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김준)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하느라 아이들 방을 차지한 채 며칠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인후통과 오한, 고열은 많이 사라졌고 코맹맹이 소리와 기침만 살짝 남았다. 읽을거리를 찾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라는 부제를 보니 코로나와 같은 미생물을 다룬 책인 것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쓸모가 있을까? 우리 인간의 시각에서라면 아니겠지만 지구의 시각에서 보면 이유가 있으니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으리라,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을 읽다보니 코로나바이러스는 생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크기가 작아 연구대상으로는 미생물에 포함한다고)
 
이야기를 읽어보니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은 모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4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비슷한 흐름의 글들이며 쉬엄쉬엄 생각하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과학 전공자로서 연구하는 ‘예쁜꼬마선충’ 실험에 대해 소개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가볍게 스케치해 주었다. 실험실이라는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연구가 결국 우리 삶과 연관돼 있다는 것, 해보고 싶은 연구는 많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연구 환경, ‘노예’라고 불릴만큼 열악한 대학원 생활, 그런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연구자로서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 하지만 과학하는 즐거움으로 버티는 학자의 모습도 진하게 비친다. 
읽다 보니 ‘쓸모없는 것’은 ‘예쁜꼬마선충’같은 연구대상을 의미하기보다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모든 것, 특히 이른바 쓸모없는 것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우리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런 면에서 비교당하며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들린다.

 

(5) 매일같이 다니는 동네였지만 세상 가장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걷다 보니, 서서히 눈길 닿는 곳마다 세심하게 관찰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천천히, 더 샅샅이 둘러보니 처음 만난 신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새로움이 느껴졌다. 일상의 시공간이 낯선 세계가 되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 기억과 감각이 어질러지면서 간질간질하는 그 추억은 몽롱하게 오랫동안 기억 속에 새겨졌다. 

✎ 코로나 덕에 만난 소중한 경험이다. 거칠게 큰 그림을 그렸지만 이른바 ‘일상’도 사계절 들녘도 그렇지만 하늘빛도 구름도 매번 놀라운 새로움을 주었다. 관찰의 소중함은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매일 만나는 아이들에 대한 태도로서 매번 새겨야할 유용한 진리다.

 

(73) “하나만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아서 언제든 쉽게 대체될 수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엮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 통합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생물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생물학도 변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보다도 더 빨리 발전해서, 이제는 생물학만 붙들고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생물학을 하고 있듯이, 물리학과 화학의 관점에서, 혹은 미술이나 음악 같은 전혀 다른 분야의 관점에서 생물학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시대에만 답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 나이가 드니 이 구절이 공감이 된다. 하나만 공부해도 벅찬 세상이라 지금 꽂히지 않는 다른 것에 눈돌리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아야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안경을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진리다. 그래서 ‘박사’는 한자로 보면 넓게 아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다양하게 깊이 바라보는 전문가를 뜻하는 것 같다. 

(148) 선충이 갖가지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특징들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실처럼 단순하게 생긴 몸뚱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정하고 있다. 길쭉한 몸뚱이라는 단순한 형태로부터 이런 복잡성이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하지만, 어떻게 보면 ‘몸뚱이만 길쭉하면 된다’라는 아주 기본적인 제한을 줌으로써 오히려 엄청나게 창의적인 특징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 공부할 주제의 조건은 간단히, 그 안에서 마음껏 상상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창의적일까

(159) 염색체란 정말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 자주 끊어진다. 망가진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계속해서 끊어진 부분을 때우고 수선해서 회복시켰을 뿐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다양성이 생겨나며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겠어? 인생이라는 실타래도 매 순간 끊길 듯 위태롭지만 결국 어떻게든 이어지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살기 정말정말 싫지만, 살아남으려면 별 수 없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 돌연변이가 진화의 힘인데 학교는 돌연변이를 잘 감당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학교는 무언가 버티며 성장하는 긍정의 경험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9)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그 질문에서 얻은 답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질문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특히 생물학은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생물이라는 자연 현상을 탐구한다. 산과 들에서 느껴봤을 그 웅장한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식탁에 놓여 있는 다양한 식재료까지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생물학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바꿔내고 있다. 일단 한번 경험해보면 누구든 그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나도 뒤늦게 다양한 과학을 경험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공부하는 방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우리 인간을 보편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특별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청소년 소설을 읽다보니, 요새 ‘수포자’ 뿐만 아니라 ‘영포자’, ‘사포자’, ‘과포자’도 많이 생기고 있다는 구절을 보았다. 특히 과학에서 삶과 사고하는 힘을 키우는 기회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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