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정유정)

 

 

상캐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었다.

지금까지 정유정 작가의 책을 5권 읽었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그리고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작가의 글은 재미있고 몰입감이 있는데 청소년 소설로는 추천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제목도 좋고, 다양한 문제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이 주인공인데다, 전남이 이야기 배경이고, 5.18로 짐작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추천하지만 끝이 애매하다. 의도치 않는 여행 중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촉급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느낌.

내 심장을 향해 쏴라“7년의 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재밌지만 중딩들의 경험을 뛰어넘는 부분이고, “28”은 코로나 시국에 읽고 토론할 만한 책이지만 여러 가지 분위기를 만들어 놓아야 이야기 나눌만한 책이고.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 진이, 지니는 학생들과도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작품이 사흘 동안 일어난 일을 400여 쪽 가까이에 담고 있지만 정말 읽는데 사흘이면 족하다. 그만큼 금방 몰입한다. 사족이지만 사흘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의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해서.

*관련 기사

 

진이, 지니의 해시태그를 뽑는다면 뭐로 할까, 특히 내 블로그 체계에서.

과도한 부모의 기대 속에 백수의 삶을 사는 민주를 보면 부모 기대

결국 진이와 사별한 민주입장에서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그렇지만 결국, 트라우마 등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하나의 이야기를 진이민주가 서술자가 되어 번갈아 이어간다. ‘진이의 경우 지니의 정신 속에 있으면서 지니의 이야기가 나타나기도 하니, 이야기는 크게 3가지 내화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작품해설이 너무 자세히 돼 있어 감상문도 따라가게 된다.

 

사육사인 진이’'와 현재는 백수이지만 공익으로 일하며 독거 노인들을 돌보았던 민주에게는 공통적인 아픔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존재의 메시지를 외면하여 매우 곤란하게 만든 마음의 죄, 가해자의 트라우마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실은 이러한 트라우마는 존재들의 따뜻한 심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만남에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연결지점이 있다.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콩고에서 곤란에 처한 보노보 원숭이를 외면한 진이, 멸종 위기 종인 보노보를 개인 별장에서 사사로이 키우다 화재로 구하며 만나는 장면이나,

죽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삶의 나락으로 쫓겨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까지 쫓긴 민주진이진이+지니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역시 운명적이다.

 

요새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작명법에 살짝 꽂혀 있는데,

진이진이인 이유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낼 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그와 닮은 보노보를 지니로 만들기 위한 작가의 계획도 반영된 것 같다. 작가는 보노보 지니의 내면 속에서 진이와의 공유 지점을 램프 지니에 빗대고 있으므로.

내 아들과 이름이 같은 민주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위상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민주라는 이름 때문에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결국은 공기처럼 무색, 무취, 무미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없다고 파악할 때면 이미 배수진을 쳐야 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열심히 살아가야 함을 생명체로 본질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구의 본질일 수밖에 없음을.

 

최근 코로나에, 이상 기후(날씨로는 부족한)를 겪으면서 우리 지구의 주인이 인간만은 아니라는 체감을 하게 된다. 한편, 연구가 더해질수록 우리 주변의 생물 역시 우리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동물농장방송을 볼 때마다 느낀다.

그래서 씩스틴의 권윤덕 작가의 말씀대로 현재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한 시기다.

정유정 작가는 그것을 작가만의 입담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자연성을 거스르는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죄를, 수용해야만 하는 인간적인 숙명이 아니라, 결국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 극복해야하며, 그 과정이 연대일 수밖에 없음을 진이, 지니를 통해 새삼 확인한다.

 

*밑줄 긋기

(36) 아버지는 나를 두고 ‘개처럼 놀고먹으며 부모 등골을 뽑느 자식’이라 불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간략하게 한 단어로 줄여 부르기도 했다. 개자식이라고.

상스럽기는 하나 억울한 호칭은 아니었다. 자라는 동안, 나는 내 의지로 뭘 해본 적이 없었다. ‘이리 와’ 하면 이리 오고, ‘저리가 가’ 하면 저리 갔다. 초, 중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정해준 대로,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표가 정해준 곳으로, 대학은 수능 점수에 맞춰 행정구역상으로만 ‘인 서울인’ 대학에 들어갔다.

내 의지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었다.....

 

(164) “그래서, 선금은?”

내 재촉이 치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야 협력한다. 애정, 욕망, 자기만족, 생존, 그 밖에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렇지 않은 존재를 세상은 ‘호구’라고 부른다. 내게도 그녀와 한 팀이 될 이유가 필요했다. 그녀는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현금카드가 기숙사 방에 있어. 카드만 있으면 한꺼번에 다 지불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내 방으로 가야 하고. 내 방으로 가려면 먼저 네가 나를 내 몸에게 데려다줘야 해.’

 

(185) 덤으로 이 세계의 규칙도 알아차렸다. 램프는 지니의 기억 속 세상이자, 지나간 시간의 세계였다. 이곳에서 지니는 온전히 지니 자신의 것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일방적으로 입력되는 정보였다. 나는 지니의 머릿속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당연히 지니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시선조차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그 근거였다.

 

(265) 그렇다면 진이가 끌려가는 램프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닐까. 꿈과 기억이 마구 뒤엉킨 세계. 진이가 뜰려가면 무의식의 기억이 작동되고, 현실로 나온 지니는 작동되는 기억대로 행동하고.

짐작이 맞다면, 둘은 어느 쪽도 온전히 살아 있거나 죽지 않은 상태였다. 둘 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국경을 배회하고 있었다. 한쪽은 죽음의 손에 몸이 붙들렸고, 한쪽은 정신이 무의식의 그물에 갇혔다.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에 갇혔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처지였다. 지지리 재수 없는 급행열차를 탔다는 점에서 같은 운명이었다. 삶의 안전핀이 빠진 상태라는 점에서 똑같이 위험했다.

 

(367)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다.

 

진이, 지니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9.05.27
상세보기

 

*엮어 읽기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 http://danpung.tistory.com/104
-내 심장을 쏴라  ☞ http://danpung.tistory.com/247
-7년의 밤  ☞ http://danpung.tistory.com/688
-28  ☞ http://danpung.tistory.com/601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 http://danpung.tistory.com/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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