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난(이경화)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09. 3. 12.
2009년 아침독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거기에 작가가 '이경화' 님이라는 말에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보았는데, 사실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작가의 "나의 그녀"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심리를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는데 그 만큼의 새로움과 감동이 적다고 할까? 하지만 이경화 님이 그려낸 집단따돌림에 대한 우리 학교의 자화상은 자못 심각하다.
책제목 "지독한 장난"은 바로 집단따돌림을 의미한다. 이렇게 집단 따돌림을 둘러싼 세 명의 남학생 준서, 성원, 강민이의 마음을 프로레슬링에 대입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의 심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간다. 그 주변 인물인 혜진이와 은영이, 반장 지희, 이름뿐인 카리스마 담임선생님, 그리고 이름 없는 가해자 무리의 학생들이 있지만 주로 세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집단따돌림 속의 힘의 역학 관계는 여러 가지 국면을 만들어 낸다. 집단따돌림을 선동하는 반칙왕 케리와 같은 ‘힘의 강자’ 강민이, 강민에게 조종당하다 끝내 집단따돌림의 희생자가 된 준서, 줄곧 수수방관하다 끝내 마음 속 양심의 소리에 기울이게 되는 성원이! 모두 우리 안에 있는 폭력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이다. 분명 우리 안에는 강민이도 준서도, 성원이도 숨어 있다. 우리가 강민이처럼 폭력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할 때 우리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방관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비겁하고 나약한 태도, 하지만 끝내 꿈을 버리지 않는 오기와 끈기를 가진 준서 캐릭터가 눈에 띈다. 애꾸눈 빅마운틴처럼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자신을 이겨내고자 하는 준서의 모습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현실이라는 링 위에서 정정당당이 아닌 반칙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더 많이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자에겐 강하고, 강한 자에겐 꼬리를 내리는 아이들의 이중성은 아이들의 본성이 아닐 것이다. 무서운 속도의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폭력에 대한 이중성(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한)을 은연중에 몸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들에게 권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나서 무척 반갑다.
<인상깊은 구절>
(6) 준서는 악인이 챔피언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레슬링 경기건 각본이다. 미리 써진 각본 앞에서는 흥분하는 자신도 우습지만 작가가 만든 각본대로 멋지게 연기할 수 있는 레슬러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생각한다. 체력과 기술이 없다면 연기는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아무리 근사한 역할이 주어져도 소용없다. 챔피언은 경기 초반에는 수세에 몰린다.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리고 두들겨 맞는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낸다. 그것을 이기게 하는 것이 체력이다. 그리고 오기. 챔피언은 자존심이 잔뜩 구겨져서 얼굴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다. 그때가 바로 역전의 순간이다. 뱃속으로부터 끓어 나오는 분노를 토해내고 나면 멋진 기술로 상대를 무너뜨린다.
✎ 체력과 오기 준서. 그런 준서가 기다리는 역전의 순간. 이 소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부분이라 의미심장하다.
(22) 학원에서건 학교에서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힘 때문이다. 아무나 어른에게 대거리를 하거나 거친 욕을 내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힘 있는 자만이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겉으로 내지를 수 있다. 모두들 가슴속에서 아우성치는 욕망들에 지쳐 있다.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사건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평범한 것도 싫지만 튀는 것도 싫다. 아니, 튀는 것이 두렵다. 강민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종의 음모를 꿰뚫어 보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튀지 못한 사람에 대한 튀고 싶어 하는 이들의 분노는 이유가 없다. 분명, 아이들은 미친 예수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며 은밀하게 웃고 있었다.
✎ 아이들 위에서 군림하는 아이는 분명 군중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고 할까?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길러진 강민의 폭력성은 대중심리와 맞물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73)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야 어른으로 성장한다. 중요한 건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눕혔다는 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서 이겼다는 거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 바로 올림픽 제전이다. 젊은이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폭력성을 다스리는 데 스포츠만한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이겼는가, 누가 더 많은 공을 세웠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가 중요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를 패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이미 이겼기 때문이다.
✎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 작가는 글 속 곳곳에 보물찾기를 하듯 해결의 열쇠를 심어놓고 있다. 누구도 돕지 않고,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적이 아닌 나약한 나를 이겨내야 한다는 깨달음을 심어주고 있다.
(8)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무언의 긍정이지. 소리 나지 않는 박수를 치는 일이랑 똑같아. 성원은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신음 소리를 냈다. 장단에 맞춰 놀아난 기분이다.
✎ 무언의 목소리 속에서 갈등하는 아이들. 현실과 정의 속에서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어른, 아이 가리지 않는다.
(89)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야. 꿈은 클수록 좋지.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이 변하니까. 더 훌륭해지고 나면 자기가 이루려는 꿈은 못 이루더라도 소박한 다른 꿈을 이루기는 더 쉽지.” “응, 나도 그 꿈을 꼭 이루려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준서는 말해 놓고 나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꼭 프로레슬러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 만큼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싶다. 펠타시처럼 괴물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꿈을 왜 크게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니까.
(99) 아이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동시에 자극적인 것을 추구한다. 새로우면서 자극적인 일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한 명의 희생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야말로 다수가 우정을 확인하는 때다. 그 희생자가 자신만 아니면 된다. 누구여도 상관없다. 더군다나 이번의 희생자는 담임이 말한 내면의 폭력성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 다수의 우정이 아니라 자신은 희생자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기묘한 희열감이라 생각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심리가 모두 내가 아니면 어떤 일이든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는 않은가?
(101) 몸은 정직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몸은 끊임없이 위로해 달라고 한다. 그는 안다. 몸은 억울할 때 가장 고통스럽다는 것을.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다칠 때가 있다. 급소를 맞았을 때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은 숨을 턱 멎게 만든다. 선생들로부터 단체 기합으로 무릎이 꿇리거나 의자를 들고 서 있어야 할 때 몸이 마비되는 고통은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든다. 하지만 몸은 아픈 기억을 쉽게 잊는다. 상처 난 곳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도 상황이 생각나지 고통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 강민은 몸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아우성치면 소리라도 질러야, 주먹으로 벽이라도 한 대 쳐야, 길가에 굴러다니는 깡통이라도 우그려 뜨려야 한다.
✎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부터 심기일전해야겠다.
(151) 성원은 준서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악의적인 웃음을 보았다. 역시 즐기는 애들이 더 많다. 왕따를 시키는 애만 빼고 다 왕따와 친구가 된다는 건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170) 준서는 아이들이 쑤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실제로 명치끝이 콕콕 쑤시고 허벅지가 발로 차인 것처럼 고통스럽다. 배우는 아프다고 소리쳐도 실제로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데 연극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건 지금 무대 위에 있다는 것, 링 위에 있다는 것, 그렇다면 현재다. 더군다나 결정적인 순간에 한눈을 파는 심판은 팔짱까지 끼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링 위에서는 반칙이 통한다.
<수준> 중2학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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