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1,2(톨스토이)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학 시작하고 미리 숙제해놓자고 책을 읽어 놓아서, 그렇게 쫓기는 기분은 아니었다는 것. 지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과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으로 움츠러든 채 모든 것이 일시정지한 느낌이었다. 개학은 물론 수업이나 모든 인간관계를 아우른 모임들이 정지하거나 이전과는 형태가 달라져서 적응하는데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았던 것 같다. 모임이 없다 보니 책을 읽어도 정리는 뒷전이고, 그냥 읽어나가는 느낌? 정리가 게을러지니 책 읽기도 덩달아 게을러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임을 목마르게 기다렸다.

 

<부활>2월에 다 읽었고, 이번에 정리하면서 한 번 더 훑어봤다. 어떻게 봐도 건성건성 읽었던 것 같다. 건성건성 읽어보면서도 눈여겨 보았던 것이 네흘류도프의 변화과정이었다. 다시 한 번 짚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나름의 맥락이 있었고,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어찌 보면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의지와 끊임없이 번민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나와 달라 존경스럽기도 했다. 처음에 접했을 때는 네흘류도프의 변화가 너무 낯설었고 공감이 되지 않았는데, 특히 1편에서 느껴지는 그의 심경의 변화가 마음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었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따라가는 장면으로 마무리지었다면 스토리는 미완성일 수 있겠지만 소설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소설의 완성이 아닌 구원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과 구원의 방법 제시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2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튜샤의 변화였다. 네흘류도프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지만, 그의 속죄와 무한한 지원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면, 유형지에서 만난 정치범들 속에서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성장하는 모습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중간중간 러시아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가난이 만든 범죄들, 관료주의의 폐해로 인한 민초들의 고통들에 대해 르뽀 형식처럼 서술한 대목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로 인해 너무 지루했다는 것. 소설보다는 다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특히 마지막에 성경 속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는 장면이 아직도 낯설고,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작인지, 이유를 조목조목 댈 수는 없지만,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한국도 전 세계도 이번 사건으로 체질적으로 부활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솔직히 더 암울하긴 하지만...



부활 1
국내도서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Lev Nikolaevich Tolstoi)) / 박형규역
출판 : 민음사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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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몇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요,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요,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톨스토이 작품의 시작은 이처럼 전체 소설을 아우르는 묵직한 메시지로 시작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처럼. ‘불모지에도 봄은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제목과 함께 직접 내밀고 있다.

 

35-36 일반적으로 볼 때 결혼 생활의 이점은, 우선 가정 생활에서 얻는 즐거움 외에 불륜의 성생활을 배제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가능케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 점이 중요하데 가족, 즉 아이들이 자신의 무의미한 생활에 어느 정도 의의를 준다는 데 있었다. 이 두 가지가 결혼을 찬성하는 이유였다. 한편 결혼에 찬성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독신으로 지내는 노총각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유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둘째로 여자라는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였다.

 18,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 소설 속에서는 남자 귀족들의 대부분이 방탕하고 무기력한 생활로 일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최근 본 영화 <오네긴>에서의 오네긴이나,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우리 시대의 영웅>의 페초린, <부활>의 네흘류도프까지 거의 비슷한 캐릭터들이랄까? 브론스키, 오네긴, 페초린, 네흘류도프까지 모두 각성의 시기와 정도는 다르지만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긴 하지만, 당시 젊은 남자 귀족들은 모두 위와 같이 생각했을 거 같고, 이 대목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85 삼 년 전에는 솔직하고 이타적이며 좋은 일에는 기꺼이 몸까지 희생하는 젊은이였으나 이제는 타락하여 쾌락만을 찾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의 그는 주위의 세계가 신비롭게 여겨져 기쁨과 감동으로써 그 신비로움을 밝혀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백했으며 그 자신을 둘러싼 생활 조건에 따라 결정되었다.


~86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그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신뢰하게 된 것은 자기를 믿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우선 자기를 믿는다면, 모든 문제는 언제나 안이한 쾌락만을 찾는 동물적인 자아가 아닌, 이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타인을 믿는다면 그가 해결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다 해결되어 있었다. 대개 정신적 자아에 반하여 동물적 자아가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일단 남을 믿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다.


~87 처음 얼마 동안 네흘류도프는 이에 맞서보았지만, 이 투쟁은 그에겐 너무 무리였다. 네흘류도프가 선이라고 믿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악으로 보였고 이와는 반대로 악이라고 믿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투쟁에서 네흘류도프는 졌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를 믿는 대신 남을 믿게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자신의 진실을 부정하기가 몹시 불쾌하였다. 그러나 이 감정도 곧 잊을 수 있었다. 그는 이때 술과 담배를 시작하여 큰 불쾌감 없이 오히려 그것에서 큰 위안을 느꼈다.

 네흘류도프가 가졌던 신과 진리, 부와 가난, 육체적인 순결을 지키려 노력했던 과정, 토지배분 등의 순수했던 신념들이 현실에서 하나둘 씩 무너져 내리면서 겪었을 정신적인 고통과 빈곤의 경험은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회가 타락했을 때 개개의 인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네흘르도프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타락한 사회에서 신념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122 되도록 빨리 사건을 처리하고 스위스 여자에게 가고 싶은 재판장은 그런 서류의 낭독은 사람들을 지루하게만 하고 식사 시간을 더 늦출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카튜샤가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일까? 아님 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못하고 그저 빨리 해치워야 할 지루한 사건 혹은 금전에 얽힌 치정에 의한 살인 스캔들 정도로만 바라보는 재판장이나 검사보, 배심원들에 둘러싸여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이 더 불행일까?

 

134 네흘류도프는 지금에 와서도 자기가 처한 입장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마음속의 흐느낌과 눈에 괸 눈물을 신경이 약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코안경을 끼고 손수건을 꺼내어 코를 풀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 여기 이 법정에서 자신의 비행이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면 그 이상의 치욕은 없을 것이라는 공포심이 일어 그의 심적인 모든 활동을 눌러버렸다. 그만큼 그 공포는 다른 무엇보다도 강렬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네흘류도프의 심적인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데, 카튜샤를 알아본 첫 순간도 또 재판이 진행되는 지금 순간까지도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공포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락했던 사람이 자신의 죄에 직면했을 때의 심리가 잘 드러나는 장면인 것 같다.

 

138 그는 지금의 곤경이 마치 방 안에서 실수를 저지른 강아지가 주인에게 목덜미를 잡혀 제가 벌여놓은 오물 속에 코를 틀어박고 있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 자신의 죄를 절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자신이 벌여놓은 오물 속에 코를 틀어박고 있는 강아지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정확히 인식하는 순간부터 네흘류도프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143 법정 심의에 나타난 모든 점으로 보거나 또 자신이 알고 있는 마슬로바의 성품으로 추측건대 네흘류도프는 그녀가 독살에도 절도에도 무죄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았으나 상인의 졸렬한 변호, 더욱이 마슬로바의 육체가 마음에 든다는 것을 전제로 한(본인 스스로 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변호와 이러한 마음을 알아챈 배심원장의 반대 의견. 더구나 피로 때문에 배심원들이 유죄 쪽으로 결정하는 것을 보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려 했다. 하지만 마슬로바를 변호한다는 게 왠지 두려웠다. 그곳 사람들이 곧 자기와 그녀의 관계를 눈치 챌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 묵과할 수는 없으며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의 양심이 움직인 순간. 굉장히 극적인 순간이라 생각하는데, 그 동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표트로 게라시모비치가 자신이 할 이야기를 낚아채 버렸다. 결국 상황은 여기서 조금씩 바뀐다.

 

146 모두들 피로했고 흥분했기 때문에 답신서에 독약을 주었으나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라는 단서를 덧붙이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네흘류도프 역시 몹시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결국 답신서는 이런 형식으로 법정에 제출되었다.

라블레가 쓴 글[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법률가가 재판을 청탁받고는 온갖 법률 조문의 예를 지적하면서 무의미하기만 한 라틴어 법률서를 이십여 페이지나 낭독한 다음에 소송자들에게 주사위를 던지게 해서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옳다고 했다.

이 경우도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 ,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함(소설적인 기법보다는 주제를 아주 효과적이고 충실하게 드러내는 논픽션 같은 느낌)과 동시에 카튜샤의 허술한 재판을 한 방에 정리해 버리는 작가의 엄청난 표현에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51 여태까지 그는 그녀가 무죄로 석방이 되어 이 거리에 다시 머무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지 주저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에게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시베리아 유형은 그녀와 연결된 모든 가능성을 끊어버렸다. 이제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새가 주머니 속에서 가늘게 퍼덕거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의 존재를 상기시키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카튜샤의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무죄로 풀려나면 네흘류도프는 조금은 찜찜하지만 자신의 죄를 쉽게 털어내 버릴 수 있었는데,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만나 좀더 각성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것 같다. 작가가 참...

 

175 그런데 오늘 그는 그녀와 결혼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추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비단 미시와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추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는 자기 집 현관으로 들어서면서도 중얼거렸다.


178 그는 지난날 한때나마 솔직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언제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으며 또 실로 성실했으나, 지금은 무서운 허위, 빈틈없은 허위-모든 사람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허위-속에 자신이 갇혀 있다고 느꼈다. 이 허위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그는 허위 속에 빠졌고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그것에 만족하며 지냈던 것이다.


180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게서 느끼게 된 혐오, ~ 느낀 혐오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였음을 알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신의 비열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가운데 고통스러우나 동시에 자기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라고 했던가? 미시와 만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신을 깨닫는 네흘류도프는 이제 그 옛날의 타락하고 철없던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각성한 네흘류도프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를 닮은 듯했다.

 

186 ‘어떻게든 담배를 좀 구해서 피웠으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모든 생각은 오직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에 쏠려 있었다.

 네흘류도프의 각성으로 이제 이 소설은 그만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렇게 현실적인(재판을 끝내고 나서 담배를 찾는) 카튜샤를 만나니 다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218 그가 이러한 불건전한 노동과 음주, 방탕으로 건강을 잃고 타락하여 미치광이처럼 꿈이라도 꾸듯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느 낯선 집 광 안으로 숨어들어가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돗자리를 훔쳐 잡혔을 때, 궁핍을 전혀 모르는 교양 있는 우리는 이 젊은이를 이 같은 처지로 몰아 넣은 원인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이 젊은이를 처벌함으로써 사건을 해결 지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잔혹성과 부조리는 이런 경우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큰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둘 다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있다. 예리하게. 특히 처벌중심적인 잔혹한 재판을 비판하고,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부조리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을 네흘류도프의 각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당시 얼마나 통쾌하고 신선한 시선이었을까?

 

230 기차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서 그녀는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힘껏 달렸다. 기차는 더욱더 속력을 빨리했다. 겨우 창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 순간 차장이 그녀를 떠밀어내고 트랩에 올라섰다.

 기억 저 깊은 곳에 감추어 두고 힘들게 살아온 시간 동안 절대로 생각나지 않았던 네흘류도프아이를 가진 불안하고 약한 존재인 카튜샤가 네흘류도프를 찾아 젖은 플랫폼을 달리는 장면은 그 후로도 여러 작품들(소설영화드라마 등)에서 오마주되어 독자들에게 각인된 것 같다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장면...

 

232 그녀는 완전히 피로에 지치고 비에 젖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녀는 신도 선도 믿지 않게 되었다.

✎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또 변하면 더 무서워지는 것 같다. 본인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간에.

 

291 “당신은 나를 미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거죠?” 그녀는 마음속에서 일시에 솟구쳐오르는 모든 말을 단번에 뱉어버리려고 서두르면서 말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선 나를 농락하고 저 세상에 가서는 나를 미끼로 구원받고 싶은 거죠? , 보기 실어요! 그 안경도, 그 기름지고 밉살스러운 얼굴도. 가세요, 가버리세요!”

✎ 갑자기 결혼하자는 말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카튜샤가 순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

 

342 재판이 끝나고 카튜샤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참회와 환희의 기쁨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최근 며칠 사이 면화를 하고 나서부터 그는 마슬로바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감정까지 느꼈다. 그는 이제 다시는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 그녀가 바라기만 한다면 결혼이라도 하겠다던 결심을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사실 괴롭고 초조하기만 할 뿐이었다.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겨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카튜샤의 저항으로 지치기 시작한 네흘류도프. 지금 상황은 이나 고집혹은 그 동안 만인에게 공표했던 변화할거라는 자신의 결심을 이젠 되돌릴 수 없을 거라는 체면만 남은 상태는 아니었을까?

 

403 ‘그렇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이 집 하인이라고 생각하면 디ᅟᅩᆫ다.’ 이렇게 생각하자 자기 생각에 흡족해졌다.

자신의 영지로 와서 토지 분배를 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번민하는 네흘류도프.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예기치 않은 문제상황 속에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네흘류도프의 모습이 흥미롭다.

 


부활 2
국내도서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Lev Nikolaevich Tolstoi)) / 박형규역
출판 : 민음사 200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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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좋지 못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좋지 않은 행동을 낳게 하는 생각이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수도, 반성할 수도 있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은 좋지 않은 불건전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다음 번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 뿐이지만 불건전한 사고 방식은 불가항력으로 우리를 그러한 길로 유도한다.

 , 이쯤되면 우리 네흘류도프는 성인의 경지에 오른듯하다. 각성하고 행동하고, 번민하고 다시 각성하고 행동하고. 대단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139 네프스키 거리를 지나 집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네흘류도프는 자기 앞에서 걸어가는 맵시 좋고 키가 큰,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았다. ~ 빠른 걸음으로 그녀 옆을 지난 네흘류도프는 당황하여 걸음을 서두르면서 자신에게 화를 내며 모르스카야 거리로 꺾어들었다.

 솔직히 인상적인 부분은 아니었지만 네프스키 대로와 모르스카야 거리를 내년에 걸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 대목을 옮겨보았다.

 

149 네흘류도프가 자기가 병원에서 무슨 불미스러운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정역형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보다 더욱 그녀를 괴롭혔다.

 두 번째 면회부터 네흘류도프의 진심을 믿기 시작했고, 그 옛날의 사랑이 다시 찾아온 카튜샤. 결국 그녀도 네흘류도프 덕분에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205 그 다음 세 번째로 마슬로바가 타고 있는 차량이 지나갔다. 그녀는 다른 여죄수들과 함께 창가에 서서 네흘류도프에게 서글픈 미소를 보냈다.

 앞서 카튜샤가 임신을 한 몸으로 기차에 탄 네흘류도프를 허망하게 놓친 적이 있었다. 이 장면은 앞서 카튜샤가 네흘로도프를 보낸 것과 반대로 네흘류도프가 카튜샤를 허망하게 보내야 했기에 더욱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사랑은 기차역에서 항상 엇갈리는 듯하다. 작가는 <안나 카레니나> 시절부터 기차역을 참 잘 써 먹는 것 같다.

 

247 지난 육 년간 무질서하고 사치스럽고 나태한 도시 생활을 보내고 이 개월 동안 형사범들과 함께 감옥 생활을 보낸 뒤에 다시 정치범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지금의 생활은 비록 고난에 찬 생활일지라도 카튜샤에게는 매우 기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들 정치범들을 이끄는 동기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민중의 일원으로 이에 동감했다. 그녀는 이들이 민중을 위해 귀족 계급에 맞선 것을 이해하고, 이들이 자신도 귀족이면서 민중을 위해 자신의 특권과 자유, 생명을 희생했다는 사실에 그들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카튜샤의 성장하는 또 하나의 큰 계기! 이제 네흘류도프가 가져온 잔잔한 파문이 카튜샤의 마음을 열었다면, 정치범들과의 이동과 생활을 분명 카튜샤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253 이런 비범한 인간에게 사랑을 불러일으켰다는 의식은 그녀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게 해주었다. 네흘류도프는 그의 너그러운 마음과 과거에 저지른 일 때문에 그녀에게 청혼한 것이었으나 시몬손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고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마슬로바는 시몬손이 자기를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우월한 정신적인 특질을 갖춘 여자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자기에게 어떤 특질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시몬손의 생각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뛰어난 특질들을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키려 애썼다. 이것은 그녀가 훌륭한 여자가 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고,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가장 이상적인, 모든 연인들이 꿈꾸는 그런 사랑이 아닐까? 카튜샤는 가련한 운명이지만, 사랑만은 최고를 경험하게 되어 참 행복한 여인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카튜샤가 참 멋지다.

 

310 자신이 의무로 여기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단지, 나는 자유인이 아니나 그녀는 자유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자유인이 아니나 그녀는 자유인! 죄를 지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고, 그리고 카튜샤를 최대한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358 모든 게 이렇게 돼버렸어요. 그리고 당신도 살아가셔야 하잖아요.

 카튜샤는 결국 시몬손을 선택하고, 네흘류도프는 그녀와 더불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같아 아쉽고 슬픈 상황. 결국 카튜샤와 결혼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님을 작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375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카튜샤를 떠나보내고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구원 빛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톨스토이 작가가 현실속의 각성한 네흘류도프의 길을 걸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마지막이 갑자기 종교복음서로 맺음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긴 했지만,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한 작가의 질기고 끈질긴 고뇌와 실천이 네흘류도프의 모습으로 그대로 구현되어 정말 위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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