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달고 살아남기(최영희, 창비)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5. 11. 11.
업둥이로 자란 주인공 진아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끝이 좋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갈등을 ‘좋게좋게 덮자’는 감진마을 이장의 태도와 확연히 비교가 된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도, 지역감정도, 친구 인애에 대한 성폭력도, 사람사이의 갈등도 좋게좋게 덮자는 사고의 끝이 어쩌면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현재의 역사적 비극까지 낳은 것이고,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사람들은 허무하게 보낸 것이라고 하면 ‘삼천포’로 지나치게 빠진 것일까.
“꽃 달고 살아남기”란 제목을 보고 설마설마했다. 몇 가지 복선을 이상하게 생각하다 갑자기 알게 된 ‘신우’의 존재가 책을 읽는 곳곳에서 소름을 돋게 했다. 그리고 곧 주인공 진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이야기 속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진아의 절친인 인애도 드라마 엑스파일 마니아로 평범하지 않으며, 일본 만화 캐릭터 캐롤을 좋아하는 물리 선생도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오타쿠다.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실 누구나 꽃의 크기만 다르지 꽃을 달고 살아가지 않나 싶다. 오히려 이들의 애정과 몰입이 진아의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되었다.
진아의 정신분열증은 어머니 ‘꽃년이’에게 유전된 것일 수도 있고, 업둥이로 성장하며 모든 사생활이 감진마을이라는 좁은 시골에 낱낱이 공개된 상황에서 내밀하게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이 정신분열증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꽃년이와 자신의 질병을 알고 조절하려는 진아의 삶의 다르지 않을까.
열여덟, 꽃년이와 닮았다는 마을 할아버지의 말에서 시작된 존재의 의문은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존재의 성찰과정이다. 인애도 그렇고, 성인이 돼고 교사가 된 이후에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는 물리에게도 비슷한 성장의 시작이지 않을까. 몰입도 높은 이야기이다.
*정신분열증에 대한 의학적인 견해는 유전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유전율은 12% 정도로 본다.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병행하지만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한다. 20~30% 정도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인상 깊은 구절>
(51) 나는 열여덟 살이다. 어찌 보면 어리고, 어찌 보면 십 대의 끝물 같고, 또 어찌 보면 욕 같은 나이다. 내가 체감하는 나이는 그다지 젊지 않다. 물갈이 때를 넘긴 실내 수영장처럼 고약한 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것 같다. 쉽게 말해한번 갈아엎을 때가 됐다는 얘기다. 이대로 무심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감히 역주행을 택한 거다. 미친 사람이나 한다는 역주행,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백 퍼센트 황천길로 간다는 역주행. 사실 이건 꽃년이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티커를 똑똑 떼어 낸 흔적처럼, 내 인생 곳곳에 빈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그는 누구인가? 한 번쯤 묻고 싶었다.
(234)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내 인생은 초장부터 까발려졌던 터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공개 입양된 뒤로 나는 비밀을 갖는 데 사활을 걸었다. 결국 신우라는 비밀을 만든 것도 나였다. 열여덟 살 여름에, 내 인생은 또 한 번 까발려졌다. 이번에는 내 동의하에, 내가 직접 커밍아웃을 했다. 기분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다만 앞으로 내 인생이 곱절 바빠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미쳤다는 꼬리표를 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다른 얘들처럼 남자 친구를 사귀고 대학에 가고 돈을 벌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진실을 마주했다. 이제 남은 건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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