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교집, 초옥 이야기(정공보)

 

포의교집, 초옥 이야기
(정공보 지음, 박희병, 정길수 교감‧역주 / 돌베개)
2019년 3월 8일 초판 1쇄 발행

<포의교집>은 정말 특이한 한국고전소설이다. 1866년, 19세기 중후반 무렵 나온 소설이고 여성이 주인공인데, 한문소설이다. 젊고 아름다우며 보통 남자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의지 또한 강한 여성이 벼슬 없이 초라한 지방의 40대 선비를 지극히 사랑하는 이야기다. 이 여성의 가장 큰 약점은 유부녀인 데다, 신분이 미천하다(원래 신분은 종이었음, 지금은 서민의 아내)는 것. 두 사람의 사랑은 온갖 풍파를 겪다가 결국은 아름다운(?) 이별로 매듭지어진다. 작가는 정공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 어디에도 기록이 없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도무지 초옥(애칭은 양파)의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재미있는 것은 초옥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초옥과 이생을 도와주는 나이든 노비 당파 제외) 초옥 같은 재주 있고 미모를 갖춘 여성이 별 볼 일 없는 이생을 그토록 애정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옥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이생도 왜 자신이 이토록 과분한 사랑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소설을 번역한 박희병 교수는 초옥의 사랑에 두 가지 의식의 지향점이 발견된다고 한다.(책머리 6쪽) 하나는 일종의 허위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집을 뛰쳐나온 ‘노라’의 의식에 견줄 만한 의식이라고 했다. 번역자가 극찬한 것처럼 초옥은 앞선 작품은 물론 이후로도 한국문학사에 오랫동안 나오기 힘든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사랑의 시작도 과정도 마무리도 모두 초옥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이생은 지극한 사랑의 주인공이지만, 어찌 보면 한 발 물러선 이야기 전달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내내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초옥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진 일을 당해도 그것을 나중에 전달받거나 안타까워하거나 눈물을 흘릴 뿐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무능력자다. 어찌 보면 그것이 당시 이생과 같은 계급의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도 있겠다. 다만, 우물가의 남자 노비들을 엄하게 꾸짖는 장면이나, 후에 고종과 민비의 혼례(갈) 때 여령으로 뽑혀 의례 후 강제로 팔려갈 처지에 있는 양파를 구해내는 장면에서는 비록 지방 출신이지만 문벌이 좋은 가문 태생에 약간의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 정공보가 이입하고 싶은 인물이 이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많은 지방 출신의 벼슬 없는 선비가 한양에 올라와 미모와 재주를 지닌 어린 여성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이야기는 ‘당시 이생과 같은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판타지 혹은 로망’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이 아닌 한문을 읽을 수 있는 남성들을 타깃으로 해서 그들의 로망을 대리 충족해 주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이생과 초옥이라는 인물들도 흥미롭지만, 이생 주변의 한량 비슷한 선비들, 초옥의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우물가의 혈기왕성한 남자 노비들, 또한 국가적인 의례에 끌려와 노동력은 물론 인신매매(?)까지 당해야 했던 당시 하층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등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은 소설이었다. 앞으로도 19세기에 창작된 작품들이 더 많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구절-

(15) 충청도에 이생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문벌 좋은 집안 출신이었으나 재주가 시원찮아 쓰이지 못했고, 뜻은 컸으나 내실이 없었다. 이생은 불혹의 나이가 지났으나 가업을 팽개쳐 고향에서 천대 받는 신세였다. 그러나 경치 좋은 곳이 있다고 하면 신상에 아무리 긴급한 일이 있다 해도 다 내팽개치고 반드시 가 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21) 바깥에 큰 우물이 있는데, 우물가에서 서헌이 바라보였다. 물을 긷기 위해 날마다 사내들이 십여 명이 왔다. 장진사 집이 한때 중인의 차지였기에 물 긷는 사내들이 그동안 스스럼없이 왕래했고, 게다가 담배를 피워대며 시끄럽게 떠드는 꼴이 무엄하기 짝이 없었다. 이생은 이들이 몹시 보기 싫어 당장 행랑채 사내들을 불러 물 긷는 사내 몇 명을 잡아들이게 한 뒤, 어떤 자는 기와 조각에 무릎을 꿇리고, 어떤 자는 엎어뜨려 곤장을 때렸다. 몇 차례 이렇게 하는데 위의가 몹시 엄숙해서 그 뒤로는 감히 함부로 떠들거나 무례한 짓을 하는 자가 없었으며, 행랑채 사내들 또한 감히 중문 가까이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했다.

(22) ‘진짜 양반이시더라! 지금 물 긷는 사내들에게 호령하는 모습을 봤는데, 사대부의 기상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니? 연세는 어찌 되셔?’

(24) “조금 전의 꽃이 어떻던가요?”
이생은 벌써 그 꽃을 연적 주둥이에 꽂아 놓고 있었다.
“이 꽃이 아름답다면 아름답지만, 낭자의 아름다움만은 못하지.”
“이 꽃이 아름답긴 하지만 애석한 점이 있기에 저 혼자만 볼 수 없어서 꽃을 꺾어서 서방님께 던졌습니다. ....”

(25) 똑같이 어여쁘고 향기로운 꽃이지만 어떤 꽃은 귀인의 사랑을 받고 어떤 꽃은 시골 목동의 사랑을 받거늘,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태어난 곳이 다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는 바로 이 때문에 이 꽃을 애석히 여겼습니다.

(64) 바윗돌을 안아다가 양파에게 던졌는데 맞히질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낫을 들고 와서 양파의 두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베었습니다. (중략) 이런 일이 있었지만 양파는 뉘우치거나 자책하는 마음이라곤 조금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여전히 서방님을 잊지 못한다는 말을 행랑 여자들에게 했다는군요. 양파 남편은 제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았다고 의심해서 수도 없이 제게 욕을 퍼부었는데, 저는 변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저녁에 서방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그동안 단장이라곤 하지 않던 양파가 갑자기 경대를 열고 분통을 꺼내더니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더랍니다. 양파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또 화가 나서 분통을 걷어차니 분통이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답니다. 세상에 이처럼 겁 없는 아이가 어디 있답니까?

(77~78) (사선이 양파를 꾀는 말에 응답하며)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서로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면 방금 사귄 사람과 다름이 없으며, 한 번 보고서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오래 사귄 벗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기에 한 말입니다. 쇤네는 비록 부귀한 형세는 아니지만 아름답고 귀한 용모와 높고 넉넉한 재주를 지녔습니다. 평생의 소원이 빈천한 벗을 사귀어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 것인지라 이런 벗을 갖게 되기를 목을 빼고 기다려 왔습니다. (중략) 만약 이서방님이 장서방님처럼 풍채가 좋고 젊었다면 저는 돌아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96) 박명한 초옥이 이서방님께 올립니다. 저는 전생에 쌓은 죄 때문에 지금 세상에 유배왔으니, 만오라기의 붉은 근심과 천 오라기의 푸른 원한이 인생 백년에 가득합니다. 아아! 백년이 비록 잠깐이라고 하나 하루가 삼 년 같으니 그대 생각에 아픈 마음을 어찌할까요?

(101~102) 서울 오부의 양가 여자 중에 결혼했지만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을 다 여령으로 뽑아서 의례를 가르친 뒤 대례에 씁니다. 일단 여기 뽑히고 나면 기생이 돼도 좋고, 남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도 상관없습니다. (중략)
여기 뽑혀 들어온 여자들 중 집이 넉넉한 이들은 몸종과 남편이 여자를 지키기 위해 별도로 사처를 정해 머무는 까닭에 오입쟁이라 해도 감히 접근을 못합니다. 의복이며 머리 장식도 모두 자비로 마련하니 내외의 구별이 엄격합니다. 하지만 집이 가난해서 자비로 마련할 수 없는 여자들은 오입쟁이 하나가 나서서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하면 가례 전에 그 사람의 아내가 되며, 가례가 끝난 뒤에도 계속 그 사람 아내가 되기를 원하면 본남편은 감히 뭐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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