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김민경)

 

 

지난 4, 사계절 출판사에서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란 책을 보내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얼른 읽고 소감을 남기는 것이 책 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보답인데, 두 달 동안, 사무실 선생님들과 민주주의와 교육을 읽으면서 여유를 만들지 못했다. 홀가분한 마음에 뒤늦게 책을 들었다가 민주주의와 교육만큼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생각을 더하는 시간이 되었다.

게으름을 탓했다. 책 선물을 받았을 때 바로 읽고 나누었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세월호를 추념하며 더 많은 기억을 나눌 수도 있었는데... 책의 발행일이 4.16인 것도 의미 깊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새봄이. 그런데 새봄의 슬픔은 어머니의 장례식 즈음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와도 연결돼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손쓸 수도 없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온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사별에 깊게 침전한다. 그러다가도 사별의 슬픔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를 때에는 소리도 지르고, 정신없이 달리기라도 해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4년을 보낸 새봄은 아버지의 출근과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우연히 도서실 앞에 적인 모비 딕의 구절에 끌려 700쪽이 넘는 책을 읽는다. 새봄은 모비 딕을 읽으며 어느 날 갑자기 꺾인 허망한 삶이 아닌,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모비 딕에 그려진 인간과 고래 그리고 다양한 생명체들의 살아가려는 에너지는 이 책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란 책 속에 잘 담겨 있다.

 

읽으면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가 떠올랐다. 오토바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은 친구 재준이의 일기를 읽으며 허망한 삶의 끝이 아닌 열심히 살고 사랑했던 재준이의 모습을 보며 재준이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유미의 이야기가. 그리고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제시카 조엘 알렉산더)”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덴마크 교육도 떠올랐다.

 

살면서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과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도 다시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상전이이다. 다양한 만남을 통해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장의 계기인 상전이과정. 인생과 사회적 성장의 열쇳말처럼 느껴졌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곳을 접었는데, 너무 많이 접었다. 그래도 책 소감을 쓰면서, 작가님들의 고혈로 분량을 채울 수는 없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다섯 군데 뽑아본다.

 

(23) 친구끼리 속내를 털어놓기에 침대만큼 좋은 곳은 없다. 남편과 아내는 침대에서 서로에게 제 영혼의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이고, 나이 든 부부는 종종 침대에 누워서 과거의 이야기로 밤을 새운다.(모비딕 발췌)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읽으면서 왠지 몸이 조금씩 더워졌는데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사람은 영혼을 감출 수 없다’라는 문장에서부터 새봄이를 처음 본 날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이상해지더니, ‘마음의 밀월’에서 울컥해져 버렸다. 아, 허먼 멜벨이라는 작가,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구나.

 

✎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모비 딕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읽을 수 없지만 도전해 보리라. ‘사람은 영혼을 감출 수 없다’, ‘마음의 밀월이란 구절이 인상적이다. 겉모습을 떠나 인품은 드러나는 것이며 그렇게 알아본 사람들 사이에는 마음의 밀월을 나누며 속내를 털어놓고 진정한 친구가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책도, 영화도, 역사적 사건도. 그것을 알아본 이전과 이후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64)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 가슴속에 이새봄 심실이 새겼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새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새봄이가 내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심방보다 심실이 하나 더 많아서일까, 늘 콩닥콩닥 뛰는 이새봄 심실의 펌프질이 느껴진다. 그 뒤로 동아리에서 기타를 치지 않는 점심시간에는 새봄이와 같이 운동장을 뛰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함께 달렸다. 한 달이 지나서야 왜 이렇게 달리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볼 수 있었다. 새봄이는 우울증과 강박에 대해 말해 주었다. 무심한 목소리로.

 

✎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공감이 가게 잘 표현했다. 아버지의 출근으로 4년만에 학교에 다시 가게 된 새봄이는 점심시간 운동장을 달리며 견딘다. 그런 새봄이 곁을 지석이는 함께 달린다. 그날이 416일이다.

 

(95) 가까이 우리 역사에서 보면 6·25 한국전쟁이 우리 역사의 상전이였고,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이나 분단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긴 상전이라 할 수 있어. 자, 그럼,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보면 될까? 나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상전이라고 생각해. 상전이가 생기기 전과 후는 달라.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어. 한쪽에서는 그만하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상전이가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어. 세월호는 아마 계속해서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파도칠 거야.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과 애써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뿐. 그러면 우리 어떻게 하면 될까? 상전이의 변화를 인식하고 방향을 잘 이끌어 가면 돼. 그러려면 기억해야 해.

 

✎ 인상적인 구절이라 길게 발췌했다. ‘상전이(相轉移)’. 과학 시간에 배웠을 만한 개념어이나 새로웠다. 선생님의 말 속에서, 역사적, 사회적 사건의 의의를 되새겨 보게 된다. 특히 분단의 원인이 2차 세계대전이란 것, 세월호 참사가 (그들이 말하는) 교통사고가 아닌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역시 엄청난 상전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코로나19’에 대해 차분히 성찰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로 잃은 일상들’.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청소년 소설 중에서, 유일에 가깝게 학교와 선생님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진정, 어른의 모습이다.

 

(117) 인간은 누구나 소멸하고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다고 했다. 그 기억이 희미해지면 소멸도 다해서 젖은 종이에 물기가 마른 것처럼 흔적만 남거나 그 흔적조차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은 누구나 소멸하지만 그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것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그를 기억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완전한 소멸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 날짜를 정해 추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인들이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것은 기억과 추모의 힘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더 살갑게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내 나이 무렵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나이가 들수록 더 떠올리며 이해하게 된다. 날을 정해 함께 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기억 공동체로서 아버지의 역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36) 나는... “모비딕”을 읽고 나서 살고 싶어졌다. 지구에서의 삶이 주는 모든 황홀과 경이, 그리고 심지어 처절한 고독마저도 ‘의식하면서’ 다시 느껴 보고 싶다. 이슈메일이 순전한 마음과 정신 속에서 항해를 하며 모든 걸 받아들이고 느꼈듯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내 모든 감각을 열어 놓고 모든 자연과 사람과 다른 그 모든 것들을 대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언젠가는 극복이 될 것이다. 죽음, 엄마의 죽음. 나는, 죽음을 극복하고 싶다. 아... 죽음이라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다.

 

✎ 모비딕을 줄거리나 결론만 보면 결국 모든 사람은 죽고 바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출렁거릴 뿐이다, 정도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유한한 생애 속에서 관심을 갖고, 관계를 갖고, 열정을 불태우고, 그 정신을 남긴다. 한 사람으로만 보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열심히 살고 그 마음이 기억되며 이어진다.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동전의 양면처럼 잇닿아 있다.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에서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좀더 다양하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국내도서
저자 : 김민경
출판 : 사계절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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