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자세: 행운을 부르는 법

양철북 출판사에서 보내주셨다.

주인공 레오니다스. 같은 이름의 스파르타 전쟁 영웅을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등 예민한 성격이다. 게다가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후 할머니 보호 속에 살지만 할머니 마저 돌아가신다. 아버지와는 대화가 거의 없으며 아버지는 남자다움을 요구한다.
학교 매점 봉사활동을 하다 농구부 주장인 드레이크와 싸운다.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학교에서는 레오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일주일에 한 번 두 사람이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벌을 받는다. 게다가 호신용으로 격투기를 배우라는 아빠의 지시로 체육센터를 다녀야 하고. 격투기를 피해 들어간 곳이 ‘핫요가’이고 고조할아버지 이래로 원수 집안의 자손인 ‘이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요가를 하면서 레오는 마음의 평화와 함께 좋은 기운이 생긴다. 또 이지를 도와주면서 뜨개질로 좋은 호응을 얻는다. 사진 촬영 실력도 함께.
점점 함께하는 사람이 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완성할 수 있는 동작도 혼자 할 수 있게 된다. 이지와의 관계도 깊어지면서 불안장애도 조금씩 줄어들고.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버지와도 대화의 문이 열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 “화장실 벽에 쓴 낙서”보다 이야기가 밝다. 표지에서도 그 밝음이 드러난다.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조현병보다 불안장애가 좀 더 나은 상황이기도 하고, 전자가 신약 치료를 받으며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했으나 약물 부작용으로 치료를 그만둬야 하는 암울한 상황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외로움보다는 혼자임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상황이고 요가와 뜨개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의 에너지로 자신감을 찾아가는 상황이기 때문인 듯 싶다.

문득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이런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다양한 활동 속에 나를 찾아가며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 좋은 취지이지만 학교 차원에 갇혀 진행하면서 다양성과 연결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학교의 담장을 지역까지 넓히는 게 필요하다.

한편 고민되는 것도 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 중 학교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갈등을 조절하며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데 레오처럼 혼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야하나. 얼마 전, 학급 단위로 ‘평화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혼자가 편하고 친한 친구들과 활동하고 싶은데 왜 공동체 활동을 해야하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복지사샘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지만, 중학생들도 잘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

 

(15) 레오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요.
레오는 학교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요.
레오는 혼자 겉돌아요.
레오는 조별 과제와 발표를 어려워해요.
레오는 뜨개질을 자주 해요.
마지막 말을 듣는다면 아빠는 수치심으로 사망할 것이다. 나에게 뜨개질을 전수한 사람이 자기 엄마라 해도. 할머니는 나한테 실과 바늘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가르쳐 주었다. 그걸로 아빠는 언제까지나 할머니를 원망할 거다. 그야 뜨개질은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아니, 남자가 하면 안 되는 일이니까.

(86) 하지만 나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성을 기르면 나에게 좋다는 걸 안다. 무리 지어 사는 건 인가의 생물학적 욕구니까. 먼 옛날 동굴에 살면서 생존을 위해 서로 뭉쳐야 했던 습성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혼자 지내면 큰일 날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적고 보니 레오의 문제가 진짜 문제인가 싶다. 마지막 뜨개질을 자주하는 걸 제외하고 나머지  상황은 교사로서 고민이 되는 학생의 모습이다. 이야기의 뒷부분에서 레오는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가 편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공교육 기관으로서 학교의 역할과 충돌되는 부분이다.

 

(30) 우리는 수업 전과 후, 그리고 틈날 때마다 기록을 해야한다. 성장하는 과정을 되새기는 수단이라는데, 나한테는 주로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가 되새기는 수단이 될 것 같다. 어차피 나만 보는 거라니까. 애나벨은 또한 나의 ‘진척’을 관찰할 수 있게 새로 배운 자세를 먼저 기록하라고 했다. 그 정도라면 뭐.

 

작가의 “화장실 벽에 쓴 낙서”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일기를 통해 내적인 힘을 키워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43) 지나치고, 집요하고, 위력적인 불안이다. 반복되는 강렬한 공포의 경험이 문제를 일으킨다. 공황발작, 불안발작. 그것들은 몸을 장악한다. 몸이 불안의 폭풍에 갇혀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내 의지를 배반하고 반응한다. 보통은 복통을 느끼지만 어떨 땐 호흡 곤란을 겪는다. 식은땀을 흘린다. 잠을 못 잔다. 한마디로, 피곤함을 달고 산다. 

 

✎ 연예 뉴스나 지인들, 또 학생들에게서도 가끔 접하는 어려움이다. 가끔 듣는 어려움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그 어려움을 약간 짐작할 수 있었다.

 

(126) 인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뜻하니까 한 번도 원해 본 적 없다. 나는 사람들을 꺼리니까. 적어도, 꺼렸으니까.
그런데 점심시간에 드레이크와 젠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그때 잠깐 누린 관심은 내가 아니라 내 뜨개 제품에 쏠린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강의 일부가 된 것처럼 물살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남들한테 휩쓸려서가 아니라 남들과 연결되어서. 놀랄 만큼 평온했다.

(212) 살다 보면 우주가 응답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이 걸음마를 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시작은 요가였다. 나는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낸 적 없다. 누군가 한 번씩 자세를 고쳐 줬으니까.
오늘도 그러려니 했다. (중략)
발을 차올려 두 다리를 공중에 띄웠다. 잠시 온몸이 보드처럼 곧게 펴졌다. 모든 근육이 자기 자리에 달칵 들어맞더니, 곧 허리를 말아 내려오면서 달칵 풀렸다.
똑바로 일어나자 애나벨이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미소를 보냈다. 내가 쓰러지지 않았다는 걸 다들 알아본 것이다.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215) 모든 게 평화로웠다. 이런 축제에서 툭하면 나를 덮치던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내 안에 숨죽여 도사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할지도 모르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으니까.

 

✎ 우주가 응답하는 순간,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음. 인상적인 단어들이다.

'핫요가'반 사람들의 연대가 눈에 띈다. 함께 활동하면서도 각자의 속도를 존중해 주면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  작가가 그리는 사회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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