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국어수업 성찰

*2009년 분회 참교육실천발표대회 원고로 작성한 것이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한지 10년, 세상은 ‘정말’이라는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많이 변했다. 그 세상 속에서 아이들, 부모님, 선생님, 제도, 나도 변했다. 10년, 점찍고 지나가야할 시기에 수업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돌아본다.


1. 충격

학교생활이 학년 초부터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았다.
학생부장이 아닌 새로운 교육 인생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2009년은, 다시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2월 내내 머릿속으로 세웠던 계획을 다 지우고 새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지도에서 3학년에 대한 믿음과 2학년에 대한 불안감, 교재 연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학년을 선택하였다.


2학년. 학교에서 1·3학년에 대한 관심이 그렇듯, 교과서도 2학년 교과서는 이론과 시험적인 요소가 겹쳐 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예전엔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새롭게 만들었으나, 학생부장을 맡고 나선 재구성해서 뭘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때마침 국가수준에서부터 교사 수준의 교육과정과 평가권을 침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과서 위주의 수업은 나름의 정당성 마저 주기도 했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강도 높은 수행평가로 수업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수행평가는 매년 하던 대로 교과서 수업으로는 부족한 읽기(1000쪽 읽기), 쓰기(생각공책), 말하기(생활국어 파트), 수업 참여 태도(기본점수 부여 후 칭찬딱지로 채우기)로 진행하였다. 


매년 같은 수행평가를 진행하면서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활동에 대한 교사의 만족도 있었고, 수업평가를 통한 설문조사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올해 역시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의 활동을 독려하였다고 생각하며 1학기 교육활동 결과를 기대하였지만, 결과를 확인한 1학기 마지막 수업 시간은 가슴이 먹먹했다. 타성에 젖었던 10년, 긴급하게 1학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2. 수습
지필평가, 수행평가 모든 영역에서 낮은 성취율을 보였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들을 떠올린다. 수업은 충실히 제대로 했는가. 이 수행평가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했는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하나하나 확인하며 독려했는가. 한 마디로 아이들을 장악했는가.


미흡했다. 아이들에 대한 핑계를 찾고 싶었지만, 교실 수업에서 교사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아이들을 가정한다면 스스로 능력의 부족을 시인하는 것이라 화살을 나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정하면서도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 과제 자체가 아이들이나 교사 모두에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으며 진심으로 대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또 강제하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강제적으로 지도하려고 해도 학교폭력이나 생활지도 건으로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음이 억울했다. 


여하튼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실패했다. 아이들의 입장은 수업 평가서를 돌려봐야 파악 가능하겠지만, 임시처방으로 보낸 2학기 활동을 살펴보며, 국어수업에서 교사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가. 1000쪽 읽기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까. 스스로 찾아 읽고, 즐겨 읽고, 읽은 내용을 나눌 수 있을까. 1000쪽 읽기는 독서 모임을 하며 어느 순간 공유한 방법이다. 독서량을 평가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은 활동이며, 적절한 목록을 추천하기만 하면 한계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활동이라 6년째 실시하고 있다. 


우리 2학년은 도서 대출 권수, 1000쪽 읽기 양, 선호하는 책으로 보았을 때 독서 습관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1학년 때에도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2학년 1학기 때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다. 또 책을 읽는 아이들도 남학생 대부분이 판타지나 추리 소설 중심으로 읽고, 여학생들은 인터넷 소설 중심으로 읽으며, 남녀 학생 모두 영화로 된 소설(트와일라잇 따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올바른’ 독서 습관도 형성돼 있지 않다. 책도 잘 읽지 않는데, 판타지, 추리 소설, 인터넷 소설, 영화로 된 소설 따위를 다 인정하지 않으니 1000쪽 읽기 결과는 매우 낮을 수밖에.


아이들은 학급 단위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 아이들의 독서 문화에 자극을 주고자 독서토론반을 만들었다.
방학동안 <완득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읽기> 2학기: <흑설공주 이야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토론했다. 인원은 10명을 넘지 못했는데 학기 중에 교사 주도로 만들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는 못했고, 일정한 토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도교사의 입장에선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생활지도 업무에, 아이들은 또 집안 일과 학원 문제가 겹쳐 날짜를 잡아 놓고도 여러 차례 연기하게 되었다. 어떤 모임이건 교사·학생·학부모의 의기 투합이 필요하다. 할수만 있다면 교사 독서회, 학생 독서회, 학부모 독서회가 따로 활동하고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공통도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면 독서토론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겠다

.
독서토론반 학생들은 해당 도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독후활동 없이도 1000쪽 읽기 수행평가를 인정하였다. 독서토론반의 입소문 덕으로 <완득이>, <흑설공주 이야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많이 읽었다. 

한편 한 학기에 읽을 1000쪽 중, 매달 넷째 주 월요일을 기준으로 중간 검사를 해 최소한 500쪽을 통과하도록 강제하였다. 물론 판타지, 인터넷 소설은 인정하지 않았고, 노빈손 시리즈는 1권만 인정했다. <가방을 들어주는 아이>, <내 친구 재덕이>, <갯벌>, <몰라쟁이 엄마>와 같은 초등학생용 도서는 읽는 힘이 약한 학생들을 위해 인정하였다.
12월 4일 2학기 1000쪽 읽기를 마감하였다. 마감 결과[각주:1]는 다음과 같다. 


 

2-1반

2-2반

2-3반

2-4반

2-5반

2-6반

비고

2008년 1학기

70.69

58.71

59.43

67.22

61.67

66.81

64.08

2009년 1학기

30.25

39.75

47.00

38.42

32.82

53.21

40.24

2009년 2학기

76.41

70.27

71.08

67.57

59.74

67.84

68.82



이 표를 통해 분명 올1학기 2학년들의 독서량이 책 한 권 정도는 부족했다는 것과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지도했을 때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 여전히 학급별로 편차는 크다. 그러나 학생들의 성향이나 수준 차이보다는 학급 문화의 차이므로 이 수행평가는 학급 담임교사와 필요성을 공감할 때 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나. 말하기: 시낭송
우리 학교 국어교사는 4명인데, 모두 국어교사모임 소속 선생님들이다. 학년초 수행평가를 세우며, 서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 수행과제를 정리하여 전 학년 1·2학기 공통으로 읽기는 1000쪽 읽기, 쓰기는 생활공책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만들기로 하고 2학기에는 말하기·듣기로 토론하는 말하기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2학년만 말하기·듣기를 시낭송으로 바꾸어 실시하였다. 1학기 자신의 꿈 소개하기 수행평가 결과, 평가 자체를 수행하지 않는 학생들이 과반수를 넘었고, 그것이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학급 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침 2학기 수업 계획을 새로 세우고 있던 터라 국어 시간에 말하기·듣기까지 평가하기로 했다. 

2학기는 대단원간 비슷한 단원을 정리하여, 활동 위주로 중간고사까지는 시낭송, 기말고사까지는 소설 창작으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시 낭송 수업은 작년 광주고의 박안수 선생님의 수업과 ‘문장’의 시낭송 축제를 보고 활동 과제로 정했다. 먼저 아이들과 시를 많이 읽기 위해, 1단원을 공부하며 모둠별로 시인을 정해, 시인의 작품을 연구하고 공유하였으며, 3단원을 공부하며 표현이 잘된 시를 한 편씩 골라 보는 활동을 하였다. 이후 시 낭송 방법을 소개한 후 모둠별 시낭송 수업을 진행하였다.
시 낭송 역시 반별 문화의 차이가 확연하다. 낭송 방법이 반에 따라 다르다. 2반은 배경화면보다는 다양한 낭송 방법을 활용하여 시의 맛을 살렸다. 3반은 시의 내용에 맞는 배경화면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시를 즐겼다. 특히 <그날이 오면>을 낭송한 3반의 주연의 한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수업 시간에 눈을 맞추기 힘들었던 학생이 시 내용을 몸으로 표현하며 시의 분위기에 맞게 힘차게 낭송할 때 살아 있는 학생의 모습을 보았다. 몸과 마음, 교사와 행복한 국어 수업 ‘그날’을 보았다고 해야할까.


시낭송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는 시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교사의 욕심이 섞였다. 시를 화면에 제시하고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음악에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을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예제 작품이 영상매체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아이들은 배경화면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썼고 화면이 늦게 만들어져 화면과 시낭송을 맞추는데 미흡했다. 


한 마디로 섬세하게 안내하지 못했다. 활동의 목표를 분명―시 낭송이 우선인지, UCC로 표현할 것인지 제시―하게 제시하지 못했고, 모둠원 수가 너무 많았으며, 암송의 문제는 상당 시간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역할 분담이 너무 뚜렷해 과제와 활동을 종합적으로 보는 눈도 부족했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시 한 편 골라 내용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하고 적절한 음악 고르고 배경 화면 만들어 아이들이 시 한 편을 얼마나 다양하게 고민해 보았을까 생각하면 시 수업의 의의는 건져냈으리라 생각한다


다. 생각공책 : 소통을 위한 소설 쓰기
소통을 이야기하는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사회 모든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 밑바닥부터 모든 것을 다 경험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그는 그래서 그 누구의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교사들도 아이들의 시절을 다 겪어 보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지사지할 수 없기에 소통 부재는 시작된다.


소설은 참 매력적인 장르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내 입장일 수도 없이 남을 나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럴수록 완성도와 사실감이 높은 ‘작품’이 되니, 이런 소설의 속성을 빌려 아이들과 소설을 썼다.



교과서 5단원에 노래를 소설로 창작하는 활동이 제시돼 있지만, 노래를 소재로 하는 것도, 활동을 모둠별로 하는 것도 소통을 위한 소설쓰기로는 한계가 있어 개인별 소설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마침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란 중학생 소설집을 펴낸 이상대 선생님이 소설을 꼭 써야하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펼쳐 놓은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발췌해 수업의 안내 자료로 삼았다. 이후 첫 시간에는 말하고 싶은 내용으로 설계도 작성, 둘째 시간에는 갈등의 심화, 셋째 시간에는 갈등의 해소, 마지막 시간에는 고쳐 쓰기 워드작업을 발명실까지 빌려 진행하였다. 다 쓴 글은 홈페이지에 올려 서로 돌려 읽고 소감을 쓰도록 했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소설도 많았다. 그렇게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자신, 친구, 우리의 이야기를 쓰자고 했는데, 연쇄 살인범이나 추리 소설, 성인들의 연애담을 쓰는 학생이 많았고 특정 학생을 비방하는 내용도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해 수업의 흥미를 높이는 것도 수행평가의 중요한 기능이라고도 생각하는데, 활동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남은 국어과 예산으로 2학년 소설집을 만들어 보려고 아이들의 글을 엮고 있다.
 

 
      소설을 공유한 ‘하얀조약돌’ 홈페이지 http://cham9594.new21.net


3. 전망
이 외에도 익숙하게 진행해온 수행평가 활동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수업시간의 생각을 고스란히 남겨, 학년말에 선물로 주겠다는 생각으로 매년 만들고 있는 생각공책.  몇 년 전부터는 학년말에 생각공책에 머리말과 차례를 붙여 문집처럼 꾸미는 활동으로 의미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글의 수준이나 분량, 글쓸 내용이 아이들의 삶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생각을 끌어내지 못하기에 공유할 내용도 많지 않다.
매년 모임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야기대회” 역시 목에 항상 걸려 있다. 확신이 없기에 올해는 시낭송 활동으로 대치하고 말았다.


더 근본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내가 하는 수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흥미는 아니더라도 들을만한 수업인지 걱정이 된다. 어떤 직장이든 몇 년 가르치면 요령이 생긴다는데, 우리 일이 요령을 피울 수 없는 일인지, 아니면 그 요령이 노하우라 반드시 터득해야할 숙련됨인데 그게 나에게 없는 것인지,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능력은 부족한데 업무로 인정받으며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끔 업무에 치우쳐 가르치는 게 벅찰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난 번 교육청에서 주최한 워크숍에서 강사 선생님이 이젠 ‘가르치지’ 말고 ‘가리키자’는 이야기를 하셨다. 방송에, 학원에, 문제집까지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어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아이들이 그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설득하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 일단 내년에 학급이 하나 줄어든다니, 교실 하나를 국어전용교실로 만들자. 학생부장은 절대로 할 수고 없고, 부장을 맡더라도 예상 가능한 일을 맡자. 1000쪽 읽기 수행평가는 김지선 선생이 평가한다고 했으니 같이 평가하고, 생각공책은 삶을 쓰고 나눌 수 있는 방법적인 측면을, 시낭송을 더 즐겁게 해보자.

  1. 2008년 수행평가와 2009년 수행평가 영역은 같고 성취과제도 큰 차이는 없다. 다만 2008년에는 1500쪽 읽기를, 2009년에는 1000쪽 읽기 수행평가를 진행했다. 2008년에는 400쪽까지는 20점(100쪽당 5점), 500쪽부터는 50점을 준 후 100쪽당 5점씩 점수를 부여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작년 평균 64점은 780여 쪽 읽었다는 이야기이며, 2009년 1학기에는 400여 쪽 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보다 더 많이 읽었다. 1000쪽(1500쪽)을 넘게 읽으면 100쪽 당 칭찬서명을 한 개씩 부여하고, 3개가 될 때마다 태도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실제 독서량은 더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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