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서 그런 거 아니거든요(이명랑)

제목처럼, 청소년들의 문제제기를 '사춘기적 현상'으로 돌려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에 대한 항변이 느껴진다. 표지는 이야기의 문제 장면을 잘 드러냈고. 

'사춘기'는 언제부터 시작될까?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기준이 있겠지만 내 생각엔, 자기 목소리를 낼 때부터라고 본다. 여기서 자기 목소리는 적극적으로 낼 수도 있고 소극적으로 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의사'를 표현하고 지켜내려는 때부터 사춘기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평균적으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범위를 지을 수 있겠지만 개인차가 매우 큰 영역일 것 같다. 외국과 달리 개인의 자율성을 덜 존중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사춘기는 좀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춘기 상황에 딱 맞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친구에게 돈을 주고 게임 아이템을 구하려고 했으나 그 친구가 게임 아이템을 주지 않아 싸우고, 이를 알게된 엄마들이 개입하여 해결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줄거리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끝까지 듣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신뢰를 쌓아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가 벌어져 해결해야할 때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잘잘못을 따진들 문제해결로 나아가지 못한다.

학생들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그 대상이 교사라 하더라도. 그런데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나 이른바 '우리'의 입장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그 대상이 교사라 하더라도.
그런 면에서 이야기나눌 만한 상황을 잘 담은 이야기다.

다만 이 책에서 제안한 문제 해결의 '세 단어'가, 이야기에서와 달리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될 것 같다. 특히 현재와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야기 속에서 현상이와 현상이 엄마도 갈등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듯하지만 매번 엄마의 일반적인 요구 속에서 합의 사항이 일방적으로 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는 쉽지 않다.
이야기 속 문제사항이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론 협상 내용이 너무 세세한 것은 아닌가 싶다. 주체성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

아참, 소설에서 문제 상황을 중재하고 있는 만화가게 주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대학생이 돼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부모와 갈등하다 뛰쳐나오는 걸 보면 이 역시도 사춘기이지 않을까.
즉 이 책은 '내 뜻대로', '홀로' 살아가려는 이들이 상대방과 소통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표현한 글이다.
 
<인상적인 부분>

(62)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슈퍼히어로를 꿈꾸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남자아이들도 실은 게임 속 세상에서 다들 슈퍼히어롤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우리 남자애들은 다들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시대 슈퍼히어로들처럼 아침에 일어나며 세수하고 옷 입고 학교에 간다. 공부하고 시험도 치르고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학원에 가기 싫다고 투덜댄다. 현실에서는 영웅 노릇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우리는 그곳에서 검사, 총사, 마법사가 되어 임무를 완수하고, 몬스터를 처벌하고 세상을 구한다. 우리가 바로 영웅이다!

 

✎ 읽으면서 설득력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속도 빠른 노트북을 갖게 된 우리집 큰 아들도 코로나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수업이 끝난 뒤, 코로나로 뒤덮인 답답한 현실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직접할 수 없어 FIFA에서 선수도 되고 감독도 되고 에이전트도 되면서 히어로를 꿈꾸었을까?

(110) (돈을 받고 게임 아이템을 강화시켜주는 게 문제가 된다는 걸)그런 것도 몰랐냐고요? 예, 전 진짜 몰랐어요. 그냥… 애들이 나를 추켜세워 주는 게 좋았다고요!
무기 강화를 해 주고 돋 받는 게뭐가 나빠요? 개들이랑 약속한 대로 해 줄 수도 있었딴 말이에요! 일단 제 무기부터 강화시키고, 일단 사고 싶은 것들부터 사고, 일단 '위'에 있는 애들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고… 그런 다음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고요!
이런 것도 몰랐냐고요? 그래요, 전 진짜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요! 아빠 엄마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선생님도 가르쳐 준 적 없잖아요? 나한테는…. 아무도… 아무도 말해 준 사람이 없다고요!

 

✎ 몇 년 전 옆반에서 학급야영을 할 때 지원한 적이 있었다. 오후에 여러 가지 팀워크 게임을 한 뒤, 모둠별로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는데 저희들끼리만 먹지 담임 샘에게 음식을 권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몇몇 학생들에게 맛있게 만든 음식 담임샘께도 맛보여 드려라, 애쓰시잖아 했더니 그제서야 음식을 담아 담임샘에게 드리는 걸 보았다. 생각해 보니,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먹고, 저녁은 학원 가기 전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는  학생들이 어른이랑 음식을 같이하며 먼저 맛보시라고 권하는 걸 누구에게 배웠을까, 아이들은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할까, 학교교육과정 계획을 세울 때 설문을 해 보면 '인성교육'을 가장 많이 꼽는다. 그러면 학교에서 체득해야할 인성이란 무엇이고, 가정에서 체득해야할 인성이란 무엇일까.

(124) "오, 오케….. 뭐라고? 야, 윤현상, 너, 제정신이야! 사춘기라서 글너 거야, 뭐야!"
엄마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휴, 진짜! 사춘기라서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나는 내친김에 속에 말을 다 쏟아 냈다.
"엄마는 우리 세게를 몰라서 그래요! 내 게임 무기를 레벨 업 시키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어른들도 어른들 세계가 있잖아요. 우리도 우리 세계가 있어요. 우리 세계에서는요,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밖에 없어요! 공부를 완전 잘하거나, 싸움을 대박 잘하거나, 게임을 진짜 잘하거나. 공부 잘해서 어른들한테 인정받으면 좋죠. 저도 알아요. 노력은 하고 있다고요. 근데 공부는 하기 힘든데 게임은 일단 재미있단 말이에요.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요. 그리고 게임 잘한다고 소문나면 학교에서 완전 핵인싸가 된다고요! 게임만 잘하면 내가 우리 세계 중심이 될 수 있은까. 그래서 게임 무기를 레벨 업 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태양이한테 돈을 주고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요!"

 

✎ 예전에는 공부를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였는데, 학생들의 관심사가 게임으로 바뀌었나보다. 밖에서 여럿이 어울려 뛸 수 있는 상황이 안돼서 그런 것 같다.

일다보니 '사춘기' 때문인 것 같다. 인정 욕구가 부모가 아닌 친구들도 바뀌었다는 것은 독립을 꿈꾸는 시기임을 의미하니. 독립을 꿈꾼만큼 삶이 복잡한 준어른이 되었다. 윽박지르고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독립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우도록 자율과 책임감을 키울 계기를 집에서 만들어 주어야한다.
더 좋은 아이템을 돈으로 가지려 하는 것도 문제다. 직접 몸을 사용해 보지 않으면 몸을 써 자립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춘기라서 그런 거 아니거든요!
국내도서
저자 : 이명랑
출판 : 탐출판사 2020.07.27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