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tree] 모성을 간직한 흙(작은 것, 먼 곳 3)

11월 10일 금요일.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한파'가 몰려왔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지난주 화요일 생태수업 때에는 더워서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생태수업이니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겠다. 수업 전날 학생들에게 기온이 10도 정도로 떨어질 거라며 추위에 대비하라고 안내했으나 '감'이 없었다. 나 역시 출근하면서 가을 재킷을 입을 것인지 파카를 입을 것인지 고민하다 둘 다 가지고 출근했으니까. 게다가 활동 장소인 두암주공 2단지 공원은 앞동 아파트에 가려 그늘이 형성돼 아이들이 추위에 떨었다. 다행히 오후에 활동하는 반은 옷 단속을 좀 더 했고 날씨도 풀리고 햇볕도 나와 좀 더 여유 있게 활동하고 지켜볼 수 있었다.

 

3차시 수업은 '모성을 간직한 흙'이었다. 수업 계획표를 보며 활동 내용이 가장 궁금한 수업이었다. 

 

학교에서 출발해 아파트 주위의 초목을 관찰하며 지나갔다. 아파트 현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측백나무와 '율마'는 둘 다 향기가 진했다. 특히 '율마'는 손으로 쓰다듬으면 시원한 향기가 느껴진다.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하나라고 했으나 출입구의 깔끔한, 청명함을 준다.

 

측백나무와 율마. 둘다 향이 진하다

 

그리고 화단에 국화가 가득 피었다. 숲샘은 아이들에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를 들려주셨다. 늦가을 추위에도 활짝 피어 있는 국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거쳐 많은 시련을 이겨낸 뒤 활짝 꽃을 피웠다는 시의 내용이 국화와 그리고 우리 누나들, 중년의 이미지와 잘 연결된다고 설명하셨다.

그런데 이 시를 통해 식물의 성장과 관련된 과학이 숨어 있다면 설명해 주셨다. 식물이 성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질소는 공기 중에 78%를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그 자체로 흡수가 되지 않는데, 번개가 치면서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질소화합물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빗방울과 함께 땅에 떨어지면, 그것을 뿌리가 흡수해 성장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시 '국화 옆에서'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상징뿐만 아니라 과학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모든 질소화합물이 공기 중에서 형성돼 땅에 스미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분비물(손변 등)도 질소화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땅'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이를 모든 생명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아참 아이들은 숲샘이 '국화'를 보며 이름을 묻자 '개망초'라고 크게 답했다. 숲샘은 모두 '두상화서'의 꽃으로 한 송이 꽃이 아닌 꽃다발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수업 후 숲샘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시의 내용을 떠나 서정주 시인은 친일부역자라 소개하기에 부담스러우므로 장석주 님의 '대추 한 알'을 소개해 주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드렸다. 물론 대추 열매를 국화만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숲샘은 '대추 한 알'도 활용하는데 아파트에 '국화'가 있어서 활용했다고 하셨다)

 

늦가을의 한파가 국화의 아름다움을 더욱 드높인다.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들어 보이시며 같은 것을 찾아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단내가 살짝 풍겼다. 아이들은 '달고나향'이 난다고 했다. 숲샘은 아이들에게 동요 '반달'을 들려주며 '계수나무'를 들어보았냐고 물었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이 긍정의 감탄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이 나무가 계수나무인 것은 맞으나 반달의 '계수나무'나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찍는 장소의 '계수나무'와는 다른 나무라고 하셨다. 즉 노래나 옥토끼의 '계수나무'는 금목서, 은목서 할 때의 '목서'나무라고 한다. 일본에서 수입되면서 일본식 한자를 따라 '계수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주공아파트에는 세 그루가 있었는데 잘 살펴보고 다른 점을 말해 보자고 했다. 줄기의 갈라짐이나 잎의 많고 없음까지 이야기 나오다, 열매를 발견하고 암수나무를 구별할 수 있었다. 

 

계수나무와 계수나무 잎

 

숲샘은 계수나무 잎처럼 하트모양의 잎을 더 찾아보라고 하셨다. 1m 남짓 여러 그루가 모여 있는 나무의 잎이 더 하트처럼 보였다. 숲샘이 '라일락'이라고 하자 많은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인다.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이라며 라일락 잎을 먹어보라고 조금씩 뜯어 주셨다. 아이들은 이파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먹어보더니 쓰다고 뱉어 내고 물어 마시거나 보조강사 샘이 가져오신 사탕으로 입가심을 했다. 선생님은 첫사랑의 느낌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자신은 첫사랑을 간직하겠다며 참고 삼켰다. 나중에 소감문을 보니 자신이 사랑을 내가 눈치챘을 거라고 적었다. 물론^^

 

숲샘은 토종 '털개회나무'가 광복 후 미국 채집가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원예종으로 개량된 뒤, 자신의 일을 돕던 한국인 여성의 성을 따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비싼 로열티를 내면서. 예전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만든 대안국어교과서 "우리말 우리글"에 이 글이 실려 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털개회나무는 '수수꽃다리'의 일종이라 실제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걸로 인식하고 있다고도 하셨다. 첫사랑의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첫사랑을 하기도 전에 쓴맛부터 보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의 소감문에는 '라일락'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년에 라일락이 필 때 쯤 와보겠다는 아이도.

 

라일락 나무와 잎

 

라일락을 맛보다 넓은 공터에 이르렀다. 숲샘은 낙엽 중 노란색 꽃가루가 많이 묻어 있는 나뭇잎을 보여주시며 '히말라야시다'의 꽃가루라고 했다. 히말라야시다는 다른 나뭇잎에 붙어 있다 이리저리 옮겨 다시며 번식한다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교목이 '히말라야시다'였다. 성석제 님의 유명한 단편소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일이 있으면 오늘의 추억을 꼭 연결해야겠다. '히말라야시다'는 이름답게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원산지라, 줄기가 아래로 처져 있었다. 내린 눈을 감당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다 자기만의 생존 방식이 있다.

 

히말라야시다 나무와 꽃, 히말라야시다 화분

 

햇볕이 있는 공터로 이동하면서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스트로브잣나무'의 열매가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들자, 복습 겸 육송과 리기다소나무, 잣나무를 어떻게 구별했는지 복습했다.

 

스트로브잣나무와 열매

 

공터 입구에는 양 옆으로 '회양목'이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아이들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에 지난주까지도 날씨가 더워, 꽃과 열매가 함께 있었다. 선생님이 회양목에 '부엉이 세 마리'가 살고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아이들의 관심이 확 쏠렸다. 선생님이 열매를 깨자 깨진 껍질에서 부엉이 모양의 껍질 3개로 쪼개졌다. 부엉이를 찾던 아이들이 다들 신기해하며 모여들었다.

 

회양목, 회양목의 꽃, 잎, 열매, 열매를 쪼개면 보이는 부엉이 모양의 씨앗

 

공터 벤치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서 있었다. 역시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그 아래 시멘트로 만들어진 의자와 둥그런 탁자도 있었고. 플라타너스 열매로 장난스럽게 머리를 한 번씩 치기도 했고. 당시엔 교과서에 김현승 님의 '플라타너스'라는 시도 실려 있어서 더 익숙했다. 

숲샘은 잎이 넓고, 잎 뒷면에 털이 있어 오염 물질을 흡수하기 좋아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플라타너스 낙엽은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는데 땅에 숨 쉴 틈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깊은 뜻이^^

 

플라타너스 나무와 잎. 모양만 보고 캐나다의 국기를 떠올렸는데 캐나다 국기의 나뭇잎은 단풍나무의 일종이라고 한다.

 

숲샘은 다시 단풍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단풍'은 잎 전체를 초록색으로 만들었던 엽록체가 사라져야 비로서 드러나는 자신의 숨은 강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공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낙엽을 모아 비닐 자루에 담은 뒤 나뭇잎 공을 만드셨다. 그런 뒤 둥그렇게 모여 서로 공을 넘기며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낙엽을 꺼내 낙엽에 단점을 적고 줄에 묶었다. 이후 단점을 극복하는 상징식을 했다. 줄을 뛰어넘거나 줄 아래로 여러 번 지나가면서.

 

상징식이 끝난 이후에는 나뭇잎을 잘게 썰어 풍선이 붙어 있는 화장지 심지에 넣게 했다. 그리고 풍선을 잡아당겼다 놓으면 화장지 심지 안에 있는 낙엽 가루가 축포가 터지듯 날아가는 놀이를 했다. 단점을 벗어던진 축하의 의미로. 그리고 놀이로. 아이들의 소감문 속에 식물은 멀리서 감상하는 대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모양과 냄새, 또 식물과 놀면서 훨씬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왼쪽) 나뭇잎공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단점을 고백했다.  (오른쪽) 나뭇잎에 자신의 단점을 적어 보았다.
(왼쪽) 단점이 적인 나뭇잎을 매달아 극복하는(뛰어넘는) 상징식.   (오른쪽) 잘게 부수어 폭죽으로

 

이후 선생님은 기다란 나뭇줄기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며, 각자 숲의 어떤 것이 되고 싶냐, 어떤 것이 생각나는지 물었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나왔다. 숲샘은 해당 아이들이 그 동식물을 대표하는 종이라고 가정하고, 세운 나무를 둔 채 옆자리로 이동하게 했다. 이동하는 동안 나무가 쓰러지면 종은 멸종된 것으로 보고 빈 공간으로 두었다. 놀이가 거듭되면서 빈 공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넓어지면서 아이들도 더 바삐 움직여야 했다. 즉 생태계에 빈틈이 생기면 주변 생태계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생태 나무 놀이'를 했다.

내가 관찰했던 반은 마지막에 '고라니'만 남았다. 숲샘은 이 고라니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먹을 것이 없으니 고라니도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곧 모든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잘 전달했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대지'도 동시다발적인 파괴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고 언제까지 자식을 품어 줄 수만은 없으니까. 자식들이 서로 연대하며 홀로서기를 바라며 긴장하며 손을 놓을 테니까. 특히 청소년기가 마냥 유예돼 가는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태 막대 놀이. 곧 순환이 시작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3차시 수업은 그 동안의 수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돌아보니 아이들의 첫 숲체험은 부담스러움으로 시작했다. 숲은 삶의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심리적으로는 더욱 먼 곳이었다. 당장 벌레가 무섭고, 수풀에서 맡게 되는 알 수 없는 냄새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풀은 만지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숲체험을 하고 놀이를 하며 하나씩 알게 되고 정서적인 거리가 좁혀지면서, 숲은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와 보고 싶은, 좀 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제 숲과 초목은 단순한 '눈짓'이 아닌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숲 체험을 하며 눈맞춤한 풀과 나무를 우리 학교 구성원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나눠 기록하게 했으나 공유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전체 수업 흐름에 대한 나의 고민이 부족했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매시간 고민이 되었다. 이런 고민을 공유하기 위해 수업 내용을 정리했다. 내년에는 더 의미 있게 이어가도록.

그래서 아이들도 이번 생태수업을 통해 나름대로 작은 것들을 주목하게 되었겠지만 나 역시도 그렇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보인다. 그리고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끝으로 주 강사, 보조 강사 샘들과 수업 내용 및 아이들의 활동을 공유하며 학생들의 경험을 조직하는 동료 교사로서 수업 설계 및 진행, 피드백 과정에서 크게 배웠다. 확실히 교육은 공공재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현재에도 유효하며, 오히려 학교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북구문화의집 담당자, 매개자, 숲해설 전문가 선생님들께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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