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범유진)

담양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는 전남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샘들이 매월 추천해 주는 책이 있다. 방학을 맞아 추천도서목록을 훑어보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불편한 편의점"과 분위기가 비슷할 것 같았는데 청소년의 밝은 기운이 더해져 훨씬 따뜻한 책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독후감에서 단어의 조합이 역설적이라는 느낌을 적었다. 편리함만을 추구할 것 같은 편의점에서 오히려 진한 사람의 냄새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 책도 그렇다. 오히려 청소년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저렴한 가격에 간단한 먹거리와 쉼터까지 제공해 주는 편의점이 삶의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를 이야기할 정도이니.

 

중3 '이루다'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나름 화목한 집에서 살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상황을 만난다. 아빠는 루다가 엄마의 딸이기에 사랑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실감에 신경질적이다. 결국 갈등은 터지고 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쉼터에서 산다는 이유로 여러 편견에 시달린다. 결국 학교에서도 뛰쳐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다 우연찮게 재개발지역의 '아름 편의점'에서 주인 할아버지를 도와준 일로 알바를 하게 된다. 간편식으로 조리해 주인 할아버지와 나누었는데 할아버지는 예전 편의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던 '이시우'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엄청난 상금과 함께.

이루다는 '편의점 레시피 대회'를 열어 이시우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4명의 이시우와 만나고 결국 주인 할아버지가 찾고자 했던 이시후도 만나게 된다. '음식 대회'는 그 자체로서 많은 사연과 함께 연결되며 이야기의 따뜻한 '정'을 더해 준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이루다의 행동이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성급해 자신을 계속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 생각도 편견이었다. 이루다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른들, 즉 아빠와 샘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에 저항하다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적잖게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세 입장 모두 속해 있는 처지에서 뜨끔한 부분이 많았다. 편의점 할아버지를 보며 결국 '따듯한 어른들'의 소중함을 느꼈다. 

집이 아닌 편의점의 간편식에서 '삶'을 만들어 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경계 세우기 이전에 아이들의 삶에 먼저 귀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 본다.

 

<인상적인 구절>

(36) 남자는 화를 내고는 편의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른 남자들도 그 뒤를 따라 슬그머니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느릿하게 뒤돌아섰다.
"미안하군요. 나를 도와주려다가. 그리고 고맙습니다. 학생은 친절하네요."
스캐너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 말은 내가 지난 달간 너무나 듣고 싶던 것이었다. 그걸 처음 만난 할아버지에게서 듣게 줄은 몰랐다. 정말 말을 해야 사람은 나를 아는 척도 하고 있는데 말이다.

(71) "남의 가게에 와서 소란 피우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 욕하고. 그리고 미성년자가 일하는   어때서요? 미성년자는 일하면  돼요? 일할 수밖에 없는 미성년자도 있는데,  애들 전부 불량 학생으로 모는  선생님이  말이에요?  창피하세요?"
" 녀석이 진짜, 버릇없이…."
내가 따지고  말이 학부쌤의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버릇없이' 어른들이 그럴 때에 쓰는 말이니까. 자기가 잘못한  알지만 자기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을 , 그럴 때면 어른들은 '버릇없다' 말을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읊어 댄다.

(141) "너무 슬픈 건 아무도 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다는 거예요.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온 적 없던 듯 굴어요. 남편도, 엄마도, 친구들도요. 저를 배려하느라 그런 거 알아요. 하지만…."
서우 아줌마의 말에 나도 빨려 들어갔다. 나는 아줌마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도 그랬다. 누구와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적이 없었다. 아빠는 엄마의 모든 것을 치워 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엄마의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닫고 나를 가엾은 아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뿐이었다. 엄마 이야기는 '하면  되는 '   마음속에 꼭꼭 잠가 놓아야만 했다.

(187) 도도하게, 혼자서도 잘 사는 길고양이는 포기. 다음 목표 설정 완료. 만드는 것이다. 좀 이상하고, 서툴고, 남들이 보기에는 조잡하고 엉망일지 몰라도 한 입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는, 그런 마법과 같은 레시피. 아주 특별한, 우리만의 레시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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