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황유미)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말 속에서 드러나듯 거의 숙명적인 것 같다. 한편 생명체로서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면서도 나로서살아가길 원한다. 그것도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로서의 본능이다.

피구왕 서영은 나와 내가 포함된 사회의 강요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오랫동안 만나며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도, 성장기를 주로 보내는 학교에서도, 협력하면서도 경쟁해야하는 사회에서도, 일시적인 같은 공간에서도 우리는 폭력적인 강요를 경험한다. 또 그러한 관계는 내면화돼 스스로를 구속하는 자기 검열이 되기도한다. ‘강요된 관계에 대해 민감하게 성찰해 보는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피구왕 서영이다.

전학을 자주 다녀 무난하게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자신이 있었던 전학의 달인서영이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감추고 주류 속에서 안락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들에게 따돌림과 혐오의 대상이지만 함께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윤정이와 함께할 것인가 고민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성장 소설을 주된 소재다. 그만큼 아쉽고, 어렵고, 또 언제든 진행될 수 있는 문제다.

 

(75) 교실에서 윤정이 그림자 같다면, 수현은 바닥에 붙은 껌 같았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졌을 뿐인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피하고, 가끔가다 밟게 되는 사람은 침을 뱉으며 욕을 했다. 이미 여러 번 밟혀 딱딱하고 납작해진 채 검게 붙어버린 교실 바닥의 껌. 오늘도 아이들은 하수구를 걸고 넘어지며 정글 같은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었고, 대부분의 아이가 이를 묵인하며 이 기이하고도 집단적인 폭력에 가담했다. 서영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방관자였다.

(91) “내일부터 ‘수현아’라고 이름 꼬박꼬박 부르자.”
“그래, 좋다. 하수구라고 부르는 애들 없을 때까지.”
서영의 제안에 윤정이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혐오가 덕지덕지 붙은 고약한 별명이 교실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우선 두 사람은 수현의 이름을 최대한 또박또박 많이 부르기로 했다. 윤정과 얘기를 나누며 서영은 교실 내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유현지라는 맹수가 자기 옆에 딱 붙어서 감시를 하든 말든 간에 윤정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할 때 편안하고 따뜻한 공동체가 유지되고 성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구별 짓기와 혐오의 표현이 여과 없이 사회와 문화, 학교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일단 작은 집단에서부터 혐오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고 상대방을 존중해 가는 서영이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104) 체육 시간의 피구 경기는 즐거운 피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피구,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인정받을 수 있는 피구, 마지막으로 유현지라는 감독관 아닌 감독관이 있는 피구. 서영은 피구왕이 아니라 ‘피구 노예 서영’이 된 거 같았다. 학교에서는 모든 일에 순번이 매겨지는데 이런 등수 문화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앞 순위에 들지 못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오로지 순위가 되어버린다.

 

✎ 역시 많은 성장 소설에서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학교가 타인이나 집단 사이의 경쟁을 중요한 동기로 사용하면서 학교는 즐겁고 편안한 배움의 공간이기 보다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내면화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운동장을 바로 잡거나 기울어져 있음을 문제 삼아야할 교사가 성장 소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성찰이 없어 현지같이 잘 갖추어진 아이들의 폭력을 리더십으로 인정해 주며 강화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 시대우리 학교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가슴 아픈 성찰을 다시 해 본다.

 

피구왕 서영외에도, 가정 안에서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룬 물 건너기 프로젝트’, 사회생활 속에서 타인들의 지나친 간섭의 문제를 다룬 까만 옷을 입은 여자’, ‘알레르기도 이야기 나누기 좋은 소재이다. 특히 알레르기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재미 있다.

 

하이힐을 신지 않은 이유를 읽으면서는 나만의 성인식 같은 것도 생각해 보게 된다.

(179) “시험에서 떨어져서, 혹은 취업 준비를 할 때 계속 서류 전형의 문턱도 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신어도 굳은살이 박히지 않고 계속 피가 나는 내 두 발을 내려다보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공부도, 취업도, 사랑도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지만,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절절하게 체감되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웃기게도 하이힐 따위를 통해 깨닫게 된 거지. 인생에는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고, 그럴 때 잘 놔주는 것도 필요하겠더라고. 인생 짧잖아. 그래서 놔주기로 했어.”

 

'피구왕 서영'은 중학교 여학생에게 잘 맞을 듯 싶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