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후(레프 똘스또이 외)

 

무도회가 끝난 후
(레프 똘스또이 외, 박현섭, 박종소 엮고 옮김 / 창비)


러시아 문학기행에서 너무도 멀리 와버린 시점에서 창비 세계 단편집 읽기 마무리를 러시아 단편으로 매듭짓게 되었다. 수미상관, 원점회귀도 아니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

2019년, 2020년까지 2년간 러시아 장편 위주로 읽었기에 고골의 ‘외투’ 외에는 작가는 들어봤지만 작품은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결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뿌슈낀! 그의 소설 ‘한 발’에서는 오랜 세월 기다린 진정한 복수와 명예 회복의 의미를, 인간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의 거장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녀의 멋지고 품위있는 아버지의 야만스러운 모습(도망친 따따르 죄수를 행군하며 잔인하게 구타함)에 구토를 느끼며 허상과 다른 현실에 직면하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슬픔’에서 자식을 잃은 마부의 슬픔을 들어줄 그 어떤 사람도 찾지 못하는 비참한 이야기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맞춤’도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인의 입맞춤을 받게 된 모태솔로 군인이 자신이 직면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일장춘몽 같은 이야기다. 허무하지만 눈길을 끝까지 잡아두는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고리끼의 ‘스물여섯과 하나’는 두 번째 읽는 작품이지만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밝고 사랑스러운 따냐를 시험에 들게 한 스물여섯 명의 크렌젤리 제빵공들이 무례하다고 느껴질 뿐이고, 각각이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하기에 더욱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느껴진다고 할까? 어쨌든 크렌젤리가 어떤 빵인지 궁금해서 검색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는 없었다.

불가꼬프의 ‘철로 된 목’은 누구나 처음 맞닥뜨리는 인생의 중요한 시험에서 겪는 찰나적인 갈등과 선택의 긴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회피와 무책임이 아닌 아이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쪽으로 판단한 주인공의 극적인 선택과 실행이 압권이었다. 내면에서 오는 두려움과 갈등을 극복하고 존경받는 의사로 성장하기까지의 모습이 감동이기도 했다.

바벨의 ‘편지’와 떼피의 ‘시간’은 역사와 시간이 만든 아이러니한 인간들의 모습, 자마찐의 ‘동굴’은 이상하게도 주인공 부부가 겪는 비극적인 상황이 고리끼의 ‘외투’를 떠올리게 했다. 주인공 이름부터가 아까끼 아까기예비치와 비슷한 마르찐 마르찌느이치여서 그런 것일까? 주인공 부부의 극악한 가난과 이웃들의 무정함이, 아까끼가 겪은 추위와 주변사람의 무관심과 닮아서일까? 

이반 부닌의 ‘가벼운 숨결’과 ‘일사병’은 젊음과 육체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에둘러서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벼운 숨결’의 여주인공의 죽음과 ‘일사병’의 남주인공의 찰나의 만남이 모두 너무도 허무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뽈라또노프의 ‘암소’는 성장소설이다. 멈춘 기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바샤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에 아끼는 암소를 잃게 된다. 암소가 죽어도 울지 않는 바샤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이렇게 러시아 단편들을 읽으며, 언젠가는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러시아 문학의 탄생지들을 둘러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인상 깊은 구절-

한 발(알렉산드르 뿌슈낀)

(19) 첫 번째 순서는 영원한 행운아인 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총을 겨눴고 내 모자를 맞혔습니다. 이제 내 차례가 온 거죠. 그의 목숨이 마침내 내 손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나는 단 한 점 불안의 그늘이라도 찾아낼 양으로 그를 탐욕스럽게 응시했습니다……그는 내 총구 앞에 서서 군모 안에 있는 잘 익은 체리를 골라먹고 있었어요. 그가 뱉어내는 씨앗이 나에게 날아오더군요. 그 태평함에 나는 격분했습니다. 나는 생각했어요. ‘이자가 자기 목슴을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걸 빼앗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악의에 찬 생각이 뇌리를 스쳤어요. 나는 총을 내려뜨렸습니다.

(23) 사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거기 뚫려 있는 두 개의 겹쳐진 총알 자국이었다.

(25)  다 이야기하겠어. 이분은 내가 이분 친구를 어떻게 모욕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제는 씰비오가 나에게 어떻게 복수했는지 알려주자고.

(27) ‘이 사람은 항상 장난을 치죠, 백작부인. 한번은 장난으로 내 따귀를 때렸고, 또 한번은 장난으로 내 군모에 총구멍을 냈고, 이번에는 장난으로 나를 빗맞혔지요. 이제 나도 장난을 치고 싶어지네요……’ 이 말과 함께 그는 나를 조준했습니다……아내 앞에서 말입니다! 마샤가 그의 발밑으로 몸을 던졌어요. ‘일어나 마샤, 부끄러운 짓이야!’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습니다. ‘이보시오, 이 불쌍한 여자를 그만 좀 조롱하시오. 도대체 쏠 거요, 안 쏠 거요?’ 씰비오가 대답했어요. ‘안 쏘겠네. 당황하고 겁먹은 자넬 본 것으로 만족해. 자네가 날 쏘게 했으니, 난 안 쏴도 상관없어. 자넨 날 기억하게 될 거야. 자네의 양심에 자넬 맡기겠네.’ 그리고 그는 방을 나섰어요. 아니, 문에서 멈춰섰지요. 그러더니 내가 총으로 맞힌 그림을 힐끗 바라보고는 거의 겨냥도 하지 않은 채 그걸 향해 한 발 날렸습니다. 그러고는 사라졌어요. 

 

무도회가 끝난 뒤(레프 똘스또이)

(79) 바렌까의 아버지는 매우 멋지게 생긴 위엄있고 훤칠한 노인이었죠. 그의 얼굴에는 붉은빛이 돌았고 니꼴라이 1세를 연상시키는 흰 콧수염을 길렀지요. 콧수염은 흰 구레나룻까지 이어져 있었고, 곱게 빗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렸어요. 입술과 눈가에 서린 부드럽고 즐거운 미소는 딸과 빼닮았더군요. 체격도 정말이지 훌륭했어요. 화려하지 않게 치장한 훈장을 단 가슴은 군인답게 넓었고, 강인한 어깨와 길고 늘씬한 다리를 지녔지요. 그는 니꼴라이 1세의 훈육이 만들어낸 근면한 노병 타입의 군사령관이었죠.

(85) ‘새 몽둥이를 가져와.’ 그가 소리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를 보았죠. 나는 모르는 척하면서 그는 화가 난 찌푸린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돌려버리더군요. 나는 어찌나 수치스러웠는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도 몰랐어요. 마치 가장 수치스러운 일의 현장에서 들켜버린 것처럼, 나는 눈을 떨어뜨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지요. 가는 길 내내 내 귀에서는 예의 그 플루트와 북소리가 울려퍼졌고, 그 목소리가 들렸어요. ‘형제들, 부디 자비를……’ 그리고 또 대령의 자신에 찬 진노한 목소리가 들렸지요. ‘그런 식으로 마싸지나 하고 있을 테냐?’ 그리고 가슴속에선 구역질이 날 듯한 지경까지 이른 거의 육체적인 애수의 감정이 북받쳐올라 나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춰야만 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후 내 속으로 들어온 이 끔찍한 것이 곧 넘어올 것만 같았지요.

 

슬픔 (안톤 체호프)

*필경 체호프의 ‘슬픔’에서 작품 구상의 단서를 얻었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오히려 체호프가 결별한 19세기 단편소설의 전형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 막 서구의 근대문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당대 한국문학의 환경에서 현진건의 그러한 결정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체호프는 다른 길을 갔다. 체호프가 주목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이다.

(91) (제목 아래 한 줄) 내 슬픔 누구에게 호소하리?……

(97) “그러게나…… 마시라고…… 그런데, 이보게, 우리 아들이 죽었네…… 내 말 들어? 이번주에 병원에서 갔네…… 기막힌 일이지!”
이오나는 자신의 말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기다려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다. 젊은이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써 잠이 들었다. 노인은 한숨을 쉬고 몸을 긁적인다……젊은이가 물을 마시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는 말이 하고 싶다. 아들이 죽은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그는 아직 그 누구와도 제대로 말을 해보지 못했다.

(98) “그래, 이 친구야…… 이제 꾸지마 이오느이치는 없어…… 하느님이 데려가셨지……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구나…… 시방 너한테 새끼말이 있다고 치잔 말이다, 너는 걔 엄마고…… 그런데 갑자기 이 새끼말을 하느님이 데려갔다고 해봐…… 너라도 슬프지 않겠니?”
말은 건초를 씹으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주인의 손 위로 숨을 내쉬기도 한다……
열중한 이오난 말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입맞춤(안톤 체호프)

(116) 대포 또한 꼴불견이다. 앞쪽에는 방수포에 덮인 귀리 자루들이 놓여 있는데다가, 찻주전자며 병사들의 배낭이며 포대자루 같은 것들이 사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건 마치 작고 순한 짐승 한 마리가 영문도 모른 채 사람과 말 들에게 둘려싸여 있는 꼴이다.

(124) 랴보비치에게는 이 세상이 그리고 모든 삶이 불가해하고 목적없는 농담처럼 여겨졌다…… 강물에서 눈을 거두고 하늘을 바라본 그는, 운명이 낯선 여인의 모습으로 무심하게 그를 어루만졌던 일을, 여름날의 꿈과 이미지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러자 자신의 삶이 그에게는 말할 수 없이 빈궁하고 초라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중략) 그는 곧바로 그 불을 껐다. 그리고 운명을 저주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장군 댁에 가지 않음으로써 운명의 여신에게 항거라도 하듯.

 

스물여섯과 하나(막심 고리끼)

(134) 따냐에 대해서는 절대로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녀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뿐 아니라, 그녀는 우리 입에서 단 한 번도 주책스러운 농담이라도 들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우리에게 와서 오래 머물지 않고 잠시 다녀가는 까닭도 있겠지만 — 그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우리 앞에 번뜻 나타났다가는 홀연 사라져버린다 — 그밖에도 아마, 그녀가 아직 어렸고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우리와 같이 막돼먹은 인간들의 마음속에도 존경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고된 노동일이 우리를 거세당한 소처럼 만들었을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도 역시 존경할 만한 그 무엇이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148) 우리는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우리를 강탈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고, 이 최상의 것이 비록 거지들의 별것 아닌 것이라고 해도, 우리 스물여섯 명에게 그녀는 유일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고통받아도 싸고, 죗값을 받아도 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녀를 모욕했던지!……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시종일관 사나운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149) “에이, 당신들, 돼지 같으니라고 더러운 것들……”
그리고 그렇게 꼿꼿하고 아름답고 도도하게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태양도 없는 회색 하늘 아래, 더러운 마당 한가운데 남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각자의 돌로 된 축축한 움으로 되돌아갔다. 전처럼 창문을 통해 태양빛은 우리에게 닿지 않았고, 떠나도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철로 된 목(미하일 볼가꼬프)

(158-159) “우린 동의 안합니다!” 여자도 덧붙였다.
“그럼 알아서 하세요.” 나는 무심히 말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뭐, 이게 다군! 내겐 이런 상황이 더 쉽지. 내 이야기와 수술 제안에 간호사들의 놀란 눈 좀 보게. 이 사람들이 거절을 했으니 나는 살았군.’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낯선 목소리로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들 어쩌다는 겁니까, 미쳤어요? 어떻게 동의를 안한다는 말씀이 나옵니까? 아이를 죽이시겠어요? 동의하세요. 당신들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편지 (이삭 바벨)

174 “꾸르쥬꼬프.” 나는 꼬마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못된 분이었냐?”
“우리 아버진 개였어.” 꼬마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좋았고?”
“어머니는 좋지. 볼 테야? 이게 우리 가족인데……”
꼬마는 나에게 너덜너덜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시간 (나제쥬다 페피)

181 고고쌰는 매력적인 말상대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 모두에 대해 큰 소리로 온갖 이야기를 했다. 가끔 이야기 내용이 아슬아슬하다 싶으면 러시아인들이 흔히 그러듯이 프랑스어로 말을 하곤 했는데, 그것은 ‘하인들이 못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러시아어로 했을 때는 듣기 민망한 말이 프랑스어로는 매력적으로 들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186 “대단한 여자네! 그런 여자는 요즘 보기 드물지.”
바바 폰 메르젠과 무싸 리벤은 기분이 상한 듯 입을 닫았다.
“흥미로운 여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야.”
마침내 바바 폰 메르젠이 씹듯이 말했다.

187 우두머리 노파(마리야 니꼴라예브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루주가 발린 입술을 벌려 견실하고 두툼한 볼살을 기쁜 듯 씰룩였다. 벌린 입술 사이로 가지런하게 늘어선 푸른빛이 감도는 의치가 인사하듯 반짝거렸다.



동굴 (예쁘게니 자마찐)

(191) 빙하, 매머드, 황무지. 어쩐지 집을 닮은 한밤중의 검디검은 절벽. 그 절벽에는 동굴이 있다. 누군가 밤마다 절벽 사이로 난 돌길을 따라 뿔피리를 불며 다니는지, 그리고 고샅길의 냄새를 맡으며 하얀 눈꽃을 뿌리며 다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회색 코를 단 매머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이라는 것은, 행여 거대한 매머드의 얼어붙은 울부짖음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한가지는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
(중략) 수세기 전 빼쩨르부르그가 있던 절벽 사이를 회색 코를 단 매머드가 밤마다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가죽, 외투, 담요, 넝마를 걸쳐 입은 동굴 사람들은 점점 더 깊숙한 동굴 속으로 물러났다. 10월 1일 성모제에 마르찐 마르찌느이치와 마샤는 서재에 못질을 했고, 10월 22일 까쟌 성모일에는 식당에서 빠져나와 침실로 들어가 은신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혹한을 견뎌내든지 아니면 그대로 죽든지.

(197) 하지만 힘이 부쳤다. 마샤의 ‘내일’을 걸어잠글 힘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는 점선 같은 숨결로 나뉜 경계선상에서 두 사람의 마르찐 마르찌느이칙 사생결단의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끄라빈과 함께 있는 과거의 마르찐 마르찌느이치, 즉 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 마르찌느이치와, 동굴에 사는 또 한명의 마르찐 마르찌느이치, 다시 말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르찌느이치다. 이윽고 동굴에 사는 마르찐 마르찌느이치가 이를 갈며 또 한명의 마르찐 마르찌느이치를 밀어 덮치며 숨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가벼운 숨결(이반 부닌)

(216) 아빠 책에서 말이야. 아빠는 오래된 웃기는 책이 많거든. 그런 책중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였어…… (중략)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가벼운 숨결! 난 그게 되거든. 내가 숨쉬는 걸 들어봐. 어때 정말 그렇지?



암소 (안드레이 쁠라또노프)

(237) 석탄재와 결로된 수증기로 온통 뒤범벅이 되면서도 바샤는 일하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기관차는 오로지 바샤 덕분에 헛바퀴를 돌거나 멈추지 않고서 자기 뒤를 따라가고 있었으므로 바샤는 자신이 기관차보다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44) “그게 아니에요. 느리긴 했지만 어쨌든 소는 기관차에서 도망가긴 했어요. 그런데 옆으로 비켜날 생각은 안하더란 말이죠.” 기관사가 대답했다. “소가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246) 암소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우유, 아들, 고기, 가죽, 내장, 뼈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착한 암소였다. 나는 우리 암소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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