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일년처럼 길구나

지난 주 금요일이 고비였다.
학기 초를 빗댈 때 많이 쓰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파머 교수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읽으며, 교단에서 좀더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한계에 이른 날이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개학한 후 보낸 2주일의 하루하루가, 일 년에 버금갈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것과 학교에서 일하는 내내 반복될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
가르칠 여유가 없다!
기록할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하지만 말로라도 풀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일단은 풀자. 대안은 차차 생각해 보자.

오랜만에 담임을 맡으면서 개학 후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교단 일기'란 이름으로 꾸준히 남기고자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이 교단 일기는 '작업 일지'로 바꿔야할 것 같다. 적어도 교단 일기가 되려면 아이들과 교실에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고 돌아보는 것이 맞겠지만,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2주 동안 내 고민은 사무를 인계 받고 처리하며, 학교 행정의 말단으로서 담임 업무 처리에 관한 것이었다. 쉬는 시간 틈틈이 학교에 있는 기자재를 살펴보려 다녔으며, 퇴근 이후에도 권한 부여 등 시스템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3학년이란 긴장감으로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수업은 개학하기 전에 세웠던 계획에 따라 진행하고 있어 '교사로서의 부재 상태'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학교는 수업 공개니 동료 장학이니 하며 수업을 이야기하고 생활지도를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2주 동안 업무에만 매달렸다.

학생부장을 2년하는 동안에도 업무가 힘들었다. 관리자가 맡아야할 업무와 행정부서가 맡아야할 업무를,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교사에게 너무 많이 맡기고 있었다. 
학생부장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의 책임교사이며, 관련 회의의 간사로 회의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다 맡아 처리해야한다. 학교정화구역 내 유해업소의 허가를 내주는 의견서 작성을 위해 아침부터 등교하는 학생수를 세서 보고하기도 한다. 심지어 학생부장이 전입 업무의 중간자로서 상담 업무까지 맡아 전입해 올 아이들을 선택하는 말단을 맡아 교육자로서 양심에 맞지 않는 중간 관리자가 되기도 했다.
지금하고 있는 교육정보부장도 업무 내용으로 보면 별로 '교육적'이지 않다. 공문 발신지의 상당 수도 장학, 교육 관련 부서가 아닌 행정 일반 부서가 많다. 결국 전산직 공무원이거나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다.

3년 전 담임을 할 때에 비해, 지금 담임의 업무도 결코 줄지 않았다. 교육 경력으로 유연하게 조절하고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경력을 불문하고 업무를 처리하는데 허덕이고 있다. 심지어 학급 조직 역시 교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행정 처리 구조로 돼 있다. 
해마다 '장학협의회'와 '감사'라는 명목으로 장부와 근거 서류가 늘고 있으며, 각종 연구학교와 선도학교 등으로 점덤 더 많아진 업무를 가랑비에 옷 젖듯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교사'는 배움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이며, 배움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전문가이다. 그런 자존감이 교사 집단에 대한 각종 폄훼에도 아이들과의 만남을 충실하고 소중하게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사 집단 내부에서 '가르치는' 교사보다 '업무처리하는' 교사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이런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심하게 폄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언론에서는 공문 보조 인력 한 사람씩 배치하여 교사의 잡무를 상당수 줄여주었다며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교원평가를 해야한다고 우리를 닦달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책자로 된 매뉴얼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각종 학교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을 빈 시간에 해내고, 학급 단위로 제출하라는 각종 서류를 타자하며 마감일을 채우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어 교사로서, 한 반의 담임 교사로서 배움의 자리에 '나'는 없었다. 교사로서 정말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

내일 학부모 총회와 다음 주 가정방문을 안내했더니, 바쁜 생활로 참석하기 어려워 죄송하다는 쪽지들이 도착한다. 그런데 우리 반 학부모님들은 아실까.
내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업무 틈틈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임을. 그래도 덜 죄송한 것은,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업무로 찌든 내 삶의 해방구이며,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교과를 이야기하고 나눌 때, 담임으로서 조회 시간과 종레 시간에 얼굴을 마주할 때, 업무에서 벗어나 교사로서 행복한 순간을 실감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배움의 공동체 '학교'는 '업무'를 통해 역설적으로 국어 교사와 담임의 역할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는 역설 속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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