저수지의 아이들"의 배경인 주남 마을과 원제 저수지를 찾아 가기로 했다. 학생들과 함께 가기 전 먼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답사를 다녀 왔다. 1. 주남 마을우리 학교에서 주남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27번이나 28번 버스를 타고 남광주역까지 간 뒤 화순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버스 타는 시간,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 ..
물꼬방 책 목록을 살펴보다 '진로' 관련 목록에서 "원더랜드 대모험", "아르주만드 뷰티살롱" 이진 작가님의 작품을 발견했다. 책 소개 내용이 흥미로워 읽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 군인들이 많고, 불량스러운 고등학생이 군인을 폭행했던 일도 있었다는 구절을 보면 강원도 양구쯤 될 것 같은 시골. 변하지 않는 산천처럼 자신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아이들이 우연찮게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아지트를 만들었다가 친구들, 그리고 외지 사람들이 찾는 카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래서 읽다 보면, 창업 매뉴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사람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돈에 호되게 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노력한다.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
제목과 표지로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고요한 우연’이라. 우연한 일은 대체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고요하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만남을 이야기할까. 표지를 가득 채운 초록빛 숲과 고양이 두 마리, 소녀의 모습에서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을 담은 내용일까, 그러다 차례를 보니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인가도 싶었다. 읽어보니 틀린 예상은 아니었고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주요 등장인물 4명이 모두 같은 반이다.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 친하지는 않다. 주인공 수현이는 정후를 좋아하고, 특별한 교류가 없었던 우연은 꿈속에 나타나며, 자신과 다르게 똑 부러진 성격에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친구들에게 배척받는 고요가 마음에 쓰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이 접속한 비공개 SNS를 알게 되고 거기..
정말 독특한 작품이다. 태고에 살아가는 주요 인물들(귀신이나 개도 포함)의 개별 시간에 초점을 맞춰 미시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같더니, 작품을 다 읽고 나니 100년에 걸친 태고 마을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쭉 관통한 느낌이 든다. 유럽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마을이면서,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독특한 장소 태고! ‘태고’라는 단어 선택도 신기하다. 공간의 이름이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닌 뭔가 신화적이고 아득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주요 인물들의 계보가 남성이 아닌 여성 ‘게노베파-미시아-아델카’ 혹은 ‘크워스카-루타’라는 것도 모계사회를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태어나고 죽지만, 특히 전쟁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사라져 가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들..
22대 총선의 날이 밝았다. 사전 투표를 한 뒤라 저녁 6시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세상은 과연 바뀔까? 기다림이 지루해 아내와 걷기로 했다. 곡성읍의 순례길을 갈까, 담양호 용마루길을 갈까 고민하다, 광주호 둘레길이 담양구간까지 연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광주호 호수생태원'으로 방향을 정했다. 호수생태원을 걷기에 딱 적절한 시기였다. 양달은 살짝 덥고, 응달은 살짝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벚꽃은 절반은 지고 절반은 새잎이 돋아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버드나무 홀씨가 날리기 전이라 눈도 편안했다.호수생태원 진입광장에서 전망데크(탐조대)까지는 데크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 천천히 걷기 힘들었다. 그런데 전망데크를 넘어서자 탐방객들이 조금씩 줄더니 누리길 1구간의 끝 석저마을 근..
"눈부신 안부"의 백수린 작가의 작품을 찾다 이 책까지 오게 되었다. "함께 걷는 소설"은 창비의 청소년을 위한 시리즈 도서로 '벗과 함께하는 일의 소중함' 또는 '진정한 우정'을 다루는 소설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이 청소년에게 맞을까 싶다. 흔히 정의하는 '청소년 문학"의 범주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어덜트 소설처럼 성장이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크게 보아 '성장 소설'로 보지만 중학생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약간 주저된다. 기억할 겸 단편의 내용을 짧게 메모한다. 1. 고요한 사건(백수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요한 사건'이란 제목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요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이지 않을까. 따라서 자신의 삶이 이른바 고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한 장면..
2024년 첫 번째 독서모임에서는 "황금종이"와 "함께 걷는 소설"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황금종이"는 작가 님의 필력을 기대하며 선택한 책이고, "함께 걷는 소설"은 "눈부신 안부"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백수린 작가 님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어 선택했다. "황금종이"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황금만능,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표지 그림을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난 붉은색 형상 속에서 돈에 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렇지만 사람들 내면에 깊이 있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찾아내자는 생각으로 보이기도 했다. 두 권짜리 소설이라 돈과 관련된 깊이 있는 갈등이 그려질 줄 알았으나 일종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이태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간부인 친구들의 돈과 관련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