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옥수)


작가 이름에 끌려 만난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어쩌자고' 라는 낱말이 갖는 안타까움을 책을 읽으며 여러 번 확인한다.


순지, 정애, 은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 벌로 온 서울 생활은 열일곱 소년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의 말처럼 '인생 한 번 제대로 살고 싶어' 낮에는 봉제 공장의 시다로,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 학생으로 열심히 생활한다. 그러나 열여덟을 며칠 앞두고 무허가 공장의 무허가 기숙사에서 전기누전으로 발생한 화재로 정애와 은영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순지는 충격과 함께 친구들을 봉제 공장으로 불렀다는 자책감에 빠져 말을 잃는다. 객지에서의 생활을 하나씩 풀어내면 순지는 충격에서 벗어나고 목소리를 찾는다.


이 소설의 ‘어쩌자고’는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말이다. 어쩌자고, 가난한 시골에서, 어린 나이에, 여자로, 객지 생활을 시작해 온갖 부당한 대우만 받다 ‘인생 한 번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버렸는지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하다.

88올림픽을 배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가족을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을 양보하고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내 누나와 동창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나와 공부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들에게는 없었을 것 같은 소녀 시절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정 뿐만 아니라 사회와 기업 역시 이러한 희생 덕분에 성장해 왔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사회와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타이어와 반도체 제작 업체의 노동자가 있고, CEO의 경영 실패로 하루 아침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눈을 조금만 더 돌리면 우리가 더이상 일하지 않는 곳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건강한 사회는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으로 이루어지고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작가는 <푸른 사다리>나 <키싱 마이 라이프>에서처럼 사람들의 ‘연대의식’과 ‘의지력’으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276) 아, 선생님 정애가요, 자취방 결의를 할 때 이런 멋진 말을 했어요.
"야, 우리도 열심히 공부해서 잘 사는 집 애들처럼 남들이 쉴 때 우리도 쉬어 보고, 남들처럼 놀러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하늘을 쳐다봐야 짠한 아픔이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 봐야 되지 않겠니?"
은영이요? 은영이는요 꿈이 큰 아이였어요. 정애가 공장 생활 때려치우고 집에 내려와서 엄마 옆에서 살고 싶다고 하니까 은영이가 젊잖게 타일렀어요. "그러면 희망이 없잖아. 그저, 하루하루를 살다가 때 되면 시집가고. 애 낳고.. 그건 엄마들의 삶이야. 우린 뭔가가 달라야 해.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그래서 출세도 하고, 고향 가서 폼도 잡아 봐야 하잖아."하고요.


(285) 작가 한 사람의 힘은 참 미약하고 보잘것없다. 그러나 난 내 작품을 읽어 줄 사랑하는 푸른 친구들과 내 두 딸 시은, 주은이를 믿는다. 그래서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내 푸른 친구들과 사랑하는 딸 시은, 주은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든지, 그 일과 계획을 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하면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다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든, 돈이 많든 적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꼭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도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꼭 새기고 살게 될 테니까.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비룡소 20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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