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김상욱)

 

2020년 1월 전국국어교사모임 연수를 들으러 부산에 며칠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 제철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는 ‘F1963’을 들렀다. 차도 마시고 미술품도 관람하고 yes24 중고서점에 들렀다 “김상욱의 과학 공부"를 재미있게 읽고 난 뒤여서 이 책을 구입했다. 한두 번 펼쳐보기는 했는데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는데 다행히 이번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해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이 책은 물리학의 기본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리는 지구가 돈다는 발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가 돈다는 것은 사람의 상식과 편견을 버려야 이해할 수 있다. 호기심으로 출발해 관찰하고 인과관계를 찾으며 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 물리인 듯싶다. 만물의 이치를 살피다 보면 인문학과도 통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하겠다는 의도에 잘 들어맞는 책이었다.

비록 물리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힘은 약했지만 그를 통해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힘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내용을 메모해 가며 읽었지만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다른 자료들을 뛰어넘을 수 없으니,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내용 중심으로 메모해 본다.

 

(23)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조차 지구로부터 1조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우주에서 빛을 내는 별들은 대개 이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큰 스케일로 보면 별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다. 더구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물질이 우주에 가득한데,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 불린다. 빈 공간의 어둠은 예외로 두더라도, 이런 암흑의 유산이 우주 전체 물질을 96%를 이룬다. 이렇듯 우주는 그 자체로 거의 어둠이다. 주위에 빛이 충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우리가 단지 태양이라는 보잘것없는 작은 별 가까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 우주의 스케일을 상상할수록 모든 상황이 ‘감사할’ 수밖에 없다. 책 전체를 읽어보니 '태양'은 정말 대단한 존재다.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며 그것 자체가 양면적인 우주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주에서 ‘빛’은 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태양 가까이에 있어 빛과 에너지로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의 시작은 ‘빛’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때의 빛은 우리의 눈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빛’을 포함하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빛’에게 큰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주변의 그런 빛과 같은 존재들이 여럿 떠오른다.

 

(75) 유전자 수준으로 가서 보면 차이를 구분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모든 인간의 유전자는 다른 사람과 평균적으로 99.5% 같다고 한다. 유전자만 보아서는 두 사람을 차별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의미다. 유전자까지 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평등도 문제가 된다. 침팬지는 인간과 99%가 같다. 참고로 남자와 여자도 유전자의 99%가 같다. 인간의 평등이 생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며, 우리는 이제 평등의 범위를 다른 생물종으로 넓혀야 할 시점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 생물학을 통해 인문학적 사고를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왜 평등해야 하냐는 질문에 과학자로서 ‘생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면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을 차별할 근거가 없다. 즉 존재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문화이며 평등의 대상 또한 길게 봐야할 것 같다.

(94) 생명현상도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물리법칙은 원자 수준에서 확률만을 알려준다. 생명도 이 확률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왜 특정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주사위를 던져 왜 하필 ‘1’이 나왔냐고 묻는 거랑 비슷하다. ‘1’은 가능한 사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진화는 우연히 일어난다. 우연으로 선택된 수많은 사건의 연쇄에 의미를, 아니 더 나아가 의도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연은 필연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 흥미로운 부분이다. 인과율의 ‘뉴턴역학’과 최소작용의 원리의 ‘해밀턴역학’에서 출발해, 컴퓨터와 인공지능, 창조론과 진화론, 선형적 예측과 비선형적 예측, 그리고 비선형적 예측이 카오스를 보이기 때문에 통계적 예측이 가능하며 이는 곧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결과와 맞아 떨어진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후 이야기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어진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정리하려고 보니 이해를 못 한 것 같기도 하다ㅠ.ㅠ

(146)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진위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시지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지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가 우리를 버리면 우리는 멸종되거나 떠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거다. 우주도 그렇다. <인터스텔라>의 진짜 주인공은 블랙홀이 아니라 지구다. 영화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지구가 나가라면 나갈 수밖에 없다.

 

✎ 할 말이 없다.

(207) 인공지능에게 타자란

 

✎ 인간의 뇌는 ‘뉴턴역학’보다 ‘해밀턴역학’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자주 활용되는 부분이 뉴런의 연결이 강화되는데 이를 학습이라고 한다. 학습이 되면 자동으로 근육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인공지능의 원리도 이와 같아 신경망 회로의 노드라 불리는 것들 사이의 결합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ChatGPT 역시.
이렇게 보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같은 것일까? 김상욱 교수는 인간이 가진 감정이나 미적 감각, 도덕성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러면 인공지능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산물을 만들어 내고, 이를 인공지능의 의식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반문을 하신다. 읽다 보니 무서운 이야기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서.

(216) 혹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 풍요는 분명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부를 분배하는 것, 즉 분포의 표준편차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이슈다. 온도는 표준편차가 결정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의 평균을 높이더라도 표준편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는 뜨거워진다는 말이다.

 

✎ 햇볕으로부터 열이 생성되고, 열은 원자의 운동으로 생긴다. 그런데 운동하는 물체(낙하는 돌멩이, KTX탄 사람들)는 열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온도에 기여하는 운동은 '무작위적 운동'이다. KTX를 타면 모든 원자의 속도는 빨라지지만 평균값이 커지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 그 앞에서 혼자 움직이는 사람의 열은 올라간다. 따라서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표준편차다. 이를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의 열은, 평균값이 높은 게 문제가 아니라 표준편차…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런 걸 통찰력이라고 하나..

(251)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 온 우주의 모든 신비로움의 결과물이 우리 인간이다. 그러니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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