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학생회 연간 계획 수립을 위한 워크숍

우리 학교 학생회는 3월 신입생 입학 후 1학년 차장을 뽑은 뒤 3월 말이나 4월 초가 돼서야 연간 계획 수립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해 왔다. 1학년의 의견까지 반영해 학생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생각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학생회 활동이 다소 늦어지는 아쉬움이 있어, 12월 학생회 임원 및 2, 3학년 부장과 차장이 꾸려진 다음 바로 학생회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고흥 광주학생해양수련원에서 학생회 임원 수련회를 지원(버스, 숙박, 체험프로그램 등)해 준다는 공문이 와서 신청했는데, 12월 22~23일로 선정이 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라 아이들에게 여유가 있을 줄 알았으나 축제 체험마당과 학급 공연 준비, 학생회 공연 준비로 경황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 워크숍도 이 시기에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내년에 학교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만큼진행하고 업무를 인계하고 싶었다.

 

학생회 워크숍 일정은 다음과 같이 계획했다.

1차는 신구 임원 워크숍으로 진행해 인계 인수가 되도록,

2차는 새 임원들만 모여 사업계획을 세워, 2월 새 학년 준비 워크숍 때 사업 발표를,

3차는 1학년 학생회 차장까지 구성한 뒤 연간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자리로. 이 중 2차까지는 우리 부서에서 운영했다.

 

여기서는 1차 워크숍의 흐름을 메모한다. 워크숍 프로그램은 자료를 찾다 부산시교육청의 "2021 학생 및 학부모 다모임 매뉴얼"이란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워크숍 일정을 짰다.

 

문제는 폭설이 내릴 거란 예보였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치셨다. 수련원 측과 협의해 일단 날씨를 지켜보기 위해 출발 시각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늦추었다. 

 

수련회 당일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 정문에서 주차장까지 완만한 오르막길인데도 조금씩 미끄러졌다. 눈발이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수련원에 문의하니 고흥 지역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순천에서 3년 살았던 경험으로 볼 때 순천이나 고흥은 눈이 잘 안 내린다. 광주가 눈이 내리더라도 하루 정도면 제설이 될 것 같다.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 버스가 후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눈이 내리는데 아이들 손까지 빌리기가 미안해 차에 물품과 간식을 실어 후문으로 옮겼다. 

 

여하튼 눈이 내리는 속에서도 버스는 고흥 해양수련원으로 출발했다. 보성까지는 도로에 눈이 보이기도 했지만 목포-순천 간 고속도로, 그리고 벌교에서 고흥에 들어서자 길이 깨끗했다. 눈발도 날리지 않고. 전남이 이렇게 넓다. 

 

고흥군 도화면 발포해수욕장에 인접해 있는 광주 학생해양수련원 모습 

 

수련원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짐 정리를 하고 점심부터 먹었다.

사전에 수련원과 협의했던 프로그램인 클라이밍과 바리스타 체험을 했다. 강사 선생님들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충분히 도전 욕구를 끌어 올리는 클라이밍 체험, 비록 아이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바리스타 체험까지 즐겁게 참여하는 아이드의 모습을 보며 긴장된 마음이 다소 풀리기 시작했다. 저녁 먹기 전후 자투리 시간은 학생회 축제 공연 준비로 바쁘게 보냈다. 저녁식사도 맛있게, 여유 있게,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체육관의 인공암벽 시설. 하면할수록 아이들의 도전과 숙력도가 높아졌다.
바리스타 체험. 심사위원이 돼 아이들의 커피 맛을 보았다^^

 

이후 7시부터 본격적인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먼저 2022년 학생회장의 사업 평가가 있었다. 잘 한다. 그리고 크게 4가지 주제-학생회란 무엇인가, 내년에도 이어갈 사업, 축소할 사업, 부서통폐합-를 월드카페 형식으로 진지하게 토론했다. 수련원 측에서 10시까지는 행사를 정리해 달라고 해 시간 조절에 신경 썼지만 10시를 살짝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활동하는 틈틈이 아이들이 활동하는 시간을 지켜보시더니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프로그램이나 학생들의 태도가 진지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학생회 워크숍 흐름
두 번째 주제 '학생회란 무엇인가' 월드카페 기록물과 정리된 자료, 모둠별 활동 모습

 

10시 30분까지 자유 시간을 주었다. 10시 30분부터는 다른 실로 이동하지 않도록 했는데, 남학생들 층에서는 날새는 녀석들도 적잖게 있었다. 한두 번 자라고 주의를 준 다음에, 내 숙소의 문을 살짝 열어 두어 존재를 알렸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맞이했다.

 

수련원에서 맞이한 일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부터 내린 눈이 살짝 쌓여 있었다. 아내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현관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쌓였다고 사진과 함께. 민주도 원격 수업을 한다고 했다. 광주는 눈이 상당히 많이 내렸나보다.

수련원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괜찮았다. 아이들의 힘찬 새 출발을 빌었다. 아침 먹고 자유 시간 동안 현 학생회 임원들은 축제 공연 연습을 했고, 새 임원들은 졸업식 공연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먹기 전까지 오전은 수련원에서 멀지 않은 두원면의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둘러보기 도자기 제작 체험을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수련원 연구사님이 국도 CCTV 사진을 보여주며 박물관의 위치가 주도로에서 몇 킬로쯤 들어가야 하는데 미끄러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젯밤부터 교장 샘께서 수련원장, 연구사, 버스 기사님께 전화해서 수련원 쪽 상황을 계속 체크하셨다고 한다. 행사를 치르고 있는 내가 신경 쓸까봐 나에게 전화는 못하시고 외각으로 계속 체크하셨던 것 같다. 이런 날씨 상황에서 이만큼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다행이라 생각해 분청문화박물관 체험 일정은 취소했다. 대신 수련원 측에서 노래방, 당구장, 숙소, 강당 등 활용 가능한 시설을 열어 주셨다. 

 

수련원 2층에 있는 당구장, 노래방은 2~4층까지 준비돼 있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시에 수련원을 나섰다. 예상대로 과역까지의 도로는 괜찮았다. 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벌교부터는 도로를 제외하고 갓길에는 눈이 제법 쌓였다. 화순 이양을 지나면서는 눈발도 굵어지고 길도 슬러시 상태가 돼 있었다. 그래도 버스는 힘이 좋아 잘 치고 나갔다. 너릿재를 앞두고는 눈 때문에 차선이 줄어들면서 병목 현상이 심했다. 하지만 버스는 잘 치고 올라갔다. 제설작업이 비교적 잘된 2순환도로를 타고 각화중 앞 4거리를 내려오니 광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다니..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마치 해외 스프링캠프를 다녀온 것 같이 낯선 풍경이었다.  학교 앞 주유소 건너편에 버스를 세우고 종례를 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정말 눈길을 헤치며 교무실로 왔다. 폭설로 종례가 빨라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짐을 두고 교장실로 가려던 중에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보자마자 눈물을 지으셨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는지 느낌이 왔다. 교장이란 그런 자리인가 보다. 학부모님께 문자를 보내고 나니 4시를 살짝 넘겼다.

이후 집에까지 가는 길은 재난영화 수준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충분히 다녀올만한 워크숍이었다. 학생해양 수련원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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