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의류수거함(유영민)

 

가끔 계절이 바뀔 때에야 큰 숙제를 하듯 묵은 옷을 정리하고 나서야 찾게 되는 의류수거함을 이야기수거함으로 풀어난 작가의 상상력과 입담이 놀랍다. 읽다보면 오즈의 의류수거함오즈의 마법사를 오마주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낯설지 않는 소재이나 다양한 사연을 담은 구조에 금방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모험담 같은.

 

사실 얼마 전에야, 의류수거함의 물건을 손대는 게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네에 있는 의류수거함이 공적단체가 아닌, 개인이 설치한 것이기에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밤늦게 의류수거함의 옷을 빼내 마녀의 하우스에 넘기는 도로시의 행동이 긴장되었다. 깊은 밤에 도로시가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도 평범치 않아 긴장이 되었다.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삶을 정리하는 소지품들이 발견될 때마다 긴장감이 더 해졌다. 한편 밤에 만난 도루시 주변 사람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게 다가 왔다.

 

사람의 흔적에는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의류수거함을 통해서 빈부의 격차가 드러나고, 벽을 쌓아 다르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촌 역시 삶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선망의 안경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만든 허상일 수 있다는 것도 드러나며, 나눔은 역설적으로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의 연대로 더 진행진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또 동물 살처분의 문제와 살면서 중요한 것을 놓쳤을 때의 회한도.

 

무엇보다 불필요한 경쟁 속에서, 죽거나, 중독되거나, 이민을 선택하는 헬조선의 문제도.

그러나 아픔을 간직하고 이겨낸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가 있기에, 도로시도 살 힘을 찾고 건강하게 성장해 갈 것이다.

  

(80) “네가 처음으로 모험을 해보는가 싶어서. 도둑질이라니, 얼마나 멋지니. 지금의 그 경험이 대학이나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네 영혼의 성장에 훨씬 큰 도움을 줄 거라고 봐.”
영혼의 성장. 언니는 가끔 다른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어휘를 이용하곤 했다. 나는 언니의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그럼 언니는 도둑질을 해도 괜찮다는 거야?”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다면.”

✎ 직접 자기 몸으로 움직여야 내 삶이 되는 것 같다.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218) “내 힘으로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준 게 이번이 처음이거든. 내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내 자신을 마구 칭찬해주고도 싶고. 이런 감정을 자존감이라고 부른다지? 솔직히 고백하면 여태껏 살아오며 이렇게 자존감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항상 1등만 해온 너는 이런 내 심정을 잘 이해 못할 거야.”
195는 정면을 응시한 채로 힘없이 웃었다.
“자존감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 대신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지.”
“그것들의 차이가 뭐지? 비슷한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아. 굳이 설명하자면,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을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 자기 효능감이 자존감의 핵심이라고 한다. 공동체 속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임을 느낄 때 자존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내가 인정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225) “이 짤막한 기사의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슬픔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기사를 접할 때면 잘 오려서 붙여놓기 시작했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마마는 말을 이었다.
“난 말이야... 누군가 자살을 했다면, 그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던 시간 때문에 그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져. 이 세상에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타인에 대한 이해. “우아한 거짓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오즈의 의류수거함
국내도서
저자 : 유영민
출판 : (주)자음과모음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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