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꽃님)

 

아내의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이 책을 첫 번째 토론 도서로 정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며 적극 권했다고. 우리 학교 1학년 여학생도 이 책을 ‘5분 독서’ 때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아직 우리 학교 도서실에 없다며.그래서 담양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다. 2권 소장하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 안내된 서가에는 없다. 포기하고 전남공공도서관에서 함께하고 있는 중1~2 라이브러리 스타트 코너를 살펴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반가웠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타임슬립을 소재로 했겠다 싶었다.
은유는 아빠와 함께한 2016년 새해맞이 여행지의 이벤트로 1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1982년 은유에게서 답장이 온다. 이렇게 이야기는 현재의 은유와 그 이전 시대를 사는 은유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연결된다. 다소 익숙한 설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현재의 은유와 과거의 은유 모두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삶이 쉽지 않다.
먼저 현재의 은유는 아빠가 재혼하겠다며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원망스럽다. 그동안 아빠는 엄마에 대해 철저해 함구했으며 자신에게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 주위에서 아빠도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기에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아빠가 불편하다.

과거의 은유는 평범한 가정의 둘째 딸로 산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지만 지나치게 공부를 잘하는 언니와 자주 비교를 당하며 소외감을 느낀다. 게다가 현재의 은유와 소통하며 미래 이야기를 자주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별난 아이로 여겨진다.

 

현재의 은유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흘러가지만, 과거의 은유는 10살 소녀에서 20대 중반까지 시간이 빨리 흐른다.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두 사람이 살던 시대가 가까워지고 종국에는 겹친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은유의 사정을 들은 과거의 은유가 은유 아빠에게 접근하며 두 사람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선다.

과거의 은유와 현재의 은유가 어떻게 이어지며, 누가 은유의 엄마가 되는지, 아빠는 왜 은유에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아빠는 재혼 상대 때문에 정말 변했는지 스포일러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읽다 보면 복선이 여러 개 깔리며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아랫 부분 발췌한 글들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읽고 나니, 책 제목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중의적으로 읽힌다.
두 은유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은유와 은유 아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 사람이 함께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에는 더 내 안에 갇히기 쉽다. 소통한다는 건 세계를 뛰어넘는 일인 것 같다.
중학교 1~2학년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 특히 부모님과 생각의 차이로 갈등을 겪는 중딩들에게도.

 

(78) 사실 내가 사는 세계는 이렇게 오랫동안 편지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카톡 보내는 데 몇 초면 돼. 그렇다 보니까 화내고, 짜증 내고, 그때 기분 그대로 아무렇게나 말했던 것 같아.
그래서 습관처럼 언니한테 편지 쓸 때도 막 쏘아붙였나 봐. 카톡은 금방금방 답이 오거든. 심지어 상대방이 내 글을 읽었나 안 읽었나 확인도 할 수 있다니까. 근데 이 편지는 완전 느려 터져 가지고 답장 한번 받으려면 일주일에서 2주일은 내내 기다려야 돼. 심지어 그 안에 딱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니까 내가 안 미치고 배겨.

 

✎ SNS에 쏟는 시간의 10분의 1도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항상 그렇듯 빠른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내 입장만을 강화할 뿐이다.

(137) “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 현재의 은유, 과거의 은유 둘다 똑같은 문제 상황을 가지고 있다.

(175) 다행히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도 있긴 있더라고. 그게 뭐냐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체 뭐라는 거야. 내가 지금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거니?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네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너희 아빠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는 거야. 오해는 하지마. 너희 아빠가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206) 아빠랑 내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은 만큼 더 많이 달려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도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217)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 평범한 일상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닌 구성원들 모두의 배려와 소통 덕분이라는 걸 ‘기적’이라는 단어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