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한화골계전(서거정)

골계적인 이야기라고 하는데, 정말 읽기 어려웠다. 역시 웃음 코드는 시대적인 것도 맞아 떨어져야 하나 보다. 수십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몇 가지 종류의 소재가 반복되는 것도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저자가 남성이기에 주로 남성 중심적인 처첩 관련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고, 당시에도 과 같은 더러운 이야기에도 열광했던 것도 좀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더군다나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서거정이라는 양반이 수집한 이야기인데. !) 그리고 무관에 대한 비하, 저급한 언어유희를 이용한 만담 비슷한 이야기도 꽤 여러 차례 등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꽤나 지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숨어 있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맞는 남성과 때리면서 당당한 조선 전기 여성들의 이야기나, 부패하거나 부족한 관리의 행동과 이에 대한 완곡한 비판(부드러운 회초리랄까?)과 통쾌한 복수 이야기에서는 오늘날과 다른 옛사람의 인정을 엿볼 수 있었고, 복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함께 웃고 시원하게 마무리하는 옛사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지닌 숨겨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 깊은 구절-


**아내가 무서운 남자들, 조선 후기보다 상대적으로 동등한 여성들의 모습

61 내 집 문짝도 넘어지려 한다

어떤 군수가 있었는데 아내가 사납고 투기가 심했다. 하루는 동헌에 앉아서 송사를 듣는데, 백성 가운데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다치게 했으니 마땅히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자가 있었다. ~남편이 옆에 있다가 제 아내가 제 얼굴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때마침 제 집의 문짝이 넘어졌을 뿐입니다.”라고 해명했다. 말이 끝나자 군수의 아내가 손에 흰 몽둥이를 들고는 문짝을 이러저리 치면서 경박하도다!..”군수가 손을 내저어 촌사람을 물러나게 하면서 내 집 문짝도 또한 장차 넘어지려 하니 너는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209 아내가 가지 말라고 해서

어떤 대장이 아내를 몹시 두려워했다. 어느 날 교외에다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세우고,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붉은 깃발 쪽으로,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푸른 깃발 쪽으로!”라고 명령했다. 뭇 사람들이 모두 붉은 깃발 쪽이었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푸른 깃발 쪽이었다. ~ 그 사람이 아내가 항상 경계해서 사내들이란 세 사람만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이야기하니, 세 사람이 모인 데는 당신은 삼가서 가지 마세요라고 했는데, 이제 붉은 깃발 아래를 보니 모인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  배꼽 잡고 웃은 대목


140-141 부인이 법을 만들어 보시겠소?

아내가 나라 제도에 법을 정하는 것이 오직 남자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간통에 관한 법률 같은 것에서 처와 첩이 무슨 다른 점이 있다고 한쪽만 한 등급을 깎는단 말입니까? 유부녀을 화간하는 것과 종의 처를 화간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한쪽만 불문에 부친단 말입니까? 법을 세움에 자기들에게 맞추어 스스로 편리하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무릇 법을 세울 때에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와 헤아리고 의논해서 정한다면, 이런 병폐가 없어져 공정하게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문사가 당신 말이 자못 일리가 있소. 그러나 가령 부인이 법을 정한다면, (남의) 아내와 간통한 죄에 대해서도 또한 한 등급을 깎는다고 하겠소? 주인이 종의 남편을 범했을 때에도 불문에 부친다고 하겠소?”라고 했다. 아내는 말이 없었다.

✎  당시 남성중심적인 편협한 생각은 시대였겠지만, 이런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정 내 분위였다는 것이 놀라운 장면. 만약 이런 정도의 분위기만 유지되었다면 조선 후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아내가 마지막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은 여성도 바람난 남성들처럼 남성 종이나 다른 유부남과 정을 통하기도 하지 않았을까?

 


** 서로의 잘잘못으로 민망하거나 화가 나도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옛사람의 여유

83-84 쥐똥을 던졌다가 개똥을 받다

혜가 미처 피하지를 못해서 머리와 얼굴에 온통 설사를 뒤집어게 되자, 소매로 그것을 천천히 훔치면서 시경에서 덕에는 보답이 없는 것이 없다라고 하더니, 내가 쥐똥을 던졌다가 개똥으로 그 보답을 받는구나‘”라고 했다. 둘은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173 호랑이에 놀라 까무러친 삼막사의 새끼 고양이호랑이 새끼의 뺨을 때리고 그 숨을 냄새 맡아 보더니, 고양이 새끼가 놀라 넘어지면서 오줌과 설사를 함께 내리 싸고는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다. ~ 재상이 한창 술을 마시고 있다가 술잔을 당에 던지면서 과연 그 사람이 그랬단 말인가? 하마터면 이 늙은이도 거의 죽을 뻔했구나.”하고는, 놀랍고 두려워 땀을 흘리더니 하루가 넘게 마치 정신을 잃고 넋이 나간 사람같이 행동했다어느 날 내가 재상을 방문해서 삼막사의 고양이 새끼가 이제 정신을 차렸소이가?”하고는, 서로 더불어 크게 웃었다.


202-203 볶은 채소 씨도 싹이 나느냐?

뒤에 진을 만나자 늙은 까까머리야, 늙은 까까머리야, 죽은 채소 씨도 다시 살아나느냐?”라고 욕하니, 진이 응해서 늙은 오랑캐야, 늙은 오랑캐야. 묵은 책력을 어찌 새것이라 하느냐?”라고 응햇다두 사람은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  다들 너무 귀엽고, 읽은 나도 웃게 된다.

 

** 점잖은 비판, 완곡한 회초리

103 나이를 속인 것은

늙은이가 들으니, 옛날에는 나이 칠십이면 벼슬에서 물러났고, 지금 조정에서도 옛일을 따른다고 합디다. 간혹 벼슬을 탐내고 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해, 대개 모두 나이를 속입니다. 나 또한 풍속을 따른 것이지 감히 나이를 속이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니, 원님이 크게 부끄러워했다.


131 원님의 욕심

옛날 어떤 원님이 욕심이 많고 성질이 사납고 거리낌이 없어, 나라 창고의 물건들을 자기 집으로 몽땅 챙겨 갔다. 장차 돌아가려 할 때, 화공에게 명해서 고을의 산수를 그려 오게 했다. 조롱하는 사람이 이렇게 시를 지었다.

오직 강산은 옮겨갈 수 없어 그림 속에다 다 넣어서 가져오게 했네.” 


** 옛날에나 요즘에나 역시 말장난(언어유희)이 최고!

89 순진한 위사 용순우

하루는 임금님이 탄 수레가 궁에서 나가려 해 밖에서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순우가 갑옷을 입고 궁문 밖으로 나가면서 큰 소리로 엄철아!”하고 불렀더니, 북을 관장하는 엄고를 치라고 재촉하는 것으로 알고는 엄고를 쳤다. ~ 대개 철아쳐라!’가 우리말로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2019. 11. 05.


태평한화골계전
국내도서
저자 : 서거정 / 박경신역
출판 :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20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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