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의함을 글을 읽고.

선생님께.
둥그런 보름달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가을날입니다. 추석 연휴 동안 옷장 속에 접어두었던 가을 옷을 꺼내 놓은 터라, 요 며칠 출근길이 가볍습니다. 어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참 죄송스럽지만 작은 부분에 흔들리고 휘둘리는 것이 삶인 것 같습니다. 


선선한 가을 공기를 마시다 선생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맡은 일이 학생부장이라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 때문에 생각이 많습니다. 이름이란 게 참 중요해서, '생활지도부'라고 할 때와 '학생자치부' 또는 '학생복지부'라고 말할 때는 맡은 일에 대한 생각과 방향, 행동도 달라집니다. 물론 용어가 혼재되는 만큼 제 역할도 과도기고 개별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학교폭력 문제로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남자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회적인 것인지 태생적인 것인지,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어떤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그 정점에 있으면서도 참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다 월요일 선생님께 전해드릴 수밖에 없었던 홈페이지의 게시물을 다시 읽으며, 선생님께 여러 가지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떠오른 달을 보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년 올해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정말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학년부장 선생님들의 도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학생부장을 맡는다는 이유로 아이들로 인해 상처받았던 일들이 선생님들과 공유, 공감, 동행 등으로 치유되고 있다는 말이 맞겠습니다. 저는 작년에 선생님께 많이 의지했고, 선생님 덕분에 학생부장의 일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올해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학생부장을 맡고 지금까지 오며, 작년과는 다른 생활지도부장이 아닌 학생(복지,자치)부장을 맡으며 저를 지지해 주셨던 여러 선생님들과 어려운 관계를 만들고 있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리마일리지 실시와 체벌 금지 등은 외부 요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이라 외적인 상황을 이용하여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요.
갈수록 수업하기 어려운데 사회는 학력만 강조하고 있고, 교육청 주도로 밀어붙이는 이런 상황에서 '인권 존중'이란 당연한 가치가 학교 현실에서 자주 악용되는 모습도 있어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건의 일을 겪으며 시류가 그러하니, 선생님께서 양보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생활지도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 이 일의 과정에 있으면서 어떤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선생님의 진심을 흐릴 수 있겠다 싶지만, 다른 선생님과 같이 저 역시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 7월 17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학교폭력으로 믿었던 아이의 사실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이 눈물짓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읽고 계시는 이유도 그런 선생님의 마음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문제의 진전은 보이지 않고, 결국 누군가는 정리해야하는데, 이 글을 초벌로 쓴 이후로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네요. 
그린마일리지제도를 주도하고 있는 교사로서,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선생님의 진심을 아이들도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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