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이 책은 새로 바뀐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일부가 실렸다. 10년 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인데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주인공 동구의 동생 영주가 태어나서 사고로 요절할 때까지 인왕산 아랫마을에 사는 동구네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일단 자전적인 소설이다. 아홉 살 남짓의 동구의 목소리는 아무리 조숙하더라도 어른이 분명하니까.

또 이별이나 죽음이 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돼서도 한글조차 떼지 못한 자신에 비해 세 살 때 스스로 한글을 읽을 수 있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에게 할말 다 하는,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영주가 부부싸움 과정에서 사고로 죽게 된다. 그 일로 고부간의 갈등은 화해할 수 없는 극한 상태에 이른다. 

그러한 한편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던 3학년 담임인 박은영 선생님은 광주 할머니댁에 내려갔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동생의 죽음, 선생님의 행방불명, 어머니의 정신병원 입원, 가정의 파탄과 같은 상황에서 동구는 오히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성장을 하게 된다. 즉 함께 살 수 없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위해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고향인 노루너미에 가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동구의 아홉 살과 열 살은 질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너무나 다른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을 보면서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요새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홧김에 저지르는 사건들을 보면, 어느 쪽이 옳다는 것보다는 결국 해결을 위해서는 희생이나 양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억울하겠지만.
마지막으로 독재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심리를 분석해 놓은 부분도 인상에 남는다.

(63) 내가 읽는 게 서툴다, 잘 못 쓴다는 선생님의 말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니니까 우리 집의 그 참혹한 불화가 선생님들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사실대로 부모에게 알리는 그들의 성실한 임무 수행은 우리 가족에게 잠시 파탄 상태를 가져올 뿐 그것으로 내 읽고 쓰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는 우격다짐으로라도 나를 가르치겠다며 굵직한 회초리부터 몇 개 장만하고 며칠 저녁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무릎맞춤 공부를 시키겠지만 무덤 속 같은 며칠이 가고나면 그만이었다.

 동구는 난독증에 걸려 있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이를테면 이상권의 “난 할 거다”에서는 난독증은 심리적인 문제로 등장한다. 동구도 할머니,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난독증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임 선생님이 정서적인 공유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학습 의욕, 성적이 낮은 학생에 대한 일종의 대안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216) 이 나라의 18년 군부독재가 박정희 일개인의 똥배짱 하나로 유지되었겠어?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독재의 질서에 익숙해졌어. 박정희가 죽고 나서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봐. 그들은 민주주의를 원치 않고 있어.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구?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는 없을 거라구?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긴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

 2002년에 지어진 이 책의 통찰력에 놀랐다.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세력이라며 폄훼하는 세력들이 정권을 잡은 6년째,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까지 망가진 상황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정신 사납고 어수선하며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육받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뭔가를 선택하기보다는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하는 경향을 잘 짚어낸 것 같다.


(285) “살다 보면 아픔이 많지.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서로 섭섭한 일도 많이 생기게 되고. 그런 걸 모두 다 네가 잘 했다, 내가 잘 했다 따지면 안 되는 거야. 무조건 서로 이해해주면서 살아야 해. 그게 가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매우 훌륭한 가족이었다. 누가 잘못했는지 제대로 따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 원수가 되어 앓아누웠고 아버지와 나는 지금 식은 탕수육 국물을 앞에 놓고 망가진 가족을 재건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갈등을 감출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해결된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 2002년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국내도서
저자 : 심윤경
출판 : 한겨레출판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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