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스캔들(이현)

 

참 쉽게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긴장과 기대 때문이었는지 책을 덮으며 참 허탈하고 씁쓸했다.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같지만 어디에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허탈한…….

 

0205 비밀의 방. 윤선이의 말에 의하면 폐쇄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마음 놓고 놀아볼 수 있는 곳이란다. 실제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교사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교사를 상대로 한 게임 프로그램까지 올리고, 교생의 사생활까지 폭로되기도 한다. 자유롭게 마음껏 본심을 풀어놓을 수 있지만 결국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 소통이 아닌 단절이 존재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쓴 가면은 스스로를 방어해 주지만, 결국 진실이 통하지는 않는다. 보라가 L의 존재를 쫓으면서 끝내 누구인지를 알아냈을 때의 당혹감과 분노는 이 소설이 지금, 현재 아이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담임의 인호에 대한 폭행 동영상으로 아이들은 적극적인 소통과 연대를 시도하지만, 아무 것도 해낸 것이 없다. 학교 안의 폭력도 사라지지 않았고, 성적에 의해 인생이 서열화 되는 것도 그대로이고(승범에 대한 묘한 보라의 감정이 정리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출한 은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담임교사만 사표를 냈을 뿐(이 담임교사도 언젠가 사교육 시장에서 만날 수 있겠지).

 

이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담임과 교생. 이들은 시작부터 다르다. 

교생은 자유롭고, 의지적이며, 단호한 신념과 실천력(세상에 1인 시위까지)을 겸비했다. 무엇보다 보라의 이모라는 설정 자체부터가 이미 독자들에게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에 반해 담임은 실력과 자신감이 넘치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친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급에 간첩을 심어 두고 있는 것이겠지만. 

 

담임은 2학년 5반이라는 집단에 분열과 불신을 심어준 원흉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나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소통과 단절, 불신에 대한 책임을 단 한사람에게만 지우고 있다. 오로지 수학 문제 잘 풀고, 성적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는 교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교사. 그런 교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일제고사가 전국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시점에서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물론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을 교생에게 발견하라고 작가는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생은 문제의 핵심보다 변두리에서 맴돌 뿐만 아니라 너무도 비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러하기에 교사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의심스럽고 실망스러울 뿐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학교 현실은 있을 법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학교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내 주변에 아이들과 소통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교사들이 있고, 교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성적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지만, 아이들에게 권하라고 하면 썩 내키지 않는 책이다. 왜 일까, 내가 교사라서? 

 

(47) 이제부터 너희가 숙제를 하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졸거나 성적이 떨어지거나,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 학교는 나와야 한다. 나로서야 이해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게 법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너희들도 이편이 나을 거야. 괜히 눈치 보고 들볶일 필요도 없고, 그래도 졸업장은 나올 거고, 이제부터 그 자리가 너희들의 고정석이다. 절대, 자리를 옮겨 앉아서는 안 된다. 마치 이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자리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라. 축하한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자유다. 

 

✎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꽤나 엄청난 오기와 베짱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교사들은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을 쓰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76) "무엇이든 적어 내라. 모른다고 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 생각나지 않는다는 소리도 필요 없어. 생각나지 않으면 생각해내라. 이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른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조인호를 빼고 서른여섯 명, 한 장이라도 백지가 나온다면 하나하나 주인을 찾아내겠다. 누가 백지를 냈는지 밝혀내겠다. 만약 끝내 한마디도 적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담임은 말을 끊고 천천히 통로 사이로 걸었다. 그리고 교실 한가운데에 서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

 

✎ 이건 내가 주로 써먹는 방법인데.. 쩝. 교실에서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정보가 빠삭한 교사라 하더라도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등은 이런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책 속의 담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마디도 쓸 것이 없다면 노래 가사라도 적으라고 하는 것!

 

우리들의 스캔들
국내도서
저자 : 이현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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