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에서, 안녕(이옥수)


친구가 죽었다. 친구의 유언은 살고 싶었던 킬리만자로에 데려 달라는 것.


친구는 희망을 잃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건 파충류. 수회는 애완 동물들과 제인 구달처럼 킬리만자로에서 야생 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싶었다. 야생 동물과 생활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지금 당장 애완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엇비슷한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성적은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고, 애완동물을 빼앗기고, 목표가 과정 중에 소멸된다.

킬리만자로를 인터넷으로 훑어보고 무작정 떠났다. 수회의 유골과 함께. 또 실연의 아픔을 오지의 봉사활동을 풀려는 사람과 함께.
그렇게 떠난 지구의 반대편, 케냐에선 가난과 에이즈로 희망이 잃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희망을 훔친다. 반면, 적은 돈을 받지만 가족을 돌보기 위한 직장이 있고, 건강하기에 그것 조차도 신의 은총으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가진 것이 많은 데도 불평하는 모습에 반성할만도 하지만, 기본이 안된 케냐에 대해 오지게 욕한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어떤 허상도 존재한다.

수회를 킬리만자로에 뿌렸다. 수회를 위한 여정이었으나 그것은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누에가 날기 위해 여러 차례 번데기를 거듭하듯이, 희망을 이루기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과정은 현대적인 의미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한계가 많은 과정이지만 역시 현대적인 의미에서 지난한 과정이므로.

작가는 <푸른 사다리>에서도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눈물나무>라는 책에서는 이 책과 같이 아버지의 유골의 품고 국경을 넘나들며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183) "안 돼. 새끼들아.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희망이 없다고? 살아 보지도 않고 희망이 없다고? 너희들이 얼마나 살아 봤는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제는 누구라도 수회처럼 죽어서 이렇게 한 줌 뼛가루로 남는 놈은 용서하고 싶지 않다.이 나쁜 놈들아! 수희 너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죽으면 안 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아프잖아. 그러면 정말 안 되는 거야.
스탠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넌 살고 싶니? 사람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희망!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저들의 절절한 가난과 결핍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내가 건방지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나?

(224) 내가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단단한 고치 속의 애벌레. 그 여린 애벌레가 태양 아래 쪼글쪼글 말라 가는 고통을 수회가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수회는 번데기의 길고 목마른 고통을 단번에 해결하려고 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수회야, 그렇지? 대답해 봐. 영아 누나 말처럼 넌 애벌레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두려웠던 거지? 그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수회야, 그렇게 쉽게 생명을 던져 버리면 안 되잖아. 긴 목마름이 끝나고 언젠가 등이 터져 날개가 돋아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킬리만자로에서, 안녕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08.05.15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