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조우리)

작년 올해, 하는 일이 달라지면서 청소년 소설도 뜸하게 읽는다. 일 주일에 한 권 정도는 읽자, 그렇게 마음 먹고 있을 때, 출판사에서 새 책을 보내주셨다. 이번엔 작가님의 사인까지 담겨 있어 좀더 특별했다. 가급적 빨리 읽고 나누는 것이 답례일 것 같아 청소를 마친 오후 책을 들었다.

 

아들이 만화책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표지를 주인공 오사랑이솔의 캐릭터로 채웠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만화로 줄거리를 소개하는 부분도 특별했다. 사계절 출판사의 청소년 소설을 여러 권 읽었는데 처음 보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의 상황과 낯선 여행을 담고 있어 이야기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재미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여고생 오사랑의 첫사랑의 설렘과 충만함의 감정의 잘 드러난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문제는 학급, 학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까지 사랑으로 감내해야할 고통도 그만큼 크다. 동성애가 허용되는 곳, 그러면서 관심 있는 타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날 때까지 준비하며 참아 보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선 시선들, 거기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영국으로 떠난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목적이 분명하기에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기를 당해 노숙을 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을 도움으로 사랑은 영국에서 또 다른 가족들을 만난다. 이솔은 이 가족들을 통해 영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전반부는 세상과도 맞바꿀 수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후반부는 그런 사랑의 한계를 느낀다. 결국 살아가며 우리를 다양한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해 간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몸과 마음이 끌려 채워지는 사랑, 이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나의 관심과 흥미로 채우는 나만의 정원과 같은 사랑, 나를 있게 한 나의 뿌리이자 관계로 연결된 가족과의 사랑, 낯섦을 함께 채워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과의 범인류적 사랑.

 

그럼에도 오사랑이나 이솔이 우리나라에 계속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악의 상황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할 학교가 기존의 질서와 문화를 재생산하는 공간이며, 깨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교사의 모습은 여전히 고민이다. 나중에 세영이 학폭의 가해자로 전학 조치를 당하는 데 그걸로 정의가 회복되었다고 하기에는... 영화에서 문제 해결 뒤 경찰차 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밑줄 긋기>

(87)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배웠어. 너야말로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 점심시간마다 이솔이랑 붙어 다니면서 속닥거리고 반 애들은 없는 존재 취급하면서 엎드려 잠만 처자는 게 얼마나 보기 불편할 줄 모르겠어? 선생님들도 너랑 이솔 싫어해. 전교생이 다 싫어해. 학교는 왜 안 그만두는 거야?”

침을 뱉듯 내게 말을 하는 세영이는 정말 혐오감에 치를 떠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태어나 처음 맞닥뜨린 압도적인 미움과 그 미움의 끝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흥미진진한 아이들 표정을 보며 단 한 명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으리란 걸 직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조롱할 게 뻔했다.

✎ 전형적인 소수()에 대한 편견과 혐오, 조장의 과정이 나타난다. 그 심정에 공감이 간다.

 

(129) 민박집 아주머니가 펍에서 간단한 식사나 커피 등을 파니 언제든 들어가도 괜찮다고 미리 말해 준 덕이다. 낯선 곳에서 조력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고 돈을 떼먹은 민박집 주인도 있었지만 이런 좋은 사람도 있어 참 다행이다.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다 일단은 겪어 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게 두렵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음 나쁜 일에 대비할 용기가 난다.

✎ 그래도 선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 희망과 믿음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다. 특히 여행자에 대해서는 관대함도 같이.

 

(151) “사람들이 안 놀려요? 그런 거 좋아한다고....”

? 알 게 뭐야? 내 세계에는 나랑 <뱅드림>만 존재해. 조금 더 덧붙이면 기타랑 이 캐러멜마끼아또 정도? 내 정원 바깥을 지나치는 인간들에겐 관심 없어.”

그 말을 하는 로이의 눈빛은 단단하고도 거침없어 보였다. 문득 그가 부러웠다. 나는 나를 텅 비우며 지켰는데 이 사람은 다 가진 채로 지켰구나. 어른이라 그런 걸까. 아니다, 모든 어른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기의 정원이 있는 어른이 되는 거지?

✎ 비밀’, ‘나만의 정원’. 오사랑이 어른의 특징으로 언급하는 것들이다. 어른이 된다는 걸 홀로 감당해야하는 것이 많다는 것일까. 

 

(171) “그치, 한국은 동성 간 결혼이 안 되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킨 오빠.

영국에서도 둘 다 만 18세는 넘어야 결혼이 가능해. 시간을 두고 잘 사귀어 봐. 내 게이 친구 둘도 최근에 입양했는데 둘이 성향이 맞아선지 정말 잘 키우더라.”

펩시 언니가 입양 이야기까지 하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곳은 관대함의 세계로구나. 솔이가 그토록 한국을 떠나려고 했던 이유가 단번에 이해됐다. 문화 충격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이런 문제에 관대함 운운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그냥 쟤네 둘이 사랑하는 구나, 그러려니 하는 데는 관대함까지도 필요 없다.

✎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 및 규칙을 지키려는 태도가 돋보였다. 소수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우리 사회의 장점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및 규칙 가 타인에 대한 배려 및 규칙을 지키려는 태도

 

(179) 솔이의 마음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랑을 확인시켜 주면 되는 거지. 말로 아무리 너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 봤자 솔이는 믿지 않고,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데 받아 주지 않는다. 블랙홀처럼 모든 감정이 끝도 없이 절망적인 기분에 잠식되어 간다.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절망적인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사랑에, 그렇게 자주 빠졌던 걸까.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해도 상대에게 완전히 가닿지 못하리란 확신. 우린 어차피 다른 두 명의 사람일 뿐 원하면 원할수록 텅 빈 듯 허무하기만 하다.

✎ '사랑'한다고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사랑 끝에 허무함을 느끼지만, 사랑했기에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 같다. 이런 사랑의 한계일까. 

 

(214)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충만한지, 마치 보리수나무 아래의 석가처럼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사방은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뜨거움으로 가득 찼다. 만난 적은 없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신과, 내 부모와, 내 부모를 있게 한 그 부모의 부모와 인류 전체에게 입 맞추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 기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

이제야 진심으로 나는 깨닫는다.

✎ 그래서 작가는 위의 사랑 외에 더 많은 사랑을 떠올리며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오, 사랑
국내도서
저자 : 조우리
출판 : 사계절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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